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소개팅남이었던 시절.. 부엌, 거실, 안방을 거쳐 드디어 대망의 옷방을 정리할 차례가 되었다.처음으로 날 말렸다. 쉽게 생각하고 시작할 수 있는 방이 아니라며 함부로 건드렸다가 수습이 안 될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그 말은 더 나를 자극했고 18평 아파트의 옷방이 커봤자 얼마나 짐이 많겠어라며 호기롭게 시작했다.
나의 정리 방식은 모든 물건을 다 꺼내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 뒤 물건을 하나씩 계속 사용할지 말지 선택하면서 분류한다.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건 어째서 작은 방에 있던 물건이 거실과 부엌을 꽉 채울 수 있느냐는 것이다.옷과 잡동사니를 모두 꺼내고 나니 나도 그제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국 좀 하다가 나도 지쳐서 엉망으로 두고 나왔다. 미안한 마음으로 다음을 기약하며 미니멀한 나의 집으로 돌아갔다.
실은옷방은 정리의 난이도가 높진 않지만 그 절대적인 물량이 많고 시간도 오래 걸려 지치기 일쑤다.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주말마다 오면서 몇 주에 걸쳐 진행했다.
하나씩 하나씩 물건 주인에게 물었다.
"이거 써?"
다른 남자들도 그런가. 왜 중학생 때 입던 팬티를 아직도 가지고 있을까. 남편 말론 맨들맨들해져서 입으면 편하다나. 학교 교사셨던 아버님이 물려준 넥타리만 거의 100개 정도였는데 남편 직업이 학원 강사라 넥타이 멜 일이 없다. 건조기에돌리고 꺼내지 않아 복구 안 될 정도로 꼬깃꼬깃하면서도 오래 입어 흐물흐물해진 남방은 여전히 입을 만하단다.
옷방 정리하던 중에 우리는 결혼을 약속하게 됐다. 그 애틋한 순간에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 간 건 "좀 더 버려야겠다"였다. 그전에는 "이거 써?"에서 그쳤다면 옷방 타임에는 "이걸 써?"로 변했다. 이 불쌍한 맥시멀리스트는 단호하지 못했고 거의 내 말을 따라줬다.
이렇게 안 입는 옷은 어머님에게 갖다 드리기로 했다. 횡성에서 소일거리로 텃밭을 크게 하시는데 겨울 오기 전에 나무가얼어 죽지 않도록 옷을 입힌다고 하셨다. 그리고 아버님도 일하실 때 사이즈 넉넉한 옷이 필요하다고 하셔서 잘 정리해서 갖다 드렸다. 처음 가져다 드렸을 때 매우 좋아하셨다. 항상 지저분했던 아들네 집이 정리되니 후련하다고 하셨다. 그 말씀에 더 힘입어 몇 번을 두 손 한가득 들고 갔다. 하지만3번째쯤부터 우리 아들 입을 옷은 있냐며 걱정하셨다. 남편은 눈치 없이 90%를 버린 거라니까~ 라며 재밌다는 듯이 말하고 나는 약간 민망해하면서 아직 저보다 많아요~라고 했다.
신혼집이 정리되고 부모님께서 집에 놀러 오셨다. 그렇게 버리더니 어떻게 입을 옷은 있나 싶어 옷방을 열어보시곤 엄청 놀라셨다. 형님들을 불러 "얘들아~ 옷방 봤니? 옷이 저게 다라고?". 나는 황급히 "어머님~여기서 저기까지가 다 남편 옷이에요. 제 옷은 더 적어요~"라고 변명했는데 몇 번을 옷방이 제일 놀랍다고 말씀하셨다.
남편 옷을 다시 좀 채워야 하나 생각했는데 어머님은 우리의 옷방에 자극받고 돌아가시자마자 어머님 아버님의 옷을 정리하기 시작하셨다. 말 그대로 옷의 양에 놀라고 옷방의 여유로움이 신기하신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