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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고래 Oct 22. 2023

우리 같이 노올자

우리 같이 노올자 #3.

“경이 언니 노올자-.”

“진이 언니 노올자-.”

미용실 바리깡 소리 너머로 언니들을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분명 복희와 설희 자매였다. 옆집에 사는 평화제과점 딸들이다. 또 아무도 궁금하지 않겠지만 우리 동네 아이들을 소개하겠다. 복희는 여덟 살이고, 설희는 일곱 살이다. 매일 우리를 찾아와 놀자고 부르는 단짝들이다. (전화기는 없다고!) 우리는 서로 놀기 위해 서로의 집에서 기다렸다. 복희와 설희는 미용실 밖에서 우리를 불렀다. 미용실 안을 슬쩍슬쩍 구경한다. 손님들이 많고 복잡하면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기다려주는 것이 나름 우리들만의 배려였다.

 복희 설희 자매의 부모님은 늘 바빴다. 아빠는 빵을 만드느라, 엄마는 그 빵을 파느라 바빴다. 사실 춘하동에 한가한 엄마아빠들은 아무도 없었다.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이것만 풀고 나갈게!”

 나는 지금 벼락치기 숙제 중이다. 매일 두 장씩 풀어야 하는데, 왜 꼭 선생님이 오시는 날 숙제를 하게 되는 것일까. 엄마 아빠에게 혼이 나면서도 그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그리고 벼락치기를 해야 집중력이 발휘된다는 사실!

“아이. 문제집은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저번 주 식목일이 쉬는 날이었으니까 그렇지. 나도 밀렸어. 너 때문에 그래. 내가 숙제하려고 했는데 놀자고 해서.”

“웃기시네. 언니가 먼저 놀자고 했으면서.”

 우리는 누가 먼저 놀자고 했는지에 대해 목소리 높여 싸웠다. 결국 엄마에게 호되게 혼이 나고서야 싸움을 멈췄다. 열 평 가게에 딸린 네 평 남짓한 방에 누워 열심히 계산하고 또 계산했다. 복희와 설희는 크림빵과 소보로빵을 들고 문지기들처럼 문 밖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복희 설희 자매의 얼굴은 둥글둥글 날마다 커지는 것 같았다. 아마도 빵 때문이겠지. 부럽다. 우리 집 아침상은 밥과 된장국인데 복희네는 아침빵이라고 한다. 미국을 안 가봤지만 미국식이다.

 나는 빵을 먹기 위해 빛의 속도로 문제를 풀어나갔다. 복희 설희 자매는 기다리는 일이 지루해보이진 않았다. 하긴 미용실만큼 구경거리가 많은 곳이 어디 있을까. 퍼머 롯드를 말면 모두가 못생겨지고, 끝나면 모두 예뻐지는 마법의 공간. 엄마는 혼자서 커트, 퍼머, 드라이 등등 복잡해 보이는 모든 일을 가재 손보다 더 빠르게 해냈다. 아니, 가위손이다. 가위손이라고 아나? 모르면 말고.

 하여간 우리 엄마가 2층 주인집 할머니 머리를 휘감아 돌리는 기술에 복희는 존경의 눈빛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헤어디자이너가 꿈인 복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언니, 미용실은 제일 재밌어. 정말 멋진 것 같아. 제과점에는 빵만 사러 오거든. 근데 미용실에는 진짜 이상한 사람도 오고, 웃긴 사람도 오고, 신기한 사람도 오고.”

 복희가 준 빵을 먹으며 나는 응응 그래, 하고 대충 맞장구쳐줬다. 나에게 미용실은 좀 지겨운 곳이기도 했다. 하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니 웬만큼 특이한 사람 아니면 관심도 없었다. 

 두루마리 휴지 산처럼 이고지고 와서 팔아달라는 할아버지, 가위 갈아준다고 찾아오는 아저씨, 후레쉬 껌 파는 할머니. 할머니는 껌값이 없으면 주저하지 않고 껌을 다시 회수해갔다. 그냥 무작정 돈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거지들도 많았다. 엄마가 늘 주기도 하지만 바쁘면 손님들이 500원씩 주기도 했다. 적게 주면 화를 낸다.

 참. 손님들도 다양했다. 군대에 입대하기 전에 머리를 자르러 오는 사람, 혼자 사는 할아버지, 유치원 원장님, 장애인 아저씨, 꼬마 손님, 예비 신부도 왔다. 와서 조용히 머리만 하고 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람마다 책 열 권도 넘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대신 엄마는 모든 이야기들을 듣느라 피곤했다.

 엄마는 가끔 옷장사도 했다. 가게 한 켠에 옷을 진열하고, 파는 것이다. 동네 여사님들의 사랑방이다. 가짜 모피털 코트, 정장, 원피스 등 미용실은 순간 의상실로 변했다. 그래서 미미의상실에서 우리를 싫어하나보다. 어쩌겠나, 미미의상실 옷은 촌스러운 걸.

“수영 엄마, 혹시 코트 필요하지 않아? 저기 가서 한 번 보고가요. 정말 공장 도매 값으로 나왔어. 몇 벌 없다고.”

“그래? 그럼 보고 가기라도 할까? 나 다음 주면 곗돈 타는 날이긴 한데.”

그렇게 전시된 옷들을 모두 팔면 엄마는 공짜로 옷 한 벌씩 얻었다. 아동복은 왜 안 파는 건지. 그러면 내 옷도 공짜로 얻을 수 있을 텐데. 딸들에 대한 그런 배려가 없다는 사실이 엄마의 아쉬운 점 중 하나였다. 여하튼 학습지의 끝이 보인다. 

“으아, 드디어 다했다. 진이야 가자.”

“아직, 아직. 나 두 장 더 남았어.”

진이는 울상이었다.

“진이야 빨리 안 나오면 우리 먼저 가버린다!”

“아 다했다고! 기다려!”

진이는 학습지를 집어 던지고 방에서 나왔다. 방과 가게는 붙어 있었기 때문에 방에서 훌쩍 뛰어내린 진이는 가게를 지나 우리에게 순식간에 도착했다.

“엄마 다녀올게요!”

“그래, 조심히 놀다 와. 저녁때 늦지 말고 와서 밥 먹어라.”

“네!”

나는 설희 손을 잡고, 진이는 복희 손을 잡았다. 우리는 여사님들의 작은 백조의 세계를 나와 더 큰 골목길로 나갔다. 초여름 춘하동 골목길은 제법 무더웠다. 조금씩 까맣게 그을리고 있는 나와 진이, 아직은 뽀얀 복희, 설희. 우리는 조금만 걸었는데도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진이가 잡은 손을 놓으며 말했다. 

“언니 더워.”

“그래? 그럼 우리 아이스크림 먼저 사먹고 놀까?”

서로 무어라 할 것도 없이 현대상회로 뛰어갔다. 현대상회는 영란피아노학원 건너편에 있었다. 우리 동네에는 커다란 슈퍼마켓 대신 작은 상회들이 몇 개 있었고, 현대상회는 군것질거리 뿐만 아니라 쌀이나 콩, 팥, 녹두 등 잡곡들이 자루에 담겨 한 됫박씩 팔고 있었다. 아이스크림과 과자 종류가 많이 없어 아쉽지만 문방구 다음으로 가장 사랑하는 곳이었다.

 사실 연희네 슈퍼마켓이 새로 생겨서 가본 적은 있다. 새로 나온 아이스크림도 많았다. 배가 볼록한 대머리 사장님은 애들을 싫어했다. 가끔 물건을 훔쳐가는 아이들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무고한 나같은 아이들도 오금이 저려 눈치가 보여 제대로 쇼핑을 할 수 없었다. 돈을 가지고도 마음껏 과자를 살 수 없는 세상이란!

  하지만 현대상회 할아버지는 맨날 꾸벅꾸벅 졸아도 물건을 훔쳐가는 아이들이 없었다. 훔칠 물건도 별로 없었다.

“안녕하세요.”

“왔냐. 그래 천천히들 골라라.”

“네-”

 살그머니 현대상회 발을 내딛었다. 이상하게 느린 걸음이 된다. 묵힌 쌀 냄새와 차가운 공기가 우리를 감싸 안았다. 따분한데 평화로운 곳. 서늘한 공기에 우리는 몸이 으스스 떨렸다. 우리는 두리번거렸다. 맛있는 과자를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진이가 말했다.

“언니야. 오늘 쥐가 나오지는 않겠지?”

“안 나올 거야. 저번에 쥐덫을 놓아서 열 마리도 더 잡았대잖아.”

“힝 징그러워.”

복희는 몸서리를 쳤다. 현대상회를 세 바퀴 돈 우리는 안심하고 본격적으로 쇼핑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설희가 말했다.

“언니야. 나 사또밥 먹고 싶어.”

“안 돼. 천 원 밖에 없어. 우리 7백원. 복희네는 3백원있지? 이따 방방도 타고 달고나 뽑기도 하려면 좀 모자라.”

 나 또한 사또밥이 먹고 싶었지만, 동생들을 통제해야 오늘도 무사한 하루를 보낼 수 있기 때문에 냉정해져야 했다. 그때 진이가 아이디어를 냈다.

“그럼 쌍쌍바 어때?”

순간 우리 모두의 얼굴은 해바라기처럼 활짝 폈다. 쌍쌍바 2개와 사또밥을 골라 꾸벅꾸벅 졸고 계신 할아버지에게로 갔다.  

“계산해 주세요!”

“……”

“할아버지!”

“아이고 그려, 그려 귀청 떨어질라! 다 골랐냐?”

할아버지는 느릿느릿 돋보기를 집어 들고 가격표를 보았다. 우리는 그때부터 조금씩 불안했다. 

“이게 얼마더라?”

“100원이요. 사또밥은 200원이고요. 총 500원이니까 이거 받으시면 되요.”

나는 서둘러 말했으나 할아버지는 나를 한 번 보고 계산기를 꺼냈다.

“100원 곱하기 2. 그리고 더하기 200원.”

 우리는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벌써 쌀자루 뒤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듯했다. 

“언니 쥐 나온 거 아냐?”

“아닐 거야.”

나는 계산이 끝나자마자 사또밥과 쌍쌍바를 챙겨 내달렸따. 다행히 쥐는 마주치지 않았다. 운이 좋았다.

“언니가 이거 정확하게 나눠줘. 부러지면 안 돼. 나 울 거야.”

설희는 말했다. 

“됐지?”

“아닌데, 이게 더 많은 거 같은데.”

“그럼 이거 먹던가.”

진이는 복희와 설희에게 더 많아 보이는 아이스크림을 주었다.

모두 만족한 표정이었다. 아이스크림은 손에 쥔 채 사또밥을 다함께 먹으며 걷고 또 걸었다. 하나뿐인 사또밥으로 우린 말없이 흡입했다. 아이스크림은 녹고 있었다. 손에 묻은 달콤한 가루까지도 쪽쪽 핥아먹었다. 방방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쌍쌍바도 사라졌다. 

“우리 이제 방방 타자. 뛰어갈래?”

설희가 내 손을 잡고 날 멈춰 세웠다. 

“방방 할머니 무서운데”

“나도...”

복희도 주저했다.

“괜찮아. 그 할머니 홍콩할머니 아니라니깐.”

 진이는 복희와 설희 등을 떠밀었다. 사실 방방 할머니가 홍콩할머니로 의심받는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머리가 하얗고 길다. 눈빛이 사납다. 욕도 잘했다. 흉흉한 소문이 날 수 밖에! 

 소문은 이러했다. 방방할머니가 원래는 홍콩에서 오다가 고양이랑 죽었고, 고양이와 영혼이 합쳐져서 귀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일부러 아이들을 많이 만나려고 방방을 설치했으며 혼자 남는 아이를 납치해 잡아먹는다는 소문은 웬만한 아이들이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귀신 소문치고는 방방은 늘 아이들로 북적였다. 너무 재밌어서 귀신을 잊게 하는지도 몰랐다. 

“괜찮아 언니가 있잖아!”

“할머니 뽑기 5개 해 주세요. 그리고 방방 5명이요!” 

 아이들은 홍콩 할머니라는 커다란 관문을 통과하고 일제히 방방장으로 뛰어 들어갔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조금만 더 뛰면 하늘에 진짜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뽑기 다 됐다!”

 바늘 끝에 침을 많이 묻혔지만 결국 별모양은 깨지고 말았다.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지만 “괜찮아, 괜찮아!” 라며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우리는 신나게 뛰었다. 너무 재밌어서 1시간도 10분 같이 느껴지는 즐거운 내 인생!

“시간 다 됐다!”

1시간 30분은 더 탄 거 같다. 복희와 설희는 비틀거리며 내려왔다. 

“하하 언니 어지러워!”

“좀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우리 이제 고무줄놀이 하자!”

 집근처 골목으로 갔다. 다행히 고무줄 끊기 대장인 혁구는 보이지 않았고, 순금이는 혼자 공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동네 아기들만 순금이 옆에서 공깃돌을 넘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 지물포네 지은이도 골목으로 나왔다.

“언니 같이 하자!”

지은이는 새침때기이지만 고무줄을 잘해서 아이들이 잘 끼워 주었다.

“그래 그럼 설희랑 같은 편하고 고무줄 잡아.”

이제부터 나의 독무대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소나무야 유에프지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사라져간

 전우야 잘 자라!”


 뒤돌려 차기로 고무줄을 발끝에 걸은 나를 모두 우러러본다. 특시 순금이는 입을 헤- 벌리고 구경한다.  우리학교 진짜 고무줄 여왕은 키 큰 미선이지만, 오늘만큼은 내가 여왕이다.

‘전우의 시체는 사실 좀 슬픈 노래인데.’

나는 팔짝팔짝 뛰면서도 적군을 무찌르러 목숨을 내놓고 전진하는 군인 아저씨들을 생각했다. 조금씩 배가 고파왔다. 뱃속에서 전쟁이 나는 것 같았다.

“꼬르륵 꼬르륵.”

진이는 고무줄을 놓고 배를 쓰다듬었다.

“언니야 나 배고파.”

“아까 먹었는데 뭘 배고파. 조금만 더 기다려. 아이 귀찮아.”

 춘하동 골목은 노랫소리로 절정을 이루었고, 구수한 밥 짓는 냄새가 나를 비롯한 아이들의 놀이를 가까스로 멈추게 했다. 밥 냄새에 이어 멸치볶음, 된장국 냄새도 이집 저집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아름아, 밥 먹어라!”

“민희야, 밥 먹어라!”

“혜경아 어딨니. 와서 밥 먹어라!”

“경이야 진이야 밥 먹어라!”

나는 동생들을 챙겨 골목길을 나왔다. 복희와 설희를 빵가게에 데려다 주고 미용실로 들어갔다. 손님은 없었다. 엄마는 한 사람도 오고가기 힘든 작은 부엌에서 밥을 차리고 있었따. 엄마의 손은 미용실에서는 가위손이고, 지금은 뚝딱뚝딱 가재손이다.

‘멸치볶음!’

 나는 방으로 먼저 뛰어 들어갔다. 멸치볶음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다. 프라이팬에 볶고 덜어낸 자리에 남긴 눅진한 설탕을 긁어 먹는 맛은 달고나 같다.

“아 맛있어.”

“그게 뭐 그리 맛있다고. 손부터 어여 씻어라.”

만삭인 엄마는 땀을 흘리며 서둘러 밥상을 차렸다. 행여나 손님이 올까 서둘렀다.  춘하동 골목은 금세 썰렁해졌다. 순금이만 남았다. 순금이는 공깃돌을 주머니에 넣고 굴리며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리어카를 끌고 다른 동네를 돌고 오느라 어둑해진 후에야 춘하동에 도착했다. 

“순금아~ 아이고. 되다.”

순금이를 부르는 할머니의 지친 목소리에도 순금이는 신이 나서 달려갔다. 순금이와 할머니가 두런두런 주고받는 이야기 소리가 우리집 부엌까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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