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고래 Oct 22. 2023

이층침대가 생겼다

우리 같이 노올자 #10.

 춘하동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눈사람이 거의 녹았다. 연탄재만 남았다. 우리도 이사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미용실은 그대로 두고, 세간살이만 서울로 옮기기로 했다. 아직 가게가 나가지 않아 당분간 엄마는 서울에서 춘하동까지 출퇴근하기로 했다.

“가기 싫어.”

“서울에 아파트 청약 당첨되는 일이 어디 쉬운 줄 알아?”

“그래도 싫어.”

나는 몇 날 며칠을 울었다. 친구들과 헤어지는 일도, 선생님을 더 이상 못 본다는 사실도 정말 우울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엄마는 너무해. 나에게 준비할 시간도 안 주고.’ 

 엄마아빠는 동네 사람들과 삼겹살도 굽고, 서로 잘 살라고 덕담도 건넸다. 복희 엄마는 부러워했다.

“경이 엄마. 성공했어. 그렇게 열심히 일하더니. 서울에 아파트라니 정말 대단해요!”

“맞아요. 이건 진짜 축하할 일이지. 다 한 잔 받아요!”

세탁소 아저씨가 주시는 술을 엄마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래요. 오늘 같은 날은 좀 마셔야지!”

엄마는 기분 좋게 한 잔을 다 비웠고, 아빠는 엄마가 처음으로 술을 마시는 모습에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

 “엄마 아빠는 뭐가 그리도 좋은 걸까.”

 뼛속까지 춘하동 피가 흐르는 나와 진이만 서글펐다. 홍이는 엄마 아빠와 언니들만 있으면 어디든 상관없는 아기였다. 특히 나의 슬픔은 겨울의 쓸쓸함과 어울려 더 울렁거렸다. 사춘기인가. 

 이사는 겨울 방학에 했다. 이미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고 애틋함을 나누었지만 여전히 모든 것이 낯설고 허전했다. 하지만 진이는 서울 아파트를 보고 금세 배신자의 모습을 보였다.

“우아. 아파트 진짜 좋아! 언니 봤어? 봤어?”

“아 봤어.”

“방이 두 개나 있고 화장실도 안에 있어!”

“.......”

진이는 곧장 오줌이 마렵다며 화장실을 사용해 보았다.

“언니 물도 진짜 잘 내려가. 짱이야.”

“그래? 그래서 뭐.”

“쳇. 언니도 좋으면서!”

 화장실이 집 안에 있다는 사실이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새하얀 변기와 냄새도 안 나는 깨끗한 공간을 보니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기쁨을 표현하는 것은 춘하동 골목과 친구들을 배신하는 것이었다. 진이는 아파트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소리쳤다.

“우아 이층침대다! 내가 2층에서 잘래!”

진이는 침대를 오르락내리락 했다. 

“홍이는 우선 엄마랑 자고. 경이와 진이가 침대를 쓰도록 해라.”

“진짜 신난다. 엄마 고맙습니다!”

“네……”

이층 침대에 오르니 바로 아파트 복도다. 창문 밖 풍경이 잘 보인다. 

‘여긴 아파트 숲이구나.’

쌀쌀한 바람이 나의 뺨을 때렸다. 커다란 육교 건너편에는 여기보다 더 높은 아파트들이 으스대고 있었다. 

“언니 옆집에는 누가 살까?”

“글쎄.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네.”

 아파트 복도마다 수많은 집이 있었다. 창문마다 도둑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쇠창살로 막아놨는데, 도둑이 아니라 친구도 못 들어오게 하는 것 같았다. 어디서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았다.

 “경이언니, 진이언니 노올자-”

혼자 청승맞게 훌쩍거렸다.

“언니 왜 그래? 울어? 왜 그래?”

눈치 없는 진이는 새로 생긴 책상에 앉으며 말했다.

“엄마~ 언니 또 울어요!!”

“야 조용히 해. 내가 언제 울었다고!!”

“너희 또 싸우니. 여기까지 와서 싸우면 어떻게. 이제 둘이 의지하고 더 잘 지내야하지 않겠어?”

“네…”

그리고 엄마는 우리 목에 목걸이 열쇠를 각각 하나씩 걸어주었다.

“절대 잃어버리면 안 돼. 앞으로 엄마는 홍이랑 미용실로 출근해야 하고, 엄마가 집에 오기 전에 너희가 먼저 집에 도착하게 될 거니까. 이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와야 한다.”

“한 달만 경이가 동생 잘 봐주고. 가게 나가는 대로 엄마가 집근처로 옮길게.”

“엄마 나도 따라가면 안 돼?”

“얘는 무슨 소리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아라.”

“…….”

 나는 이제 이곳에 적응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나는 이층침대에서 친구들이 전해준 편지들을 읽고 또 읽었다. 조금씩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 나는 정말 사춘기인가. 그리고 조용히 일기를 썼다. 


“아침에 까치를 보았다.

 까치는 좋은 소식을 가지고 또 올까?

 친구들이 보고 싶다.

 그리운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서울 살이를 잘 해나갈 수 있을까?

 아파트 불빛들이 참 밝다.”


 5학년이 되고 맞이한 개학 첫 날. 아빠보다 더 나이가 많은 김석 선생님은 일기장에 이렇게 확인 글을 남겨주었다. 딱 한 문장이었다. 

“빨리 적응하렴.”

 붉은 볼펜의 글씨는 서울의 매섭고 차가운 바람 같았다. 박은혜 선생님은 한 번도 이렇게 쓴 적이 없었는데 섭섭하고 왠지 모르게 서러워졌다. 선생님이라면 이렇게 써주셨을 것이다.

“경이에게 분명 까치가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올거야. 힘내렴.”

춘하동에서 까치가 올까? 나는 서울이 싫다. 


작가의 이전글 브루클린 쥐소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