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제법 컸는걸 하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어른 문화에 훅 진입할 때다.
“때끼야! 때끼야!”
아이가 한동안 하던 말이다. 구강 근육이 미처 발달하지 못해 부정확하게 발음하는 까닭에 어른들은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 나만 빼고. 그 무렵 나는 아이가 집을 헤집을 때 약간 장난스럽고 구수한 할머니 톤으로 ‘이놈의 셰끼야~’ 하고 불렀었다. 나름 애칭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몰랐지. 아이는 언어의 맥락을 이해하고 사용하는 게 아니라 그저 들은 대로 출력한다는 것을.
콩 심은 데 콩 나고 이놈의 셰끼야 심은 데 때끼야 난다고, 몇 번 그 말을 듣자 아이는 ‘때끼야’를 습득해서 자기 말로 만들었다. 된소리를 내는게 재밌었을 꺼고 엄마의 당황한 표정에 재미가 증폭되었을 것이다. 그 말 쓰지 말라고 어르고 달랬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뒤. 상황파악을 한 아이는 씩 웃더니 아예 돌림노래로 만들어 부르고 다녔다.
계절이 바뀌고 아이 구강근육이 노련하게 단련되자 이제 정말로 ‘이놈의 셰끼야’라고 정확히 발음했다. 자기 동생이 우유를 일부러 쏟을 때나 떼 부릴 때 어디선가 '이놈의 셰끼야!!'가 천둥처럼 튀어나왔다. 놀다가 친구를 넘어트린 형아 뒤통수에다가도 '이놈의 셰끼햐아~~!!'하고 고함을 쳤다. 엄마들은 빵 터지며 해서 같은 친구가 있어 참 든든하다고 했지만 나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진심으로 자식 농사 1차 위기라고 생각했다. 물론 농사는 하늘이 도와야 하지만 자식 농사는 부모 역할이 거의 전부다. 고로 내가 내 발등 찍었다는 뜻이다.
어제저녁에는 아이가 피자를 만들자고 졸랐다. 아침부터 조르길래 저녁에 하자고 미루기는 했는데 저녁까지 기억하고 있던 것이다. 다만 식사를 막 끝낸 참이라 남편이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주방은 둘째가 던진 반찬들로 난장판이었다. 이제는 아이들이 아무리 들쑤시고 다녀도 셰끼의 ㅅ도 꺼내지 않는다… 아무튼 정리가 다 될 때까지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자신의 바람이 지연되는 걸 몹시 못마땅해하는 아이인데 그날은 순순히 알겠다고 했다. 또 컸구만. 물론 열에 다섯 번은 아직도 소리를 빽 지르지만 나머지 반절은 수긍하고 기다릴 줄 안다. 육아 레이스를 달리다 보면 아직도 결승점이 까마득해 이거 끝나기는 하나 싶은데도 와중에 이만큼이나 왔잖아! 하며 질주한 구간을 되돌아보는 일이 생긴다. 긍정적으로 사고하기, 남은 것을 보기. 어쩌면 육아는 긍정의 힘 아니고서는 버틸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 샹젤리제.”
기다리던 아이의 입에서 꿈처럼 툭 하고 샹송이 흘러나왔다. 육아가 절망적일 때 나는 시간이 멈춘 것 같이 느껴지는데, 아이의 사랑스러움을 마주하는 순간에도 온 사물이 정지하는 경험을 맛본다. 그 날도 옆에서 건조기가 돌아가고 둘째가 집안을 헤집어놓을지언정 나와 첫 아이만 남은 것 같았다. 너는 어디서 이런 걸 배워왔니. 셰끼야와 샹젤리제가 공존하는 이 아이의 정서와 펼쳐질 앞날이 몹시 유구할 것처럼 느껴졌다.
오 샹젤리제
오 샹젤리제
언제나
누구나
당신을
기다려
오 샹젤리제
아이는 말이 빨랐다. 하지만 세상에는 오만가지 말이 있어서 아직도 정확하게 구사해야 할 글자들이 남았다. 튀밥인데 투밥이라고 한다던지, 샹젤리제를 썅젤리제라고 한다던지. 때문에 다소 경박한 샹젤리제가 되었지만 대세에 지장이 없으니 감안해서 듣기로 했다. 일반 농사와 마찬가지로 자식 농사 역시 흉년과 풍년을 오가며 초연에 이르는 것일지도.
한 여름에 접어들었다. 오늘은 아이들이 에어컨 물호스를 배관호스에서 빼버리는 바람에 거실이 온통 물바다가 되었다. 이번에는 사고의 강도가 너무나도 창의적이어서 화도 나지 않았다. 거실 매트를 다 들추고 물기를 닦는 과정에서 나름 네 가족이 합심하는 경험도 했다. 언젠가 세월이 흐르고 흘러 이런 날들도 미화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방해꾼들 없이 남편과 단 둘이 샴페인을 터트리면서 이 날들을 안주삼아 이야기하겠지.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육퇴한 이 밤, 샹젤리제를 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