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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앙 Oct 13. 2023

나는 물로만 설거지한다

 결혼하니 집안일을 혼자 다 하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15년 정도 자취는 동안 집안 청소 빨래는 말할 것도 없고 형광등 는 것, 건조기 청소기에 박힌 고양이털 빼는 것 등 집안 곳곳의 자잘한 살림 모두 내 몫이었다. 먹고 싸고 누워 있기만 하는 고양이들에게 '최소한 니네들이 먹은 건 좀 치울 줄 알아야 하지 않냐. 털이라도 좀 어떻게 해보든가.'라고 혼자 한심한 소리나 해댔다. 런데 이제 '나가면서 쓰레기 좀 버려줘'라고 말할 수 있어서 너무 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건 퇴근하고 왔는데 쌓인 설거지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물론 매번 그런 건 아니지만 출근하면서 오늘 저녁엔 설거지해야지 생각했는데 되어 있으면 우렁각시가 왔다 간 거처럼 감사하다.


 이런 새로운 감사함도 잠시. 익숙해지니 남편의 설거지 방식에 슬슬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보인다.


 남편의 설거지 방식은 일명 '집착형 설거지'다.


 저러다 그릇 뽀개지겠다 싶을 정도로 빠드득빠드득 닦는다. 설거지만 얼른 해치우면 되는데 냄비 찌든 때를 없애겠다며 장갑도 끼지 않고 철수세미로 벅벅 닦는다. 휴대폰 지문 인식이 되겠나 싶을 정도다. 그러다 갑자기 가스레인지에 집착 설거지는 내팽개치고 가스레인지를 다 분해해서 30분 넘게 청소한다. 그렇게 바탕 청소하고 나면 목욕탕에 시간 있다 나온 것마냥 손가락이 우둥퉁하게 불려 있다.


  집착형 설거지를 마치고 나서 마무리하지 않는다는 점 문제다. 싱크대에 튀긴 거품이 그대로고 물이 사방팔방 흥건하다. 상판이 나무로 되어 있는덕분에 곰팡이 생기기 시작했다. 수세미는 설거지 비누에 젖은 채로 올려져 있다. 몇 번을 얘기했다. 세균 번식한다니 잘 씻어서 고리에 걸어 달라고. 아무리 말해도 여전히 젖은 채싱크대 안에 널브러져 있다.


 그러다 남편이 원하던 식기세척기를 샀다. 그 집착을 기계가 대신해 주는데 만족도가 높다. 하지만 여기에도 불만 있다. 50분짜리 표준 기능이 아닌 고온 건조에 스팀 기능까지 써서 2시간짜리 모드로 설거지한다는 것.  사람이 하는 설거지에 비해 물의 양을 1/10 만 쓴고 전기도 1/3로 줄일 수 있다고 해서 샀는데 남편처럼 설정해서 할 거면 무슨 의미겠는가. 남편의 논리는 자신의 손가락이 물에 불려지고 지문이 닳는 것보단 낫지 않냐는 것이다.

 

 그럼 남편은 내 설거지 방식에 만족하는가. 전혀 아니다.


나의 방식은 따뜻한 물로만 다닥 하는 '친환경 대충 설거지'다.


 어떤 세제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물로만 그릇을 씻는다. 생각보다 웬만한 기름기도 제거되고 눌어붙은 음식물도 물에 불려놓으면 잘 떼어진다. 필요하면 베이킹 소다나 설거지 비누를 사용하지만 대체로 물로만 해결한다. 남편에 비해 금방 끝낸다. 지난 몇 년 동안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설거지했었는데 이보다 더 환경인 방법이 어딨을까.


 물 설거지에 이르기 전까지 다양한 친환경 설거지를 시도했었다.





1. 베이킹소다


찌든 때, 물때, 태운 자국에 만능 세제인 것은 확실하다. 한 때 모든 집안 청소와 빨래는 오로지 베이킹소다로만 했었다. 다만, 베이킹소다와 식초를 섞을 때 발생하는 기포가 폐에 좋지 않으니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잘 닦아도 물기 마르고 나면 사방팔방 허연 자국이 곳곳에 튀어 있으니 이 점도 감안해야 한다.


2. 소프넛


 대표적인 제로웨이스트 설거지 세제이다. 따뜻한 물에 5알 정도 담가 거품을 내서 사용하는 건데, 세정력이 괜찮은 편이다. 설거지하고 나서 잘 말려야 하는 점이 귀찮고 막 사용하기에 가격이 부담스럽다.


3. 설거지 비누


비닐 없이 종이포장으로만 나와서 좋다. 거품이 잘 나고 성분은 친환경적이라 부담 없이 사용하고 있다. 그래도 모든 성분이 100% 자연 추출물은 아니기에 싱크대나 싱크대 하수구망 닦을 때만 쓴다.


4. 식기세척기


일반 설거지에 비해 물 절약이 탁월하다고 한다. 환경을 위해서라면 식기세척기를 권장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말에 혹해 산 것이다. 물은 확실히 절약될 진 몰라도 식기세척기용 세제(이것도 친환경제품이긴 하다)도 사야 하고 전기세도 들어가니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은 늘어난다.


5. 남편


 시간도 오래 걸리고 친환경적이지도 않다. 다만 편할 뿐이다.


6. 따뜻한 물


 가장 금방 끝난다. 물과 세제, 전기 모두 절약한다. 가끔 기름기나 음식물이 완전히 씻기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땐 베이킹소다나 설거지비누 도움을 받는다. 혹은 언젠가 남편이 식기세척기 돌릴 때 해결되겠거니 한다.  





우리는 경쟁하듯이 설거지한다.


남편은 내가  설거지하기 전에 얼른 기계 안으로 그릇을 넣어 버린다. 그러면 나는 남편이 고온 스팀 설정으로 돌리기 전에 얼른 50분짜리 표준 버튼을 눌러 버린다.


 로 방식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렇게라도 해주는 게 어디랴.


 혼자 살 때 무조건 내 차지였는데 말이다. 설거지가 귀찮아 끼니를 거르기도 했었다. 금은 일주일 정도 안 하고 버티다 보면 어느 날 싱크대에 있던 그릇이 깨끗해져 있다. 게다가 요즘엔 잘 훈련이 돼서 상판도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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