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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앙 Feb 25. 2024

니 똥꼬가 소중하겠니, 지구가 소중하겠니?


휴지 하나 바꾸는 데도 남편과 한참 논쟁했다.

남편은 3겹 보송보송한 엠보싱 있는

향기 나는 천연 펄프 휴지를 선호했고

나는 공공 화장실에서 쓰이는

1겹 얇은 두루마리로 바꾸고 싶었다.


아니, 실은 내가 지향하는 삶은

휴지 없는 화장실이었다.

물로 씻고 타월로 닦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건 너무 도전적이라

1겹 얇은 두루마리라도 사용함으로써

쓰레기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었다.


남편은

“내 똥꼬는 소중하다구!!

라며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나는

”옛날 사람들은 짚이나 신문지로 다 닦고 살았어~

라며 현대 문물이 발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 적응하면 된다는 논리로

설득하려 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그러니까 옛날 사람들 수명이 짧은 거야.

옛날 방식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지 말라구!!


그나마 절충안은 2가지였다.

“우유팩 재생 휴지”와 “대나무 휴지”


천연펄프만큼 부드럽진 않지만

3겹이라 폭신해서 쓸만하다.


솔직히 친환경이라는 점 외에는

천연펄프에 비해 부족하긴 하다.


재생휴지는 대나무 휴지에 비해

약간 거친 느낌이다.

대나무 휴지는 옅은 갈색이라

똥꼬가 잘 닦였는지 확인이 안 돼서

한 번 더 닦게 된다.


대나무휴지


게다가 둘 다 천연 펄프에 비해 비싸다.

항상 이 부분에서 이해가 안 된다

재생 휴지나 대나무 휴지나

천연 펄프에 비해 원료비가 저렴한데

도대체 왜 비싼 걸까.


“친환경”이라는 Tag 가 달리면

비싸도 된다는 기업의 논리가 있는 걸까.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에서

재생휴지나 대나무 휴지를 대량생산으로 하면

지금보다 저렴해질까.


이 모든 불편함과 비용 증가에도 불구하고


뽀송뽀송한 천연펄프 휴지를

쓰고 싶다는 남편의 요구가

지극히 평범하고 일반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유팩 재생휴지나 대나무휴지를 선택했다.

다행히 남편은 잘 적응하고 있다.


어쩌다 호텔 화장실 같은 곳에 갔다 오면,

“간만에 향기롭고 뽀송뽀송한 휴지야~“

라며 좋아라 한다.


이렇듯

소모품 하나하나 바꾸면서

친환경을 고집하는 나 때문에

남편은 새로운 불편함에 적응해야 했고

생활비는 올라간다.


화장실에 항상 따라 들어오는 코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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