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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앙 Oct 04. 2023

육절기로 고기 써는 남자와 빗자루로 청소하는 여자 ||

청소기 없는 여자

결혼하면서 포기한 것이 전자제품을 많이 가지게 됐다는 사실이다. 혼자 자취할 땐, 가지고 있던 전자기기는 10개가 채 되지 않았다.


휴대폰

냉장고

다리미

세탁기 (4kg)

건조기 (10kg)

눈마사지기

필름식 카메라

선풍기

고장 난 청소


 전기세가 들 일이 거의 없었다. 세탁기 이불이나 청바지 수준을 빨 때만 사용하고 거의 손빨래로 해결하는 편이었다. 눈마시지기IT쟁이다 보니 눈이 뻑뻑할 때 가끔 쓰고 필름카메라는 소장용이다. 전기세 제일 많이 잡아먹는 전자제품은 건조기였다. 고양이 2마리 키우는 집사로 버티다 버티다 결국 샀었다. 똑같은 이유로 청소기 사서 썼었는데, 청소기는 고양이 털에 못 버티고 고장 나 버렸다. 이 때다 싶어 고치지 않고 과감하게 빗자루질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미니멀리스트로서 제로웨이스트를 꿈꾸며 전자기기를 줄이면서 내 삶은 약간 불편해졌었다.


청소기 대신 빗자루


허리 숙여 빗자루질하고 나면 손목과 팔이 뻐근하다. 결국 대충 청소하게 되고 집은 약간의 지저분함을 유지다.


전기밥솥 대신 냄비밥


거의 매번 물이 넘쳐 가스레인지가 살뜨물로 흥건해지고 10번 중 8번은 냄비바닥에 밥알이 눌어붙는다.


전기장판 대신 고양이


 외풍이 심했던 자취이었다. 겨울에 추울 땐 고양이 배 밑에 발을 넣어 녹인다. 이불속으로 들어온 이들과 서로 체온을 나누며 자곤 했다.


전자레인지 대신 가스레인지


 차가운 밥을 가스레인지로 덮이고 나면 또 냄비에 밥이 눌어붙어 물에 불려야 한다.


에어컨 대신 선풍기와 부채


 점점 혹독해지는 여름을 선풍기와 부채로 지내는 건 고양이들에게 가장 미안한 일이었다. 고양이들은 입을 벌려 숨 쉬지 않는다는데 우리 집 냥이들은 여름이면 헥헥 거린다.


홈매트 대신 그냥 물리기


 집 뒤편이 산이라 모기, 거미 등 벌레가 많았다. 모기장 플라스틱이라 사지 않았다. 모기 앵앵 거리는 소리에 뺨과 이마를 때리며 다.


이런 불편함이 마음에 들었고 일종의 취미처럼 즐겁게 이어나갔다. 이 마저도 어떻게 줄일까 고민했다. 예를 들면, 냉장고 대신 모래와 물, 도자기를 이용해서 신선식품을 저장하는 인도식 보관법을 시도해보고 싶었다. 박물관에서 옛날식 다리미를 보면 저걸로 바꾸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이렇듯 남들은 당연하다고 느끼는 현대 문물에서 벗어나 사는 것이 재밌고 뿌듯했다.


20년 여름에도 선풍기와 부채, 그리고 헥헥거리는 고양이와 함께 더위를 버티고 있었다.  해 8월 남편을 처음 났다. 는 항상 시원한 음료를 챙겨 왔는데, 캠핑용 냉장고에 플라스틱 음료수를 넣어 왔다. 왜 이때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그는 전자제품 마니아였고 현대 문물을 충분히 만끽하면서 사는 사람이었다.


지금 남편과 함께 사는 집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전자제품이 많다.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법한 모든 전자제품뿐만 아니라 육절기, 제빙기, 시멘트 드릴 등 이 사람과 결혼하는 바람에 생긴 전자제품까지. 지난 2년 동안 그와 살면서 전자 제품의 편리함에 중독되어 지난날의 나를 잃어버리고 있다.


지금은 청소기로 청소한다. 프게도 너무 편하다. 작은 자취방은 빗자루와 걸레질로 충분했지만, 2배가 된 지금 집은 혼자선 무리고 남편에게 그 불편함과 지저분함을 강요할 수 없 변명하고 있다.


전자기기 더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하고 있다.


세탁기가 크지만, 수건은 일주일에 하나 말려 쓰기

전기밥솥 있지만, 냄비밥하기

식기세척기 있지만, 따뜻한 물로만 설거지하기


 남편은 나보다 수건을 3배 이상 쓰고 전기밥솥으로 밥 하고 식기세척기는 고온/고압으로 설정해서 설거지한다. 대신 냄비밥으로 눌어붙은 냄비를 물에 불려 설거지해 주고 따뜻한 물로만 씻어 아직 기름에 미끌미끌한 그릇도 군말 없이 쓴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냥 받아들이고 있다. 내가 전자제품 그득함을 받아들였듯이 남편도 혼자 살았을 때 절대 하지 않았던 것들에 익숙해져 가고 있에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내 다음 계획은 제빙기를 없애는 것이다.


빗자루


전기장판 대신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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