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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처럼 살기

by 윤지영

이쯤 되면 눈치챈 사람도 있을 텐데 내 육아관은 낙관적인 기질에서 비롯된 면이 좀 있다. 가급적이면 ‘알아서 잘 큰다’에 배팅하는 편이다. 뭘 해주지 않아도 아이는 저대로 잘 크는 잠재력을 가졌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깨가 조금 가뿐해진다. 요행을 바란다고 말한다면 그것도 맞는 말이다. 갓 태어난 나를 보고 엄마는 이런 생각각이 들었다고 했다. ‘손가락이 참 가느다랗네. 우리 딸은 게으르겠구만.’ 가느다란 손가락과 게으름의 상관관계가 과학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엄마의 말은 예언처럼 적중했다. 나는 어떻게 하면 무엇을 안 하면서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많은 날을 베짱이 같이 살지만 불현듯 개미 같은 면모가 발휘될 때도 있는데, 바로 사랑에 빠졌을 때다. 그간 삶을 돌이켜보면 사랑에 빠질 때 나는 본성을 탈피하고 성실해졌다. 잠을 줄이고 시간을 쓰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 대상이 내 아이가 되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내가 밤을 샐 수 있음을, 그것도 여러 날 그럴 수 있음을 알았다. 물론 육아는 마라톤이라 레이스를 달리는 동안 회복탄력성에 의해 원래의 베짱이로 돌아오긴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내 안에도 개미가 있다는 걸 발견하는 일이다. 그래서 기꺼이 해볼 만하다. 부모가 되면 누구라도 새로운 나를 발견한다. 이토록 헌신적인 나. 환골탈태하는 나. 서툴러도 계속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나.



아무튼 본투비 베짱이인 나는 당연히 아이를 키울 때도 '무엇을 안 할 수 있을까?'를 치열하게 고민한다. 그 끝에 기준점을 하나 삼았는데 바로 ‘조선시대에도 이 방법을 썼느냐’라는 질문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조선시대에 쪽쪽이를 썼는가? 아니다. 그럼 지금도 없이 키울 수 있다. 조선시대에 국민장난감이 있었는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지금 인스타그램에서 광고하는 저건 아니었을 거다. 고로 없어도 된다. 조선시대에 열탕소독을 했나? 잘은 모르지만 안 했을 것 같다. 그보다 모유수유를 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나도 모유수유에 도전해 보자! 육아에 대한 대부분의 방법론은 조선시대를 기준 삼아 결정하면 얼추 들어맞는다. 정말로, 많은 것을 하지 않아도 아이는 알아서 잘 큰다.



그럼에도 이 공식을 거스르고 성실하게 해낸 것이 있었으니... 바로 소아과 런이다. 굳이 런(run)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내가 사는 곳이 근교 신도시이기 때문이다. 가임기 여성이 평생 동안 0.6명을 낳는다는 초유의 저출산 시대인 대한민국에서 신도시는 이를 체감하지 못하는 거의 유일한 지역이다. 어딜 봐도 아이들이 넘쳐난다. 발에 치인다는 표현도 과장이 아니다. 아기가 몰려있으니 곳곳에 생명력이 넘치고 기분 좋게 소란하다. 아이는 친구가 많아 즐겁고 부모는 공동육아를 경험하며 수고를 덜어낸다. 소아과 접수만 빼면 말이다.



둘째 아이가 고열로 인해 밤새 잠을 설친 날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병원 예약 어플이 가동되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오전 아홉 시, 예약창구가 열리자마자 광클을 했다. 분명 1초 만에 예약을 완료했는데 순번이 서른일곱 번 째다. 0.5999초 동안 내 앞으로 서른여섯 명의 아기엄마가 진료예약을 했다는 말이다. 이렇게나 아픈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에 1차로 놀라고 오전 아홉 시에 예약했는데 점심이 다 되어서야 진료를 보는 현실에 2차로 놀라게 된다. 까딱하다가는 백 번대의 까마득한 대기번호를 받기도 한다. 이러한 시스템에서도 나는 일개미처럼 꼬박꼬박 병원에 출석했다. 나의 개미 면모를 여기서 발휘시킬 줄이야...



생후 6개월이 되면 아이는 엄마로부터 받은 면역을 다하고 자가 면역력을 기르기 시작한다. 이때 정말 온 세상의 바이러스를 다 걸려볼 기세로 주구장창 아파댄다. 우리 아이들은 콧물과 중이염은 뭐 단골이고 축농증, 아데노 바이러스, RSV 바이러스, 폐렴, 바이러스성 뇌수막염까지 걸려봤다. 질병으로 트로피 세울 기세. 새벽에도 몇 번씩 깨고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아이를 보고 있자면 인간의 한계를 체감한다. 아이에게 나는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히어로일텐데, 현실은 그 애의 고통 앞에 속수무책인 것이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다음날 소아과에 데려가는 거다.



병을 치료하려면 여러 약이 쓰이고 그중에는 항생제도 포함된다. 항생제는 분명 인류의 눈부신 발명이다. 우리 아이들도 덕을 많이 보았다. 5ml밖에 안되는 물약이 누런 콧물을 말리고 폐의 염증을 잡는다. 복용 이틀째 날에는 그간 못 이루었던 단잠을 몰아 잘 수 있게 된다. 그런데도 엄마들은 항생제를 최대한 안 먹이고 싶어한다. 항생제는 몸 속 유해균을 빠르게 사멸시키지만 동시에 면역력의 기초가 되는 장내 미생물까지 죽이기 때문이다.



이제 15개월로 아직 면역 공백기인 둘째가 최근 한 달 반 동안 항생제를 먹었다. 약발이 듣지 않아 대여섯번이나 약을 바꾼 차였다. 그무렵 나는 만나는 모든 엄마들에게 둘째의 증상과 항생제 복용 기간을 늘어놓으며 한탄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아이를 낳으면 세상 모든 아이의 엄마가 되기도 하니까, 엄마들은 우리 아이를 자기 아이마냥 염려해 주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경험담을 꺼냈다.



한 부류는 약이 안 들면 병원을 바꿔보라고 했다. 병원마다 처방하는 약의 종류가 달라서 병원을 바꾸면 낫기도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또 다른 부류는 항생제의 오남용을 걱정하며 최대한 약 먹이지 말고 자연치유를 해보라고 했다. 나는 진지하게 물었다.



“노란 콧물이 나오면 염증이 생긴 거니 항생제를 먹어야 한다는데요?”

“노란 콧물도 자연 치유될 때가 있어요. 저희 애도 한 삼 일쯤 콧물이 나길래 이제 병원 가야 하나 싶었는데 그날부터 줄어들더니 낫더라고요.”

“정말요? 그런데 만약에 코감기가 심해져서 중이염으로 번지면 어떡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 어렸을 때는 병원 잘 안 갔잖아요. 중이염 걸렸어도 그게 중이염인지 몰랐을 거야. 우리 몸은 알아서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분명.”



자연치유파 엄마들은 소신이 있었다. 허구원날 모든 것에 조선시대를 대입하는 나보다 훨씬 더 대쪽 같았다. 무엇보다 내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으므로 이참에 자연치유의 길을 걸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 결과 다음번 감기에서 아이는 정말로 어떤 약 없이 자연적으로 치유가 되었다! 그동안 비가 오건 눈이 오건 소아과에 오가던 날들이 미련하게 느껴졌고 이제 병원예약 어플인 ‘똑딱’의 노예에서 해방되는 순간이 다가오는 듯했으나…



이주일 만에 아이는 새로운 질병에 노출되었고 이번에는 폐렴에 걸렸다. 조선시대도, 자연치유도 아이의 질병 앞에서는 쪽도 못쓰고 팽당하는 것이다. 다시 나는 개미가 되어 성실히 병원을 오가는 신세가 되었다.



진료를 기다리며 같이 대기하는 다른 엄마들을 보았다. 이들도 성가신 이 일을 사랑 하나로 할 것이었다. 더 나아가 때때로 내가 그러했듯 녹아 사라질듯한 마음을 부여잡고 올 것이었다. 귀찮고 쉬고싶은 마음을 뒤로 하고 엄마인 자아를 꺼내 한달음에 달려왔을 그들을 보며 조선시대에도 지금도 아이를 키우는 일은 참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빈둥거리며 살다가도 아이가 열이 나면 자동 개미 모드가 되어 똑딱 어플을 켠다. 내가 들이는 노력에 비해 아이는 정말로 거저 자라는 면이 있으니 아플 때에는 최선을 다해 성실하자 마음먹는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소아과 가는데 수고하니까 다른 부분에서는 더더욱 조선시대 마인드로 살자고 되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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