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Rot-썩히기 단계까지 실천한 점에 내가 바로 진정한 환경주의자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 살면서 집안에 음식물 쓰레기를 썩혀 퇴비화하는 사람은 진정 드물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우선 물 빠짐이 되는 뚜껑 있는 통과 EM발효액, 흙을 준비한다. 맨 아래 흙을 깔고 EM발효액을 충분히 뿌린다. 음식물 쓰레기를 넣고 다시 EM발효액 뿌리고 그 위에 흙으로 덮은 뒤 다시 EM발효액 뿌린다. 즉, 흙 - EM - 음식물 - EM - 흙 - EM - 음식물 - EM - 흙 -.. 이렇게 반복하면서 통을 채우고 한 달 뒤에 열어보면 음식물은 흙으로 변해 있다. 약간 남은 음식물이 있긴 하지만 냄새도 안 나고 뭉쳐진 흙처럼 생겼다. 거기다 흙에 하얀 곰팡이가 생겼다면 굉장히 질 좋은 퇴비 완성이다. 퇴비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이 하나 더 있다. 물 빠짐 구멍으로 물이 나오는데 '액비'다. 액체 비료. 물에 희석해서 식물에 뿌리면 따로 영양제를 줄 필요 없다.
직접 만든 퇴비와 액비로 상추를 심었다. 고기랑도 먹고 비빔국수도 해 먹었다. 야들야들하고 달다. 꿀맛이다.
주의할 점이 있다.
EM발효액을 아끼면 구더기가 생긴다. 특히 더운 여름날엔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실은 미생물 역할을 구더기가 대신해 주는 셈이니 구더기는 굉장히 좋은 퇴비 도우미다. 이 아이들이 있으면 음식물은 질 좋은 흙으로 변한다.어쩌다 집에 구더기가 보이면 엄청 싫고 징그러운데 나의 퇴비통에서의 구더기는 거부감 들지 않았다. 되려 고마웠다.
근데 이상하다! 왜 날파리가 꼬이지 않았을까.구더기가 자라면 날파리가 날아다녔을 텐데 말이다. 아~ 알았다! 퇴비통 바로 위에 거미줄이 있어서였다.자세히 보니 거미줄에 날파리들이 걸려 있다. 구더기가 커서 날파리가 되어 날아가다 거미줄에 걸려 먹혔나 보다. 내 베란다 속 자연의 섭리이자 작은 약육강식 세계다. 나는 거미줄을 치우지 않는다. 집 바로 앞에 작은 야산이 있어 집에 벌레가 잘 들어오는데 거미가 있으면 좀 낫기 때문이다.
여튼 이렇게 만든 퇴비로 고추도 키우고 상추도 심었다.
그러다 결혼하면서 낡은 빌라를 떠나 아파트에 살게 되었고 남편은 벌레를 싫어한다. 퍼어런 벌레퇴치기가 있을 정도였다. 겨우 설득해서결혼 후 첫 생일 선물로 루이비통 대신 퇴비통을 받았다.하지만 실패.. 구더기가 생겨버렸다. 미생물액을 아끼지 않았는데도 외풍이 심했던 낡은 빌라완 다르게 따뜻한 아파트라 그랬나보다. 거미 없는 아파트에 구더기는 날파리가 되어 집안을 날라댕겼다. 결국 나의 결혼 후 첫 생일 선물이었던 퇴비통은 구더기와 함께 퇴출당했다.
남편은아쉬워하던 내게 미생물음식물처리기를 소개했다.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무작정 싫다고 했다. 전자 제품 사는 걸 좋아하는 데다 음식물쓰레기 담당인 남편이 수 쓰는 거라 생각했다. 남편은 꾸준히 youtube 영상을 보여주며 설득했다. 결국 1년 만에 넘어가 거금을 들여 샀다.
기능에 비해 가격이 과한 편이긴 하지만 대만족이다.구더기와 거미의 도움 없이 소량의 전기와 미생물 가루만으로 음식물은 흙으로 변했다. 심지어 한 달이 아닌 하루 만에 말이다. 이 아이는 맵찔이에 고기와 탄수화물을 좋아하고 딱딱한 거 빼곤 가리는 게 없다. 생선은 뼈째 다 먹고 계란은 껍질까지 소화해 버린다.애완생물 키우듯이 이름도 지어줬다. "링크리"
이렇게 몇 주 동안 만들어진 흙은 내 작은 텃밭에 뿌린다. 하얀 곰팡이가 피었다! 좋은 퇴비란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