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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도 대물림되는 집밥 문화가 있나요?

by 윤지영


도시락을 수라상처럼 싸 오는 동료가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얼마나 식재료에 진심이었냐면 가을철이면 직접 배를 타고 나가 쭈꾸미를 낚고 꽃게철이 되면 꽃게를 잡으러 1박 2일 일정을 감행하는 식이었다. 늘상 제철 식재료와 먹거리가 넘쳐나는 삶은 어떨까 상상해 본다. 냉장고를 열면 그곳이 갯벌이요, 가락시장인 삶.


“지영님 저 오늘 쭈꾸미 볶음 싸왔음. 점심 같이 고?”


그런 삶은, 오병이어처럼 먹어도 먹어도 계속 샘솟아 결국 딸의 회사 동료들에게까지 풍요가 전해지는 삶이었다. 와! 커다란 스댕에 담긴 탱글한 식감에 매콤한 쭈꾸미 볶음, 완전 밥도둑이 따로 없잖아! 제발 저를 수양딸로 받아달라는 너스레가 절로 나오는 맛이었다. 먹는 내내 부러웠다. 직접 쭈꾸미를 잡는 엄마가 있다니. 이 얼마나 부러울 것 없는 인생인지... 동료의 엄마는 심지어 워킹맘이었다. 어린이집에서 놀고 있을 어린 아들에게 나는 이런 엄마가 되어줄 수 있나 잠시 생각해 보았다.


유독 남들보다 쉽게 뭔가를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재능을 타고났거나 어려서부터 해당 환경에 압도적으로 노출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재능의 영역이 분명 존재하지만 요리는 정말 후자가 유리한 게임이라고 본다.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며 자란다고 했던가. 주방에서 분주하게 요리하는 부모의 모습을 어깨너머로 훔쳐본 아이들 역시 좀 다르다. 모차르트에게 음악이 그저 가족의 문화였던 것처럼 그들에게는 집밥이 곧 문화다. 그들은 설탕 소금이 분간이 안가도 주저하지 않는다. 담대하게 작은 실패들을 격파하다 이내 숙련된 음식을 만들어낸다. 매일마다 수라상을 대접받는 동료가 셀프로 싼 도시락도 웬만한 맛집 퀄리티를 자랑하는 것처럼.


또 하나의 친구가 생각이 난다. 유럽여행 막바지에 경비가 똑 떨어져 쫄쫄 굶고 있는 내게 그 친구는 한국으로 돌아오면 뭐가 가장 먹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절실하게 소울푸드인 닭볶음탕을 외쳤다. 스파게티랑 빵 말고 닭볶음탕을 다오. 맵고 칼칼한 국물은 생각만 해도 조국 그 자체였다. 귀국 후 친구는 밥을 해주겠다며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끝내주는 닭볶음탕에 밥 두 그릇을 뚝딱 비워냈고 그 집은 나의 제2의 고향이 되었다. 이후로도 인천공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나는 거의 매번 그 닭볶음탕을 생각한다.


밥은 그런 힘이 있다. 어딘가에 깊이 각인되어 다시 그때를 생생하게 떠올리게 하는 힘. 친구 역시 직접 만두를 빚고 손수 월남쌈을 해 먹는 집에서 나고 자랐다. 그러고 보면 집밥을 먹고 자란 사람들은 공통된 어떤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쌀밥 같은 생기가 흐른다. 왠지 모를 뒷배가 있어 보인다. 밖에서 어떤 좌절과 낙담을 겪더라도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엄마의 밥이 기다리고 있어서일까. 모든 부모가 집밥으로 사랑을 표현하지는 않지만, 집밥을 하는 엄마는 자식에게 삼시세끼 사랑을 표현하는 셈이니까. 그 사랑을 먹으면 툴툴 털고 오뚝이처럼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나의 경우 엄마는 요리에 소질이 없기도 없었거니와 상다리로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매우 단조로운 식탁을 보고 자랐다. 된장찌개 다음엔 김치찌개 그다음엔 미역국 그리고 닭볶음탕. 이런 식탁도 나름의 장점이 있다. 어떤 음식도 기쁘고 감사하게 먹는 어른이 된다. 어딜 가도 잘 먹는다고 사랑받는다. 하지만 치명적인 점도 존재하는데 그건 바로 요리하는 인생을 선택하게 되었을 때다. 나는 엄마의 읽고 쓰는 등을 봤지, 요리하는 등을 보지는 않았으므로 주방에 설때 마치 타향살이 하러 온 이방인이 되었다. 내게 없는 문화를 맞딱드렸을 때의 아득한 심정이란.


먹는 걸 좋아하는 것 치고 소질이 없다는 것은 종종 나를 슬프게 하지만, 나의 장점은 도전한다는 것이다. 레시피가 처음 배운 외국어처럼 서툴게 읽히는 까닭에 같은 요리을 해도 매번 맛이 달라지는 점이 유감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 길을 간다는 거 아니겠는가! 요즘은 배달이나 밀키트도 잘 되어있고 나도 꽤 자주 이 앞선 시스템을 애용하지만 그래도 손수 재료를 다듬고 익히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 나도 남편과 아들에게 기꺼이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고 싶달까. 쭈꾸미는 못잡아도 오징어를 사다 삶고 전도 부칠 수는 있으니까 말이다. 필연적으로 기다리는 세상의 모진 수모를 앞두고 오늘 하루도 든든히 먹고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주방에 선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듯이 나름 흉내를 내다 보니 점점 타율이 좋아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나는 이 여정을 같이 하기 위한 엄마들을 끌어들이기로 한다. 반찬모임을 만든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풀기로 하고... 오늘은 이 글을 전 동료와 친구에게 전달하며 안부를 묻고 싶다. 여전히 밥심으로 꿋꿋하게 잘 살고들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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