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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드 육아를 아시나요? (제가 만든 말이에요)

by 윤지영


언제부터 미술관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사회에 진입한 시점과 미술관을 찾게 된 시점이 비슷하게 맞물리는 것 같다. 갓 스무살이 되어 어른들의 세상에 막 첫발을 담궜을 때 알게 된 사실들이 있다. 일터는 논리와 효율이 중요하다는 것. 상냥한 마음보다 실력이 우선인 것. 모두에게 좋은 일은 없어서 내게 좋은 일이 누군가에게는 나쁜 일이 되기도 한다는 것. 그걸 알면서도 해내야 한다는 것을.



실력보다 상냥한 마음이 우세했던 나에게 사회는 높은 벽이었다. 환기가 필요했다. 퇴근하면 논리와 효율이 필요 없는 곳으로 갔다. 미술관에서는 저마다의 생각과 느낌이 존중받고 그 무엇도 정답이 되었다. 우두커니 작품을 바라보며 복잡한 마음을 덜고 원래 내 모습을 새겼다. 예술이 좋을 수 밖에 없었고 곁을 내주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예술과 비슷한 구석이 있는 장르가 또 있는데 바로 육아다. 말도 안되는 일이 자꾸 일어나고 그 어떤 상식도 먹히지 않는 육아 또한 논리와 효율과는 거리가 멀다. 궁금했다. 코딱지를 파먹는 이 아이도 언젠가 예술을 알게 될텐데 과연 얼마만큼 곁을 내줄까? 가급적이면 나만큼 미술관을 좋아하기를 소망했다. 같은 걸 보고 같은 생각을 나누면 이 미술관에 나와 아이만 존재하는 느낌이 들 것이고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었다. 같은 걸 보고 다른 감상을 나눈다면 그거대로 나와 아이만 존재하는 느낌일 것이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궁금증은 해소되었다. 내가 예술가를 낳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를 국립현대미술관에 데려간 날이었다. 전시장에 입성한 아이는 작품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하더니 펜스를 기고 넘어서 작품을 탈취하려는 시도를 벌였다. 이 대담한 발상과 실행이 행위예술 아니면 무엇이 예술일까!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근성이 유독 미술관에서만 발현되는 것은 아이가 예술가라는 명백한 증거 같았다.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같이 일어난다는 점이 늘 문제다. 언제까지나 고요와 사색을 제공할 줄 알았던 공간이 아연실색의 장소로 바꼈다는 것이 내게 일어난 나쁜 일이다. 별 수 없었다. 이 광기의 예술가를 들쳐매고 나가는 수밖에. 유레카의 날이었다. 아이가 예술가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리고 내 아이가 예술가라 하더라도 육아인에게 예술은 사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으니까.



어쩌면 아이가 가진 별난 근성은 내게서 비롯된 것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두 개의 계절이 지난 뒤 다시 아이를 데리고 전시를 보러 가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왜 사서 고생을 자처했을까? 어떤 면에서 육아는 사회생활보다 더 한 구석이 있다. 논리와 효율이 먹히지 않지만 그래도 논리와 효율이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상냥한 마음은 필수고 양육 실력까지 겸하면 육아 난이도가 한층 수월해진다. 나에게 좋은 일이 아기에게도 좋지만 아기에게 좋은 일이 꼭 나에게 좋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해내야 한다. 역설의 끝판왕인 육아를 잘 해내려면 자주 숨 쉴 틈이 필요하고 예술이 반드시 숨통을 트이게 해주리라 직감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이번엔 국립중앙박물관이었다. 전시도 전시지만 건축 자체가 멋있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그야말로 건축 맛집. 작품을 온전히 감상할 수 없는 건 기정사실이니 공간이라도 향유하자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의심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어린 아이와 박물관에 온다 한들 어떤 유익이 있을까? 괜히 온 가족이 수고스러운 건 아닐까? 사실 역설적인 육아현장 이전에, 모순적인 사회생활 이전에, 근본적으로 항상 두 마음을 품는 내가 있었다. 박물관에 가고 싶어서 왔지만 후회하는 나. 후회하면서도 감상하길 원하는 나. 사실 나는 그 무엇도 아닌 나 자신 때문에 자주 길을 잃는 것 같다. 예술의 세계에서는 길을 잃는 것조차 예술이 되니까 그것들을 좋아하는 걸 테고.



나원참, 또 길을 잃었다. 다시 돌아와서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모저모 뜯어보면 압도적이고 운치있는 공간이 많다. 특히 정원 가운데에 위치한 호수 거울못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가 언제 물가로 뛰어들지 모르므로... 곧바로 본관으로 향했다. 아이와 함께 한 걸음 두 걸음 계단을 올라 어느새 열린마당에 이르렀다. 거대한 액자처럼 생긴 건축물 너머로 뻥 뚫린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곳이었다. 유독 청명한 날이었다. 새파란 하늘에 실오라기 구름 몇 점, 그게 시야의 전부였다. 순간 광활한 파란이 내게 들어와 마음의 불순물을 싹 씻어내려갔다. 찰나였고 모든 게 바뀐 것만 같았다.



그로부터 건축의 보이드(void)라는 개념을 알게 된 건 한참 후다. ‘공간’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을 뜻한다고 한다. 공간의 첫 자인 ‘공’도 ‘비울 공(空)’이라는 게 신기했다. 재밌는 점은 이 다음이다. 바로 ‘사이 간(間)’을 썼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간’을 풀어보면 ‘비어있는 곳에서의 관계’가 된다.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비움을 단순히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닌 창조의 시작으로 보기도 했단다. 빈 공간은 제로이면서 동시에 백 퍼센트 가능성이기도 한 것이다.



그날 아이와 텅 빈 하늘을 볼 때 같은 경험을 했다. 텅 빈 하늘처럼 내 마음이 비워지니 의심과 염려 또한 사라졌다. 비우고 나서야 새 마음이 자라날 공간이 생긴 것이다. 내게 불어온 새 마음이 아직은 어떤 모양인지 알 수 없지만 이전보다 심플하고 명쾌할 거란 건 확실했다. 하늘로부터 더 나은 기운이 불어왔으니까. 그 감상이 보이드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유현준 교수의 『공간이 만든 공간』에서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앞으로 건축에게도 곁을 내주리라 다짐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마음 복잡할 일이 잔뜩이다. 그 무엇도 정답이 아니고 그 어떤 것도 정답이 되는 것이 육아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확한 기준점이 없다면 한없이 휘청거리게 된다. 특히 나처럼 원래도 휘청거리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지면을 빌려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이리저리 헤매며 여기까지 왔더니 어느덧 육아 4년차에 이르렀다. 아이는 둘이 되었고 나는 상냥한 마음보다 실력을 갖춘 워킹맘이 되었다. 칼퇴하고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피도 눈물도 없어진 나 자신을 보면 조금 뿌듯할 때도 있다. 여전히 아이들과 미술관에 가는 일은 어려워서 방향을 틀었다. 공룡을 볼 수 있는 자연사 박물관이나 어른들에게도 유익한 과학관을 간다. 만져보고 탐구하는 것들이 조금은 용납되는 곳에서 아이는 자유하고 나는 즐겁다. 아주 뿌듯한 일석이조의 결과다!



또한 열린마당에서의 경험을 빌려 나의 육아를 보이드 육아라고 소심하게 이름 붙여 보기도 했다. 나는 아이를 키우며 가급적 덜 힘쓰고, 덜 고민하고, 덜 산다. 육아 전반에 걸쳐 모든 것을 덜어내는 관점을 실천한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방법론을 권장하거나 가치관을 설파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내게 필요 없었던 것이 누군가에게는 필수품이 될 수도 있는 곳이 바로 육아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다만 알려주고 싶기는 하다. 특히 범람하는 육아 정보의 파도만 보고 이 세계에 발 담구기가 엄두도 안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만큼 안해도 망하지 않는다는 걸. 아이도, 나도. 자꾸만 주입되는 육아공식과 사야만 할 것 같은 육아템들 사이에서 어쩌면 가장 먼저 해야하는 건 머리를 비우는 일일 테다. 이런 모양의 육아도 있어야 누군가는 용기낼 수도 있을 것이다.



기나긴 여정에서 또다시 무언가에 잠식되는 듯 하면 그때 본 파란 하늘을 떠올린다. 언제나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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