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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Oct 27. 2021

내 질투에선 썩은 냄새가 나

<아네트>_정말 당신의 심연을 들여다봐도 될까.

아네트

영화는 경쾌한 음악과 함께 분주하게 무대를 움직이는 배우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각자 주어진 역할에 맞춰 의상과 소품을 준비하던 배우들은 이제 시작하자는 감독의 말을 시작으로 영화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길을 나서기 시작한다. 경쾌한 리듬으로 '정말 이야기를 시작해도 될까'라는 물음을 던지며 본격적으로 관객을 영화 속으로 초대하는 배우들의 모습은 긴장과 기대가 뒤섞인 표정이다. 길을 걷는 배우들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감독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한동안 그들의 모습을 응시하며 영화의 막을 알린다. 안개가 자욱이 깔린 무대에 문이 열리고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헨리는 우스꽝스러운 가발을 쓴 채 무대로 활보하기 시작한다. 그저 몇 마디 말과 행동을 할 뿐인데 그를 바라보는 관객들은 그가 하는 모든 행동에 과장된 표정과 웃음으로 화답한다. 한편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무대를 누비던 오페라 가수 안은 극의 절정의 순간 피를 토하며 장렬히 무대 위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그의 죽음에 화답이라도 하려는 듯 관객들은 그에게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낸다. 무대가 끝난 후 만난 두 사람은 관객을 죽여줬다는 말과 관객을 구원했다는 말로 각자의 무대를 평한다.


예술가들의 도시 LA, 오페라 가수 `안(마리옹 꼬띠아르)`과
스탠드업 코미디언 `헨리(아담 드라이버)`는 첫눈에 서로에게 이끌린다.
함께 인생을 노래하는 두 사람에게 무대는 계속되지만, 그곳엔 빛과 어둠이 함께한다.



첫눈에 이끌려 사랑에 빠지게 된 두 사람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세간의 말을 뒤로한 채 더욱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사람들의 비난에 비웃기라도 하는 듯 결혼까지 하게 된다. 결혼과 동시에 그들의 삶은 무대 위의 연극처럼 실시간으로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되고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에도 굳건히 사랑을 이어가던 그들은 아네트의 출산 이후 조금씩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아네트를 출산한 후에도 나날이 위상이 높아져가는 안과 달리 점차 인기의 하락세를 맞이하게 된 헨리는 자신을 뒤덮은 짙은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무대에 서게 된 헨리는 그동안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내면 속 짙은 감정을 코미디의 힘을 빌려 꺼내놓는다. 어쩌면 그동안 몹시도 실행에 옮기고 싶었지만 결코 그럴 수 없었던 행동을. 하지만 결국 입 밖으로 꺼냄으로써 기어이 실행에 옮기고 말겠다는 그 행동을.


안과 헨리의 사랑을 먼발치에서 동경하며 언젠가 그들처럼 세간의 관심과 인정을 받는 지휘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던 반주자는 안의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며 맹렬히 지휘를 하기 시작한다. 그토록 자신이 서고자 했던 무대에 당당히 서서 지휘를 하면서도 그의 깊은 내면 속엔 안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이 가득하다. 헨리의 집에 초대받은 반주자는 놀랍도록 안의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은 아네트를 발견하게 되고 헨리는 아네트와 인생 2막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야욕을 들어내며 반주자에게 함께 할 것을 제안한다. 아네트에 대한 안쓰러움과 안에 대한 깊은 그리움으로 헨리의 제안을 수락한 반주자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아네트의 무대에 함께 서게 된다. 아네트와 함께 다시 인생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헨리는 안과 무서울 정도로 닮은 아네트의 모습을 보며 또다시 깊고 깊은 심연의 동굴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도저히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심연 속에 빠져 스스로를 망쳐버린 헨리는 어느새 훌쩍 자란 아네트를 뒤늦게 발견하게 된다. 언제나 어린아이 일 줄만 알았던 아네트는, 언제나 꼭두각시처럼 헨리 자신이 원하는 목소리만을 낼 거라 생각했던 아네트는 그가 알지 못하는 새에 훌쩍 자라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더 이상 누군가의 꼭두각시로 살지 않겠다는 결연한 목소리를 내며. 영원히 사랑하는 것을 곁에 두지 못할 거라는 저주 섞인 말을 던지며 헨리 심연 깊은 곳에 들어 차 있는 더러운 마음을 비난한다. 간절히 갖고 싶어 할수록 더욱 진득하고 더러운 냄새를 풍기는 그 감정을. 탐하면 탐할수록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마는 그 썩은 냄새가 나는 마음을 단호하게 질타한다. 영원히 사랑하는 것을 곁에 둘 수 없는 벌을 받게 된 헨리는 눈물로 뒤늦은 후회를 고백한다. 절대 심연 속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절대로 그 축축하고 진득한, 영영 헤어 나오지 못하는 그 짙은 감정 속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간절한 외침과 함께.


*본 포스팅은 영화사로부터 시사회에 초청받아 작성하였으며, 내용은 주관적인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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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정말로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하지 못했던 말을 꾹꾹 눌러 담아냈습니다.

부디 독자님들께 그 마음이 가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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