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 초반의 일이다.
당시 나는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옷을 사고 점심값을 아껴서 운동화를 사는 둥 치장에 많은 품을 들였었다. 품질은 떨어지는데 유행에는 매우 민감한 옷을 자꾸 사들이며 그것들이 나의 일부라고 여기고는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십 대는 그런 어리숙함을 이해받을 수 있는 마지노선의 때가 아닌가 싶다. 끝 모를 것 같은 젊음을 이용해 마음껏 치기 어리게 살고,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전부일 거라고 믿는 나이. 다시 돌아가도 왜인지 그렇게 살게 될 것 같은 나이.
아무튼 그날도 어김없이 새로 산 원피스를 옷장 안에 무심히 툭 던졌다. 그리고 잠시 몸을 돌렸는데 별안간 우지끈 소리가 나는 것이다. 너무 큰 소리에 깜짝 놀랐고 뒤돌아보니 옷장이 무너져 있었다. 거짓말처럼.
어안이 벙벙했다. 아무리 가벼운 합판으로 만들어진 옷장이기로서니 옷이 무거워봤자 얼마나 무겁다고, 그래봤자 옷일 뿐인데? 괴상하다, 괴상해, 하며 그 앞에 서 있었더랬다. 옷은 저들끼리 엉켜 무덤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괜히 으스스했다. 이를테면 귀신같은 영의 존재가 저지른 일인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지금 죽으면 이 옷들은 가지고 갈 수 없을 텐데'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옷을 사지? 무엇을 위해 사는 거지? 감당하지 못할 무게의 옷은 옷장을 부수며 작은 균열을 냈다. 첫 번째 사건이었다.
두 번째 일은 그로부터 얼마 안 가 벌어진다. 여전히 옷을 사기는 했지만 그래도 보다 의미 있는 곳에 투자를 하자 한 것이 여행이었다. 이 나라 저 나라 기웃대다 결국 한 달 반 동안의 유럽행 티켓을 끊었다. 지극히 이상적이고 계산 따위 하지 않는 나란 인간은 하필이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모든 계절을 아우르는 서유럽, 남유럽, 북유럽의 루트를 짜고야 만다. 그 말인즉슨 캐리어 안에 4계절치의 옷이 몽땅 들어가야 된다는 말이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는 말은 희대의 진리다. 정말 여행하면서 도시를 옮길 때마다 짐 싸느라 고생 고생 개고생을 했다. 거기다 유럽에는 왜 엘리베이터가 없으며 나는 왜 6층에 있는 에어비앤비를 예약한 것인가! 이쯤 되면 옷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내가 문제 같았다. 그래도 패션의 본고장 유럽에서 나름 갖춰 입고 싶은 마음에 챙겨 온 옷들을 야무지게 돌려 입었다.
파리는 정말 눈이 돌아갔다. 시선 닿는 모든 곳이 아름답고 모든 이가 근사했다. 심지어 한인교회조차 전도사님은 포마드 올백 머리를 한 채 기타를 치고, 목사님은 로다주처럼 콧수염을 기르셨다. 압도적인 설교 말씀과 조화로운 외형에 매료되어 눈물을 흘리며 예배를 드렸다. 파리는 교회도 교인들도 남다르구나! 너무 인상 깊은 경험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그 교회를 검색해 봤는데 당시 목사님이 거짓말쟁이 사기꾼이었다는 기사를 접하게 된다. 아니, 사기꾼도 사기꾼인데 거기에 은혜받은 나는 뭔가. 사기꾼이 대단한 건지 내가 우둔한 건지 우열을 가릴 수가 없었고 둘 다 일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가끔은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을 때가 있는데 종종 내 인생은 현실이 몰래카메라 예능보다 더할 때가 있다고 느껴진다. 이 일화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그게 결정적 두 번째 사건은 아니고, 유럽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면서 나는 점점 무언가를 깨닫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제멋대로인 사람이 많았다. 정확히는 자기 멋대로였다. 어느 날엔가 따사롭고 한가로운 교외 해변에 놀러 갔다. 모래사장에는 할머니들이 한데 모여 앉아 있었다. 한국 할머니들이 평상에서 수다꽃을 피운다면 바르셀로나의 무대는 해변이었다. 중요한 것은 복장이다. 희끗한 머리에 연세를 예측하기 힘든 할머니들은 전부 수영복 차림이었다. 나일론 수영복 사이로 볼록 나온 배와 늘어지는 허벅지살이 사랑스러웠고 무엇보다 자신의 모습을 의식하지 않는 자연스러움이 놀라웠다. 확실히 한국에는 없는 풍경이었다. 젊은 여자들은 한술 더 떠서 상의를 입지 않고 있기도 했다. 이 역시 내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화려한 보라색 스타킹을 신고, 머리를 박박 밀거나 레게로 꼬고, 옷이 낡다 못해 구멍이 뚫려도 아랑곳 않고 제 갈길 가는 사람들.
울퉁불퉁 돌로 만든 유럽 바닥에서 캐리어 끄느라 오만 심신이 다 지쳐버린 나에게 그 모습들은 극대화되어 다가왔다. 중요한 건 '어떤 걸 사 입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삶을 대하는 태도는 의복의 에티튜드를 뛰어넘는다는 것을 이십 대의 나는 이 두 가지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체득하게 되었다. 마치 새가 알에서 태어나려면 하나의 세계를 깨고 나와야 한다고 말했던 데미안의 싱클레어가 속삭이는 듯이. 옷장을 무너트려서 네 알을 깨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돼서 2탄을 준비했어. 이제 나올 수 있겠어?
꼬질꼬질해진 캐리어를 끌며 인천공항으로 귀국한 나는 진정으로 알에서 깨어나기로 했다. 제일 먼저 치장에 들이는 시간과 돈을 줄이고,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신경을 끄는 연습을 해나갔다. 꾸미는 행위를 내려놓자 이어서 비움의 가치가 문을 두드렸다. 이는 훗날 육아를 할 때 나비효과가 되어 돌아오는데…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