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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고래 Oct 22. 2023

브루클린 쥐소동

우리 같이 노올자 #9.

 브루클린에 들어오자 모두 긴장했다. 피아노 음악이 들리는 경양식당은 금광루나 마포갈비와 달랐다. 훨씬 더 고급지다고 할까. 고동색의 가죽 소파들이 테이블 사이에 두고 두 개씩 마주 보고 있었다. 모두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것들이었다. 

“엄마. 비후까스, 돈까스, 함박스텍, 오무라이스가 뭐야?”

“...그냥 오늘은 다 돈까스 먹는 거야.”

진이는 시무룩했고, 아마 엄마도 돈까스 빼고는 다른 메뉴들을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싫어 나 비후까스 먹을래.”

“안 돼. 오늘은 다 돈까스라니까. 너 집에 갈래?”

“쳇.”

진이는 테이블위 포크와 나이프, 수저를 보았다.

“엄마 여기서는 포크로만 먹어야해?”

“그래, 이따가 언니 연주 끝나면 음식이 나올 거야. 짭짭 소리 내서 먹지 말고, 조용히 먹어야 해.”

“허허 여보, 사람 먹는 게 다 똑같지. 꼭 그렇게 까지 해야 해?”

엄마에게 핀잔을 주는 아빠 목소리는 묵직했다. 평소 같지 않은 목소리였다. 아빠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어딘가 영 불편한 모습이었다. 긴장한 경이는 배가 조금 아팠지만 아빠 모습에 웃음이 났다. 조금씩 긴장은 풀렸지만, 학급회의때의 악몽이 떠올라 심장이 계속 쿵쿵 뛰었다. 

 일 년에 한 번 피아노 학원에서는 연주 발표회를 한다. 나도 드디어 근사한 치마를 입게 되었다. 하지만 어딘가 좀 모자란 구석이 있었다. 빨간 체크 무늬 치마에 스타킹과 구두까지 좋았는데, 회색 모직 자켓이라니. 회색이라면 지겨운 데 말이다. 엄마는 서울 남대문 시장까지 가서 직접 사오는 수고를 했지만 여전히 배려가 없었다. 이제는 엄마가 회색을 좋아한다고 확신했다. 


 “오늘 참석해주신 학부모님 감사드립니다. 그간 열심히 연습한 우리 아이들의 연주를 잘 들어주시고 힘껏 박수쳐 주세요. 감사합니다!”

검정 투피스를 입은 금영란 원장선생님은 안경을 올리며 말했다. 호랑이 원장님이 오늘은 얌전한 고양이로 변신한 것 같았다. 선생님의 위로 올라간 눈에 물감처럼 색색 화장을 하니 무섭기보다 좀 불편해 보였다.

 미선이 엄마는 파란색 아이섀도를 했고, 복희 엄마는 ‘달려라 하니’에 나오는 고은애 아줌마처럼 분홍색 립스틱을 바르고 한껏 멋을 부렸다. 미미 엄마는 평소에도 화려한데 오늘은 더 휘황찬란했다. 과유불급이라고 하던가. 주먹만 한 호박 목걸이와 진주 팔찌, 검정 융드레스 위에 반짝이 가디건이 모두 서로 자기만 빛나겠다고 싸우고 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욕심쟁이처럼 보이기만 했다.

 사실 오늘 제일 예쁜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는 살짝 웨이브가 들어간 단발머리에, 하얀색 블라우스를 입고 겨자색 스카프를 멨는데 참으로 고왔다. 아이들은 연습한대로 잘 연주하기도 하고, 실수하기도 했지만 모인 부모님들은 박수를 치며 격려했다. 아빠들은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나는 마지막 차례였다.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오다 못해 녹아 없어질 것 같아. 으 떨려. 청심환도 효과가 없나봐.’

 아침에 엄마가 준 청심환 반 알도 소용없었다. 연주곡 ‘소녀의 기도’를 천 번도 넘게 연습했는데 벌써 손가락이 잠자리 날개처럼 떨렸다. 배도 다시 아픈 것 같았다. 선생님이 미리 와서 대기하라는 사인을 주셨다. 나는 미미의 화려한 왈츠 연주가 끝내고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검은 검반과 흰색 건반이 뒤섞여 회색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어떡해. 생각이 안 나...’

선생님이 다가 오셨다.

“경이야. 연습한대로만 해. 틀려도 괜찮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심호흡을 하고 건반 위에 손을 올렸다.

“띵 띵.”

나는 첫 음부터 틀렸다. 

“어머, 경이가 긴장을 했나보네. 호호호호.”

미미 엄마가 피아노 바로 옆에 앉았기 때문에 그 웃음 소리는 더 크게 들렸다. 

“부모님들 경이가 긴장을 많이 했나봐요. 우리 학원에서 제일 가는 실력자인데 말이죠. 자, 모두 박수를 크게 쳐주세요!”

“경이 파이팅!! 언니 잘 해!!”

난 붉어진 얼굴을 푹 숙이고 도망갈까 생각했다.

‘도망가면 또 웃음거리만 되겠지. 특히 그 녀석한테 말이야.’

 나는 혁구를 생각하니 갑자기 주먹을 꽉 쥐게 되며 힘이 났다. 이상한 일이었다. 악보가 떠올랐다. 멋지게 연주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엄마 아빠의 흐뭇한 미소가 얼핏 보이는 듯했다. 의자에 일어나서 관중들에게 멋있게 인사를 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때 미미가 소리 질렀다.

“꺅!!!”

“어머 저게 뭐야?”

“꺅!! 쥐다! 쥐야 쥐, 쥐, 쥐!”

길 잃은 커다란 쥐 한 마리에 브루클린 경양식당 브루클린은 혼비백산이 되었다.

“엄마 무서워! 엉엉!”

진이와 홍이가 엄마의 예쁜 스카프를 잡아 뜯었고, 미미는 엄마의 호박 목걸이를 잡아 뜯어 떨어뜨렸다. 생쥐는 사람들의 비명덕분에 더 놀라서 이리저리 허둥댔다. 순식간에 쥐는 미미 엄마의 기다란 원피스 밑으로 숨었고, 미미 엄마의 얼굴은 하얀 밀가루 반죽처럼 늘어났다. 미미와 미미엄마는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때 나비넥타이를 한 브루클린 사장님이 걸레자루를 들고 세미 엄마의 다리를 가격했다. 미미엄마는 기절했다.

 우여곡절 끝에 쥐는 잡혔지만 미미 엄마의 화장은 반쯤 지워지고, 아무도 밥을 먹지 못하고 집으로 가게 되었다. 진이와 아빠는 그래도 밥은 먹고 가자고 했지만, 모두 반대하는 반대했다. 경양식 사장님은 식사쿠폰을 모두에게 주며 연신 미안하다고 했고, 우리는 조만간 브루클린에 다시 방문하기로 했다. 그때도 아마 쥐는 계속 있을 것이다. 

‘쥐야 조용히 숨어서 먹어. 그럼 너도 좋고, 우리도 좋잖아!’

나는 이상하게 계속 기분이 좋았다. 미미 엄마 치마로 쥐가 들어가서 그런가, 상상 속 혁구 덕에 힘이 생겨서 그런가. 물고기 사는 곳에 상어가 있으면 물고기들이 더 힘이 세진다는데, 여하튼 덕분에 연주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오늘은 꼭 일기 써야지.’

우리 식구는 집에서 주문한 짜장면과 탕수육까지 모두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쥐 같은 건 생각도 안 난다는 듯이 말이다. 하긴, 쥐도 먹고 살아야지. 그 쥐들도 오랜만에 외식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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