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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타 Feb 28. 2023

토종 한국인이 벨기에에서 살게 될 확률은?

당신의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나요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은 계획의 틀 안에서 묘하게 얼렁뚱땅 흘러간다. 학교나 회사는 물론 이번 주말에는 몇 시에 일어나서 A, B, C를 해야지~ 하는 소소한 계획들도 일단 늦잠을 자는 순간 아득했던 지난날의 포부로 탈바꿈한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예상치 못한 순간 갑자기 나타나 내 인생의 중요한 인물이 되는 사람도 있고, 자웅동체처럼 붙어 다니다가 손절에 이른 관계도 있다.


3n년의 삶을 되돌아보았을 때, 내가 가장 무계획으로 살았던 때는 2012년이다. 신입생은 노느라 수업 안 가는 게 국룰이라던 선배들을 뒤로한 채, 나는 대학생이 된 후에 고등학교 때보다 열심히 공부를 했다. 이유도 없이 정해진 교과과정을 따라 공부해야 했던 날과 달리 대학교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과목을 내 자의로 선택할 수 있었다. 더할 나위 없이 흡족했다. 언론정보학과 경영학을 따블로 뛰며 24학점을 꽉꽉 채워 듣는 날들의 연속이었지 마냥 즐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WEST라는 정부 주관 해외 인턴십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번도 외국 생활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던 터라 그러려니 했는데 너야 말로 누구 보다 외국 생활에 잘 적응할 것 같다는 말에 꽂혀버렸다. 그렇다. 나는 상황과 사람에 대한 적응이 빠르다. 음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나 자신의 안위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주변 상황이 어떻든,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좋게 말해 담대하고 쉽게 말해 지빼이 모른다.

※ 지빼이는 해석 상 '본인 밖에'라는 뜻으로, 남자친구인 작음이*가 용기 내서 나를 공격할 때 가끔씩 쓰는 말 중 하나다.

*작음이: 남자 친구(키가 작음/성과급 탄 기념으로 테니스 라켓을 사주겠다며 턱을 쳐들고 다님)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난생처음 해외 거주에 대해 생각해 보았고 오래지 않아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무계획이 ing가 되고, ing가 현실화된 첫 케이스였다.



하루 종일 놀아 놓고 착한 일에는 '책 읽기'를 적는 뻔뻔함


대학생이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해외로 떠날 수 있는 방법은 교환학생이었다. 다행히(?) 학교에서는 굉장히 많은 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많은 선택지 중 내가 고른 나라는 벨기에였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why?"를 묻는 대목이다. 영어권도 아니고 많이 가는 영국이나 프랑스, 네덜란드가 아니라 벨기에? 갑자기 왜?


이유는 간단했다. 미국 보다 유럽에 대한 호기심이 컸고, 가게 된다면 남들이 가지 않는 곳에 가 보고 싶었다. 그렇게 목적지를 정한 나는 지체 없이 비행기 표를 끊었다. 인간에게 선악이 공존하듯이 등골 브레이커였던 나의 취미는 저금이었다. 엄마의 등골은 고스란히 내 통장에 들어와 있었고, 왕복 비행기 티켓 값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잠시만 안녕을 고하는 방법도 참 나 다웠다. 마치 집 앞 편의점을 가듯 다녀오겠다는 내 말에 엄마는 잠시 멈칫했지만 길게 묻지 않았다.


명치까지 오는 이민가방과 30인치 캐리어를 끌고 인천공항을 떠난 나는 네덜란드를 경유해서 브뤼셀 미디역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싸구려 이민가방은 수명을 다했고, 역하지만 yellow fever의 도움을 받아 벨기에 라이프를 함께 할 아파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보다 족히 10살은 많아 보이던 그는 같은 국적 사람들과 달리 맹숭맹숭한 내 얼굴이 좋았던 것인지 벨기에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토핑이 가득 올라간 와플도 사주었다. 사람은 미워해도 와플은 미워할 이유가 없다며 빠르게 합리화를 마친 후 참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한 한기 머물 예정이었던 나의 벨기에 라이프는 일 년간 지속되었다. 오늘의 글에 1년을 다 담기엔 역부족이다. 페이크 이탈리안 룸메, 사라진 생일, 소중한 그리스 친구들, 당황스러운 외국 문화, 날아간 내 보증금, 혼자 하는 여행의 즐거움, 폭동·테러 1열 직관 등 기회가 된다면 브런치를 통해 하나씩 공개할 예정이다.


오늘 일어날 일도 알 수 없기에 더욱 재밌는 인생을, 누구보다 밀도 있게 살아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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