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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앙 Oct 19. 2023

남편이 프라모델 사도 되냐고 묻는다

뭐래~

 회사에서 나는 환경주의자 호소인이다. '환경주의자'라는 단어가 좀 고전틱하지만 부연 설명없이 내 가치관을 드러낼 만 한 단어가 현재로선 이것뿐이다. 환경주의자로서 회사에서 지키는 몇 가지가 있다.


 점심 먹을 때 꼭 텀블러를 챙겨 간다. 팀장님이 커피 사 준다고 해도 하필 못 챙겼다면 거절한다. 별나다란 소리 들으면서도 나만 주문하지 않는다. 플라스틱이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빨대는 당연히 사용하지 않고 종이 빨대마저 거절한다.


 소프트 아이스크림 먹을 때 컵과 작은 티스푼을 챙겨간다. 카페 알바생들은 내 얼굴을 알아 보고 내플라스틱 일회용 스푼을 아예 주지 않는다. 


 수저 세팅할 때 휴지를 깔지 않는다. 밥 다 먹고 입을 닦을 때도 휴지 쓰지 않는다. 술과 혀로 사사삭 해결한다. 레기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차원이다.


 물티슈나 일회용의 무언가를 주면 항상 점원을 불러 되돌려 준다. 되돌려 주지 않으면 식탁 위 다른 쓰레기와 함께 버려버리기 때문이다. 점원들은 대체로 귀찮은 내색없이 감사하게도 흔쾌히 가져가 준다.


  내에선 플라스틱 뚜껑을 모으고 있다. 뚜껑 모으는 바구니가 꽉 차면 집에 가져가 깨끗이 세척해서 제로웨이스트 샵에 갖다 준다. 플라스틱 뚜껑은 재활용되지 않아 버려진다고 한다. 모아 가져다주면 분쇄해서 책받침이나 반지 같은 상품으로 만들어 되판다.


 회사 사람들은 내 앞에서 물티슈를 쓰거나 휴지를 툭툭 뽑아 쓸 때 눈치 본다. 그럴 때마다 '편한 대로 하세요. 전 취미처럼 하는 거예요~'라며 부담 주지 않으려 한다. 개중엔 내가 안 쓴 만큼 대신 더 써주겠다는 짓궂은 사람도 있 참 별나게 군다라고 타박 주는 사람도 있다. 다양한 반응에 거부감 느끼거나 답답해하지 않는다. 내 방식이 옳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맞아. 옳은 행동이야. 나도 변해야 하는데' 라며 호응해주는 편이다.


 사람들에 '전 환경주의자거든요~'라고 당당하게 고 다닌다.  만큼 소신가지고 고집스럽게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아.. 그런데 남편 취미가 프라모델이다. 프라모델의 '프라'가 플라스틱의 '프라'. 그중에서도 재활용이 안된다는 미세 플라스틱이다. 아주아주 작고 세밀한 플라스틱 조각로 건담, 오토바이, 비행기 같은 걸 만든다. 완성품은 장식장에 모셔둔다. 1년에 한 두번도 할까 말깐데 베란다 수납장에 프라모델 박스가 수십 개다. 하나씩 완성하면 없어질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줄어들지 않는다. 마트 가면 프라모델 구역을 꼭 들른다. 내 눈에는 지난 주나 이번 주나 다를 게 없는데 이건 신상이고 저건 한정판이고 설명한다. 나는 타인의 취미를 존중하는 자세로 별말 없이 듣고 있다. 속으로는 '500년 뒤에나 썩을 플라스틱 덩어리들...'라 삐죽거리며.



  새끼손톱 반도 안 되게 작은 조각으로 건담 대가리를 조립하는 동안 옆에서 건담이 들고 있을 무기를 조립하기도 한다. 어디까지나 그의 취미 존중 차원이다.


 실은 어릴 때부터 퍼즐을 유독 좋아했었다. 한 번 앉으면 8시간 동안 내리 맞추기도 했고, 일찍 일어나서 30분 정도씩 하고 등교하기도 했다. 맞추는 작업이 2차원에서 3차원으로 승화되어 내 취향. 하지만 내 소신을 꺾을 순 없다. 어떻게 하면 베란다 수납장에서 저 수많은 미세플라스틱 박스들을 없앨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뿐이다.


이삿짐 정리 중, 크리스탈인 줄~


 남편이 마트에서 한참 건담 시리즈 하나를 들었다 놨다 하더니 묻는다.


"이거 하나 살까? 이거 한정판인데.."

 

내 대답은 항상 같다.


"나는 환경주의자야. 내게 묻는 거라면 난 무조건 No야."


남편은 내 앞에서 프라모델을 산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런데도 프라모델 박스는 점 늘어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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