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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영 Dec 18. 2024

나만 알고 싶은 은밀한 육아


누구나 집에서는 편한 차림으로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활동에 구애받지 않는 면 종류 상의와 허리가 편안한 고무줄 바지를 즐겨 입는다. 그런데 요즘 복장에 고민이 생겼다. 아이가 자꾸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져 오히려 옷차림이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설거지를 하다 보면 별안간 숭한 느낌이 드는데 그럴 때면 이미 바지가 스르륵 내려간 뒤다. 당했다... 여러 순간 아이에게 인권을 침해당하지만 바지가 벗겨지는 건 당할 때마다 수치스럽다. 아이도 이러는 이유가 있을 건데, 십중팔구 자기랑 놀아달라는 거다. 벗겨진 바지를 추스르는 것보다 아이의 칭얼거림을 추스르는 게 더 번거로우므로 잠시 설거지를 중단하고 아이가 원하는 대로 놀기로 한다.


입으로는 코끼리와 호랑이 울음소리를 내고 있지만 머릿속은 온통 설거지에 쏠려 있다. 저대로 두면 왜인지 세제 거품이 식기에 스며들 것 같아... 완수해야만 해...! 어느 정도 아이가 혼자 몰입해서 노는 것 같으면 눈치껏 뒷걸음질로 벗어난다. 고무장갑을 끼고 이어서 하려는 찰나, 다시 스르륵... 또 당하고 말았다.


이쯤 되면 더는 수치를 당하기 싫은 마음과 자기를 속인 것에 괘씸해하는 아이의 분노로 설거지는 영영 미완의 과제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아이 있는 집의 일거리는 끝나지 않는 숙제가 된다.


이런 상황은 일상생활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린다고 가정해 보자. 아이를 들쳐 매고 현관문을 연 다음 유모차에 아이를 착석시킨다. 요즘 부쩍 자아가 생긴 아기는 갑자기 유모차에 타는 게 싫어 냅다 소리를 지르며 발버둥 친다. 여기서 1차 진땀이 난다. 버둥대다 앞으로 고꾸라져 떨어지면 큰일 나니까 "호롤롤로!! 콩닥콩닥!" 이런 요란한 말들로 아이의 시선을 분산시키며 재빠르게 버클을 채운다. 안전하게 착석한 것을 확인한 후, "엄마 금방 음식물 쓰레기 가지고 올게~"를 외치며 주방으로 뛰어간다. 엄마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영영 이별한 줄 알고 대성통곡의 신호탄을 쏘는 소리에 2차 진땀이 흐른다. 다시 뛰어와 "엄마 여깄네! 까꿍!" 하며 상황을 놀이로 둔갑시키며 이걸 두세 번 반복한다. 그러다 안심(혹은 방심)하는 찰나의 기회를 포착해 진짜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가지고 달려 나온다. 이 모든 동작은 절대 굼뜨지 않고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1층으로 내려가서, 음식물쓰레기를 버리고, 다시 복귀해야 이 사소한 미션을 장대하게 끝낼 수 있다.


이런 내 마음을 너는 알까… 아직은 너의 마음도 잘 모를 테지


이런 날들이 반복되자 나는 인생이 좀 우스꽝스러운데 또 위대한 면도 있다고 느껴졌다. 품 안에 쏙 들어오는 이 작은 존재 앞에서 내가 땅끝까지 우스워지는데 또 그걸 마다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부모를 성장시킨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런 원초적인 부분에서의 성장일지는 전혀 몰랐지 뭐야. 엄마들이 강한 건 이런 치열한 순간이 페스츄리처럼 겹겹이 쌓여 더는 창피도 수치도 모르게끔 단단해지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이 예능의 시청자가 한 명이라서 정말 다행이다. 바지가 벗겨지는 건 정말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친구를 만났다. 평일 오전시간, 여자 둘이서 카페에서 사사로운 시간을 보냈으면 참 좋았겠지만 우리의 비극은 각자 아이를 대동했다는 점이다. 커피 두 잔과 샌드위치 그리고 빵 하나를 샀고 분명 다 먹긴 먹었는데 먹은 기억이 없다. 한 손으로는 이유식을 먹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이가 자꾸 떨어트리는 물병을 줍느라 바빴는데 와중에 신경질이 난 아이가 자꾸 옆에 둔 유모차를 잡아끌어 내 몸통에 부딪혀댔기 때문이다. 나름 둘째 육아라고 단단해진 나지만 그래도 멘탈이 털리기는 매한가지여서 카페를 나설 때에는 거의 탈곡기에서 갓 나온 수준으로 탈탈탈 털려있었다.


옆에서 같이 털린 친구가 해탈한 듯 말했다.


"예전에는 엄마들이 크고 빠르게 말하는 게 신기했거든. 근데 이제 알겠는 거야. 애들 소리에 자꾸 묻히니까 크게 말하게 되고, 또 먹이고 재우는 스케줄에 맞춰야 하니까 빨리 말하게 되는 거지."

"그러게 말이야."


조금 정신이 나간 나는 영혼 없는 공감의 언어를 내뱉었는데 그 와중에 이유식 만들 때 필요한 물품이 생각나 힘든 친구를 먼저 보낼 요량으로 다음 말을 꺼냈다.

 

 나 잠깐 다이소 좀 들렀다 갈게."

"뭐 사게?"

"그 있잖아. 그... 그 후라이팬 아니고 뜨겁게 데워먹는... 에... 에어프라이기에 넣는... 호일... 종이호일 사려고!"


심각한 수준으로 말을 더듬는 나의 모습에 우리는 또 깔깔 대며 웃다가 얼마 전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여자는 임신과 출산을 거치며 아이 돌보는 데에 최적화되도록 뇌를 변화시킨다는 내용이었다. 뇌는 엄마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아이와의 유대감을 쌓는데 집중하는 한편 인지나 기억력을 담당하는 영역은 다소 줄여버린다. 사람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대부분 아이를 낳으면 기억력이 감퇴되고 모두를 살피기보다는 내 아이에게만 집중하는 경향은 심리적인 것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가 있는 일이었다. 나의 경우 아마도 언어를 담당하는 영역이 줄어든 것 같다고, 그런데 자기도 똑같다고 말하는 동지와 웃으며 헤어졌다.


갑자기 새로운 기운이 샘솟는 듯했다. 언어 능력은 상실했지만 날마다 허락되는 사건 사고를 결국엔 웃으며 마무리 짓겠다는 씩씩한 마인드를 획득한 것 같다. 일단일장이다. 역시 인생은 공평하다. 육아라는 무대의 결말이 해피엔딩이라면 과정쯤은 얼마든지 넘어지고 구르다 다시 일어설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걸었다. 유모차에 안착한 아이의 유일한 광대가 되어 우르르르 까꿍을 외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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