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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영 Feb 11. 2024

산후조리원에 가지 않을 용기

”산모님 어쩌죠“라고 시작된 산후조리원 원장과의 통화는 현재 조리원 객실이 풀로 차서 내가 당장 들어갈 수 없다는 결론으로 내리닫고 있었다. 내가 예약한 날짜보다 10일이나 아이가 일찍 태어난 탓도 있었고 1월이라 출생아가 많은 영향도 있다고 했다. 첫째 아이를 키우며 삶은 예측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다방면에서 미리 겪지 않았다면 예정보다 빠른 아이의 출생도, 조리원 입소 불가에도 적잖이 당황했을 거다. 하지만 그간의 나는 둘째를 뱃속에 품고서 남편의 퇴사와 이직, 입덧, 첫째 육아, 워킹맘을 동시다발적으로 겪어냈기에 한층 단단해져 있었다. 그중 가장 일등공신은 단연 육아였다. 육아만큼 사람을 단련시키는 건 없어서 첫째 아이의 탄생 후로 내 성향이 많이 바뀐 것을 느낀다. 웬만한 일에 초연하고 어떤 일도 감당할 각오가 생겼다. 여자는 약하나 엄마는 강하다는 말이 내게도 적용되다니!


당장 조리원에 들어가지 못함에 따라 내가 취할 수 있는 대안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조리원 원장이 제시한 방안으로 3일 뒤에는 자리가 난다고 하니 아기 먼저 입소시키고 나는 3일 뒤에 들어가는 것. 두 번째는 그냥 집으로 가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잠시 고민하다 후자를 택하기로 했다. 선택의 이유는, 첫 번째 대안이 너무 말도 안 되기 때문이었다. 아기만 맡기라니? 열 달 동안 꼭 붙어 있던 우리가 떨어져야 하는 이유는 누구를 위해서인가? 아이의 안위인가? 나의 회복인가? 그건 그냥 조리원에 입소하기 위한 방법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조리원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했을 때 내 경험은 다소 회의적이다.


갓 태어난 첫째 아이는 무척 컸다. 맞벌이여서 집밥을 잘 먹지 않았던 우리는 4키로 쌀 한 포대를 사면 몇 달을 먹었는데 아기는 꼭 쌀 한 가마니의 무게였다. 뜨겁고 무거운 생명. 앞으로 내가 평생 지고 갈 삶의 무게였다. 나름 '살아있다는 벅찬 감정'을 많이 찾아다녔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생생한 경험은 내 생애 다시는 없을 것이었다. 그만큼 나는 몰입해 있었다. 아이의 탄생과, 나의 엄마 됨과, 삶이 앞으로 180도 바뀔 거라는 것을.


그러나 조리원에서는 이런 나의 열성적 모성을 아직 아무 요령 없는 초보 엄마의 유난쯤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특히 산후마사지실에서 나를 위한답시고 해주는 말들이 그랬다. '산모 몸 회복이 우선이니 밤에는 수유콜 받지 마세요.', '산후풍이 오면 안 되니까 방 온도는 26도로 맞춰두세요.', '마사지를 받아야 부기랑 살이 빨리 빠져요.' 마사지사가 애 셋을 낳은 베테랑 엄마라길래 그 말이 다 맞는 줄 알았다.


전수받은 요령대로 3시간마다 울려대는 수유콜을 받지 않기도 하고, 방을 후덥지근하게 해 둔 다음 땀 뻘뻘 흘리며 잠을 자기도 했다. 그러면서 마사지는 꼬박꼬박 받으러 갔다. 그런데 그게 마냥 좋은 게 아니었다. 수유콜을 받지 않으면 유축을 해야 하는데 그럼 직수를 하는 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이 그 시간, 또이또이여서 소요시간이 단축되지는 않는다는 말.


여기서 끝이 아니다. 유축을 하면 젖병에 모유를 담아서 아기에게 주기 때문에 아기가 엄마 젖을 빠는 연습을 할 수가 없다. 완전 모유수유를 하려면 집에서 젖물리기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조리원에는 나름 전문가들이 있으니까 거기서 올바른 자세를 배워오면 좋은데 허구원날 유축만 하다 집에 오니 아이와 합을 맞추느라 깨나 고생했다. 또한 유축은 아기가 빠는 힘보다 약하기 때문에 미처 젖이 다 빠지지 못해 가슴이 뭉치기도 했다.


후에야 모유수유 관련 지식을 접하며 직수가 엄마에게도 아기에게도 가장 좋은 수유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수유콜 거부인가? 조리원에서도 유축하느라 고생이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고분고분 주위의 말만 듣다가 퇴소 후 집 오면 진짜 개고생이다. 완모를 희망한다면 차라리 조리원에서 새벽 수유콜 꼬박꼬박 받아가며 모유 양도 늘리고 직수 연습을 완벽하게 해 오는 것이 백배 낫다.


그리고 26도로 온도 올려놔서 모자동실 시간에 아기 태열 잔뜩 올라왔다. 진짜 할말하않.


요령은 단기적인 일이나 임기응변에는 유용할지 모르나 육아와 같이 마라톤 길이에는 쓸모가 없다. 오히려 뱅뱅 돌아가는 수가 있다. 무엇보다 신생아에게는 요령을 부려서는 안 된다. 정공법만 있을 뿐이다.


이러한 경험을 기반으로 우리는 조리원에 가지 않기로 했다. 태어난 지 3일 된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가는 길이 자신만만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도전이 될 수도 있겠다고 여기면서. 도리어 약간 설레기도 했다. 우리 가족은 어떤 그림을 그려낼까. 지금까지 살아온 바 내 삶의 도전 목록들은 거의 다 나를 나 되게 만들었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믿으며 유독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 오전에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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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키우는데 얼마나 들까?

- 산후조리원 비용 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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