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을 보고 오시면 좋습니다.
(https://brunch.co.kr/@noowhy/226)
호사가에게 여름이란 일 벌이기 딱 좋은 계절이다. 만물이 급속도로 팽창하는 김에 내 계획도 슬쩍 묻어갈 수 있는. 1년 전 그날도 더운 날이었다. 아이는 땀을 삐질 흘리면서도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치듯 놀이터로 뛰어들어갔다. 마침 아이의 친구도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아들의 친구와 그의 엄마를 보자마자 나는 며칠간 품고 있던 속마음을 말해버리고야 말았다.
“혹시 반찬모임 하실래요?”
둘째 육아휴직을 하던 그 해에 연간 계획은 크게 세 가지였다. 운동하기. 경제공부 하기. 마지막으로 레시피를 보지 않고도 만들 수 있는 반찬의 가짓수 늘리기. 공통점은 ‘수고해 얻어내는 것’이었다. 이상 말고, 얻어걸린 거 말고, 땀 흘린 만큼만 정직하게 얻을 수 있는 것들.
셋 다 여간 바지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특히 반찬은 더 그랬다. 왜 돌밥(돌아서면 밥 차리고)이라는 말이 나왔는지 뼈저리게 알아버렸다. 정말로 설거지하고 뒤돌면 눈 깜짝할 새에 밥 차릴 시간이 돌아왔다.
이렇게 고생스러운 목표를 삼았다니! 그래도 잘하고 싶었다. 밥은 평생 먹을 텐데 지금 익혀놔야 계속 써먹을 수 있을 거였다. 목표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세팅값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다시 워킹맘이 되면 지금만큼 시간을 내지는 못할 테니 휴직 기간 안에 아예 몸에 배게 만들자. 그리고 여름이었다.
마침 놀이터에는 또 다른 엄마도 있었다. 나는 약 팔러 온 약장수처럼 엄마들을 모아놓고 내가 만든 반찬모임의 장점을 팔기 시작했다.
“날도 덥고 아이들 매번 밥 해먹이기 힘들죠? 애들이 그렇게 많이 먹는 것도 아니라서 반찬이 애매하게 남기도 하고요. 또 오래 두면 빨리 상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생각해 봤는데 반찬 하는 김에 좀 더 해서 집집마다 나누는 거 어때요? 반찬 한 번만 만들었는데 지나고 보니 세네 개의 반찬이 쌓이는 거예요!”
나는 잘하고 싶은 건 뭐든 간에 기세로 밀어붙인다. 약장수의 기세가 마음에 들었는지 엄마들은 홀린 듯 동의했다. 내친김에 그 자리에 없는 엄마에게도 카톡을 보내 총 4명의 멤버를 모았다. 셋은 애매하고, 다섯은 너무 많으니까. 딱 좋은 숫자 넷.
우리는 서로의 이름은 몰라도 아이들이 몇 개월에 기저귀를 뗐는지 어떤 종류의 반찬을 가리는지는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아이에게 다양한 반찬을 골고루 먹이고 싶은 마음도 동일했다. 이렇게 동네의 반찬모임이 결성되었다.
이틀 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우리 집에서 오티를 가졌다. 오렌지주스를 한 잔씩 돌리고 이 모임을 개설한 취지를 설명했다.
아이가 건강한 식재료와 제철음식을 골고루 먹었으면 좋겠다. (일동 동의) 하지만 음식을 만드는 데에 많은 품이 들어가는 것도 사실이다. (모두 끄덕끄덕) 반찬을 만들면 한 끼 이상 나오기 때문에 아이가 질려할 때가 많고 그럴 때 기운이 빠지기도 하지 않느냐. (탄식과 함께 격하게 공감)
반찬 모임은 아이에게 다양한 반찬을 제공하고 싶은 우리의 바람을 충족하면서도 돌아서면 밥 해야 하는 이른바 돌밥 상황이나 남아돌아 처치곤란한 식재료 등 살림의 난감한 부분을 일부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아이는 새로운 반찬과 레시피를 접하고 엄마는 품이 적게 든다. 이로써 우리 모두 행복해진다! (박수)
이어서 간단한 규칙도 정했다. 하나, 주 1회 반찬을 만들 것. 둘, 용기에 반찬을 담아 각 집 앞으로 배달할 것.
모임이 오래 지속되려면 규칙이 단순해야 한다. 자칫 규칙을 많이 세우면 규칙을 지키기 위한 모임이 되어버리고 쉽게 피로해지기 때문이다. 구매력이 좋은 엄마가 곧바로 같은 규격의 반찬 용기 12개를 구매했다.
우리가 처음으로 주고받은 반찬은 오리구이, 애호박맛살볶음, 메추리알장조림, 닭고기카레였다. 아이는 어떤 반찬은 게눈 감추듯 흡입하고 어떤 반찬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노출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그리고 더 좋은 점은 아이가 안 먹는 반찬을 내가 다 먹을 수 있다는 거다! 나는 카레만 했는데 나머지 반찬들이 식탁을 풍성하게 채워준다는 점이 너무너무 마음에 들었다. 밀키트 아니고, 시장반찬 아니고, 진정 집밥.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남이 한 밥!
한 입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오리구이는 적당히 기름졌고 애호박맛살볶음은 재료 간 조화가 완벽했다. 장조림도 달짝지근하고 고소해 밥도둑 예약이었다. 내가 만든 카레의 수준이 떨어지지는 않을지 걱정을 잠시 했지만 다행히 선방을 했다. 카레에 우유를 넣었더니 고소하고 부드러웠다. 입안에서 뭉근하게 합쳐지는 반찬들을 먹으며 반찬모임을 저지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다음 주에는 닭가슴살파프리카볶음, 단호박범벅, 소불고기, 무조림이 식탁에 올랐다. 넉넉해진 반찬의 가짓수를 보고 있자니 어릴 때 살던 골목길 풍경이 떠올랐다.
노란 가로등 아래서 바닥에 그은 분필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질 때까지 땅따먹기를 했다. 그러다 창문 너머로 엄마가 밥 먹으러 오라고 하면 각자 집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가끔 김치나 찌개 배달을 가기도 했다. 긴급하게 계란이 필요한 아랫집 아줌마가 올라와 계란 한 알을 빌려갔던 기억도 난다. 사람 냄새나는 그 시절의 일부를 재현해 낸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아이가 아프면 한 주 쉬어가고 긴 연휴가 있으면 두 주 쉬면서 느슨하게 지속한 이 모임이 벌써 1년이 되었다. 그간 반찬모임의 덕을 본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하필 남편의 장기 출장일에 아이가 전염병에 걸렸다. 등원도 못하고 병원만 오가던 날이었는데 갑자기 아랫집에서 찾아왔다. 누수가 발생해 천장에서 물이 폭포처럼 쏟아진다는 거다. 누수의 원인은 에어컨 냉각수가 빠지는 배수구였는데 그래서 조치가 되기 전까지 땡볕더위에서 에어컨을 틀지도 못한 채 지냈다. 설상가상 둘째까지 감기에 걸려 껌딱지가 된 그때 나는 은호엄마가 만든 카레로 끼니를 때울 수 있었다.
채소를 도통 먹지 않는 첫째가 싹싹 긁어먹는 오이무침은 시윤이엄마가 만들었다. 하도 잘 먹길래 레시피를 물어서 이후에도 몇 통이고 만들어 먹는 여름 기본 밑반찬이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똑같은 레시피로 만들어도 시윤이 엄마 손맛은 따라갈 수가 없었다. 원작자를 뛰어넘는 반찬 솜씨는 나올 수 없는가 보다.
지안이 엄마가 만든 모든 요리는 나와 남편이 감탄을 하면서 먹는다. 재료끼리 잘 어울리고 간의 정도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다. 어떤 때는 오히려 아이가 잘 안 먹기를 바라기도 한다. 내가 다 먹게. 그리고 모든 반찬을 꾹꾹 눌러담는 인심은 배우고 싶을 정도다. 그게 꼭 자신의 아이를 대하는 지안엄마의 모습 같다. 아이에게 사랑과 응원, 용기를 가득 채워넣는 모습.
그런 순간들 사이로 지안이가 내가 만든 두부강정을 싹싹 긁어먹었다는 후기와 열심히 치댄 떡갈비가 완밥 행렬을 불러일으켰다는 증언도 언뜻 스쳐 지나간다.
이제 나는 아이가 평소 먹지 않는 식재료를 이용해서도 흔쾌히 요리를 한다. 다른 아이들은 먹을 테니까. 그러면서 우리 아이도 얼떨결에 먹어볼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아이의 음식 세계가 넓어질 날을 위해 오늘도 가지 여섯 개를 열렬히 볶았다. 레시피? 물론 안 봤다.
끈기라고는 참깨 한 알만큼도 없는 내가 어떻게 이 모임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아이의 길쭉해진 손가락과 호밀밭처럼 자라는 머리카락이 다 우리가 먹인 밥으로 이루어졌음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돼지갈비 한 점이 자전거 페달을 밟는 허벅지 근육에 일조하고 달콤 짭조름한 멸치조림이 철봉에 매달리는 아이의 뼈마디에 보탬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계속해서 집밥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엄마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엄마들의 이름도 알게 되었다. 누구누구의 엄마가 아닌 날 때부터 불리던 고유한 이름을.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서로를 누구누구 엄마로 부른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 엄마는 내가 살면서 받은 호칭 중 최고의 호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