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고래 Mar 28. 2024

'엄마'에 관한 책 3권 리뷰

제목에 엄마가 들어가면 괜히 끌리는 이작가의 짧은 서평



(1)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최지은 지음, 한겨레출판


 ‘싱글 인 서울’이라는 영화에서 남주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혼자 이지 않는 자 유죄!” 유죄 투성인 나는 과거 결혼이 이렇게 좋은가 싶을 정도로 행복했었고, 정확히 3년 후부터 균열이 생기고, 결혼생활 15년 동안 남편과 여자의 삶과 집안일에 대해 치열하게 싸우고 지금까지 왔다. 투쟁의 결과 나의 남편은 아빠와 남편의 역할뿐 아니라 웬만한 살림에도 능숙하고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서로의 역할과 결정과 생각을 존중하며 불쌍히 여기게 되었다. 얼마나 큰 진보인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노력과 고민만큼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사람들의 노력과 고민도 매우 처절하다. “왜 애 안 낳아?”라는 질문은 이제 무례하다. 특히 결혼하고 애 많이 낳는 것이 하나님 뜻이라는 무례하고 허튼 설교 따위 하지 마시길.


“아이를 낳지 않는 여자는 ‘못됐고’,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합의한 남자는 ‘착하다’고 평가되는 것은 ‘애도 안 낳아주는 여자랑 살아주는 남자는 참 관대하다’는 인식에서 나온다. 하지만 남자라면 누구나 아이를 갖고 싶어 한다는 말에 담긴 진실은, 남자들이 아이라는 존재 자체를 갈망해서라기보다 자기 몸 하나 상하지 않고 자기 성까지 따르는 아이를 편하게 얻을 수 있으니 쉽게 아이를 바란다는 쪽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있어야 가족이 완성되고 그런 가정이어야만 유지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진심으로 아이를 원하지 않는 부부가 있다는 사시로가 그들이 행복하게 가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184쪽)


“모든 여자가 어머니가 될 필요는 없다. 세상에는 세 부류의 여자가 있다. 어머니의 운명을 타고난 여자, 이모의 운명을 타고난 여자, 그리고 아이로부터 반경 3미터 내에 있어서는 안 되는여자.”(53쪽)


“낳아주다, 라는 어딘가 어색한 표현은 의외로 기혼 여성들에게서 종종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자신의 행복과 배우자의 욕구가 무 자르듯 분리되지 않고, 원 가족들의 기대까지 더해지는 경우 여성은 자신보다 ‘최대 다수의 행복’을 고려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 (105)


(2) 《사춘기 엄마의 그림책 수업》, 최정은, 옐로브릭


 최근 그림책 <장산범 도토리>를 출간한 최정은 작가님의 책이다. 마흔이 그림책에게 들려준 말도 읽어보았고, 두 번째 산문집도 교과서 삼아 읽었다. 워낙 그림책 분야에서 베테랑이시기에, 작가님이 고르고 고른 그림책 목록들을 소중하게 보관 중이다. (보관만 하면 안 되는데 ㅋㅋ 분주할수록 그림책과 멀어지는 현상이 생긴다) 그림책을 통해 작가님이 이루어가는 공동체의 문학적 소통과 일상의 나눔과 변화들은 더없이 소중하다. 난 문학의 힘을 믿는다. 다정한 힘으로 가득 채워진 책.


“결코 늦은 때는 없습니다. 그저 한 걸음 내디디면 됩니다.”(236쪽)



(3)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하재영, 휴머니스트출판그룹


 페미니즘 도서가 익숙하지만 최근 나에게 불편했던 이유는 전달방식에 있어서의 취향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동시에 《내 어머니 이야기》를 재독하고 있었고, 오랜 시간 동안 여성의 위치나 생각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를 문학과 비문학을 통해 동시에 톺아보며 무엇이든 문학을 통해 천천히 그리고 매우 세심하고 풍성하게 이야기를 전달해 주는 것에 매우 효과적인 다정함을 느끼게 되었다. 하재영 작가의 책 또한 어머니의 회고록이 수록되어 있지만 어쩐지 많이 수정된 느낌이고, 결론과 생각을 재빨리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것 같아 아쉬웠다. (나에게 소화할 시간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역설적이게도 이 책이 좋았던 건 작가의 솔직하고 명확한 관찰과 표현, 통찰력 등으로 여성의 힘과 삶에 대해 기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독자는 참 이상한 존재다.


“1984년 3월에 할아버지가 쓰러지고 10월에 이사했어. 그때부터 북성로 생활이, 30년에 가까운 시집살이가 시작된 거야.” (61쪽) …. (중략)…. “결혼한 지 7,8년 되었알 때 처음으로 ‘결심’을 했어. 그전까지는 ‘주어진’ 상황에서 ‘해야 하는’일만 했거든. 내 결심이 뭐였냐면 ‘포기하자.’(62쪽)


‘어머니’만 원인이라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 말은 모성을 향한 사회적 명령의 일부처럼 보인다. 그 명령이란 ‘어머니는 자식에 대한 모든 책임을 떠안으라’는 것이다. 나는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고 여러 사건에 영향을 받았지만, 정신의학은 생애 초반에 이루어진 단 한 사람과의 관계에 주로 집중한다. 거기에는 아버지도, 다른 가족도, 또래 집단도, 선생도, 사회적 억압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123쪽)


“노동자로서의 나의 일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비존재에게 사해지는 폭력의 경험’이다. 리베카 솔닛은 회고록 《내 비존재의 회고 Recollection of my non-existence》에서 자신의 젊은 날을 ‘비존재’로 정의하며 그 시절에 겪은 폭력을 열거한다. 10대 시절 성인 남성이 섹스를 강권한 일, 길을 걸어가다가 일면식도 없는 남자가 자기 얼굴에 침을 뱉은 일, 근육질의 남자가 버스에서부터 집까지 쫓아온 일, 귀갓길에 젊은 남자 여럿에게 둘러싸여 강도를 당한 일, 그 밖에도 한밤중에 낯선 남자가 끈질기게 따라오고, 말을 걸고, 고함치고, 물건을 빼앗고, 자기 몸을 함부로 우며쥐었던 일에 대해서. 또한 아는 남자, 친밀한 남자에게 겪은 폭력에 대해서도.”(152쪽)


“이 책에서 나를, 나의 엄마를-솔닛의 표현을 빌려-여러 번 ‘비존재’로 표현했으나 진정으로 비존재인 나의 할머니는 이 책에서조차 부재한다. 이 글은 결여되었다.”(260)



매거진의 이전글 3월의 그림책 5권 추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