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파란색 티셔츠를 가지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업무 역량 강화를 위해 참가한 세미나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것, 그게 전부다. 옷 전면에는 한창 떠오르는 플랫폼인 페이스북의 영문 로고인 ‘FACEBOOK’이 대문짝만 하게 적혀 있었다. 당시 패피(패션피플)를 표방하던 나는 이런 옷은 덕후나 입는 거라며 내 생애 이 티셔츠를 입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잠옷으로라도 입지 않을 옷. 하지만 소재가 은근 좋아서 버리기에는 뭐 하고 누구 주기에도 마땅치 않아 옷장에 깊숙이 처박아두었었다. 아마 무너진 옷장 안에 이 티셔츠도 있었을 거다. (옷장이 무너진 일이 궁금하시다면 전편 글 참고 https://brunch.co.kr/@noowhy/221)
두 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 티셔츠는 옷무더기 어딘가에 파묻혀 나를 계속 따라왔다. 그 사이 결혼 포함 여러 사건을 통해 가치관이 바뀌었던 나는 점점 그 옷을 입기 시작했다. 많은 옷을 버리고 비워 이제 남는 여벌 옷이 얼마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잠옷으로 입는 건 뭐 상관없지. 낙낙한 핏이라서 생활복까지 활용하기에는 좋네. 아이는 자주 토하고 이유식을 먹으면 밥풀 범벅이 되니까 막 입는 옷으로 아주 제격이야! 점차 그 티셔츠를 입고 생활하는 날이 늘어났다.
영유아 두 명을 책임지는 삶의 외형이란 이런 거다. 미용실 갈 시간이 없어 방치된 긴 머리를 질끈 묶고 선크림만 겨우 바른 얼굴에 크록스를 끌고 단지 내 놀이터와 도서관을 배회하는 자. 그런데 이제 페이스북 티셔츠를 곁들인.
그렇다. 급기야 나는 그 옷을 입고 바깥에서 두세 시간가량을 보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단코 의도한 바 아니다. 설거지도 하고 분리수거도 하고 간식도 챙겨서 하원 차량이 오는 시간에 맞춰 부랴부랴 나가려다 보니 옷차림을 돌아볼 새가 없었을 뿐이다. 구글, 아마존 이런 로고가 적힌 옷들은 판교의 개발자들이나 입는 줄 알았는데 신도시맘인 나도 그런 옷을 입는 것이다...
처음 그 옷을 입고 외출한 날, 옷차림을 인식함과 동시에 조금 당황했지만 이왕 이렇게 입고 나온 거 부끄러워하기보다는 '내가 또 삶을 심플하게 만들었구나!'에 방점을 찍기로 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겉모습에 들이는 시간이 많다. 시간도 물질도 많이 쓴다. 아름답고 보기 좋은 외모, 나도 좋아한다. 문제는 육아를 하면서 외모를 꾸미는 일에 에너지를 쓰는 게 쉽지 않다는 점에 있다.
아이가 좋아하는 동물책에 따르면 기린은 태어나자마자 버둥대며 일어선다. 대부분의 육지 동물들은 생존을 위해 빠르게 걷기를 연습한다. 가장 느린 건 인간이다. 인간은 태어나고 꼬박 일 년이 지나야 겨우 서툰 걸음마를 시작한다. 그 이후에도 상당 시간 양육자의 돌봄이 필요하다. 나는 그 시간을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기로 했다. 눈을 맞추고 시답잖은 놀이를 성심껏 하고 자주 안아주기로 했다. 다만 에너지의 한계는 정해져 있으니까 우선순위에서 탈락하는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고 나는 외모에 신경 쓰는 것을 내려놓기로 한 것이다. 그게 나를 엄청 잃는 것 같이 힘들지는 않았다. 옷장이 무너지고, 해변의 할머니들을 보며 여러 차례 관점이 바뀌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겉모습보다 본질에 집중하는 힘은 생각보다 강력했고 육아를 하면서도 큰 도움이 되었다.
아이는 채 1cm가 안 되는 시점에서부터 내 삶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며 지분을 점점 넓혀갔다. 모든 것에는 총량의 법칙이 있으므로 아이에게 삶을 내주는 만큼 나에게서 내 자리는 점점 사라진다. 나를 아이에게 내어주는 것, 이 또한 내가 선택한 일이므로 기꺼이 경쾌하기로 했다. 나를 잃는 일에 외모를 가꾸는 것이 포함되지 않으니 인생이 얼마나 심플한가.
새파란 티셔츠가 주는 인사이트가 생각보다 컸다. 이 녀석… 감촉만 좋은 줄 알았더니 인사이트 마저 글로벌 기업 답잖아!
나는 여행지에 가면 더 이상 입지 않을 옷을 챙겨가서 잠옷으로 입고 버리고 오고는 한다. 그래서 여행은 여러 가지를 비우는 경험을 선사한다. 작년 보홀에 갔을 때 이제는 진짜 페이스북 티셔츠를 놓아주자는 심정으로 가지고 갔다. 그런데 그동안 정이 들었는지 애착템이 되어버렸고, 이제는 정말 여벌옷도 얼마 없으므로 다시 캐리어에 고이 챙겨 왔다는 이야기.
이 모든 게 어쩌면 정신승리인가? 아줌마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자리합리화일까?
그렇다면 나는 기꺼이 정신승리를 할 거다. 거울을 안보며 자기 합리화를 할 거다. 그렇게 어찌어찌 하루를 살 것이다. 어느 날 불현듯 현타가 오는 날이 있다면 그건 그날의 내가 감당할 몫으로 남겨두고 오늘은 그저 편하게 살기로 한다. 외모를 내려놓는 것, 생각보다 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