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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앙 Sep 29. 2023

육절기로 고기 써는 남자와 빗자루로 청소하는 여자 |

육절기 있는 남자

여러분은 고기를 어떻게 사는가.


오늘 저녁엔 고기 좀 구워 먹어볼까 할 때나 손님 초대상으론 고기만 한 게 없으니 나는 그럴 때 마트에 가서 필요한 만큼만 산다. 물론 좀 남을 순 있지만 2~3일 안에 소진되는 편이다. 가끔 소고기 미역국 끓여 먹는다고 사고 남은 홍두깨살을 냉동고에 꽤 오래 보관할 땐 있지만 그렇게 자리를 차지하진 않는다.


이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고기를 대하는 자세가 아닐까. 오래 두면 갈변하는 데다 비싼 식재료니만큼 겨두기 보단 정육점에서 그날 썰은 신선한 고기를 먹는 게 더 낫지 않은가. 게다가 미국 축산업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후부턴 한우나 호주산만 먹는다. 미국산에 비해 가격대가 달라 딱 먹을 만큼만 구매하게 된다.


남편은 아니나 다를까 여기서도 달랐다.

그는 코스트코에서 식당에서나 쓸 법한 5kg짜리 덩어리 미국산 고기를 사서 냉동고에 쟁겨두고 육절기로 직접 썰어 먹는다. 그러면 싸게 많이 살 수 있고 집에 고기가 항상 있다는 상황이 든든하단다. 그러다 보니 냉동고가 커야 했고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양문형 냉장고를 쓰게 됐다. 반댄가? 양문형 냉장고를 사서 냉동고가 넉넉하니 덩어리 고기를 사게 된 것일까. 모르겠다. 여튼 그는 육절기를 가지고 있었다.


 직접 썰어 먹는다는 자부심을 가져 왔던 그는 나의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에 고맙게도 고기에 대한 자세를 바꿔 주었다. 필요할 때마다 사서 먹고 쟁겨 두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코스트코에 가면 습관적으로 덩어리 고기 근처를 서성인다. 나는 그를 말리며 이리 오라고 잡아끌어야 한다.


"고기는 신선하게 먹는 거야~ 한 근만 사서 집에 가서 고기 구워 먹자~"


그제야 남편은 발길을 돌린다.


 이제 덩어리 고기를 더이상 사지 않게 됐지만 육절기를 버리않았다. 가끔 정말 가끔 남편이 통상겹살 사서 얇게 자를 때 꺼내 쓴다. 이렇게 육절기의 높은 활용도를 보여 주면서 버릴 수 없음을 피력하고 있는데다 사용한 뒤에는 날도 깨끗하게 씻고 기름칠도 다시 꼼꼼하게 해서 다시 제자리에 잘 갖다 두기 때문에 버릴 수가 없다.


 내게 필요 없다고, 자리만 차지해서 당근마켓에 당장 올리고 싶다 해도 함께 사는 사람의 물건은 절대 내 마음대로 버리지 않는다. 아주 살짝 설득하긴 하지만 그 또한 강요하지 않는다. 남편 입장을 들어보면 다르게 말할 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남편이 어떤 물건을 아끼는 모습이 보이면 절대 더 이상 버리자고 보채지 않는다. .. 않으려 한다.


어느 날, 남편은 냉장고 문을 열고 고기가 없는 상황을 멍하니 보다 기가 차다는 듯이 말했다.


" 냉장고에 고기가 없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이건 내가 널 진짜 사랑한다는 증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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