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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타 Feb 14. 2023

언젠가부터 브런치의 메인 요리는 '이혼'이 된 듯하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결혼 적령기의 나

나와 작음이*는 브런치 애독자다. 타인의 삶을 간접체험할 수 있고, '나였다면 어땠을까'를 곰곰이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주며,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통해 배우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작음이: 남자 친구(키가 작음/요새 약간 허구한 날 싸움)


지난 주말,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며 각자의 할 일을 하던 중 <요즘 뜨는 브런치북>과 <오후 ○시, 브런치 인기 글> 모두 '이혼'이라는 키워드가 점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연히 그날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니다. 언젠가부터 이혼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메인 페이지를 장식한다는 것을 체감했다. 모든 일에는 흐름이 있고 때가 있듯이 자연스레 화제가 전환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응 아니야~"였던 것이다.

*모바일 앱 기준이기에 PC에서는 다를 수 있음


둘째가라면 서러운 '결혼 포비아'이기에 브런치의 이혼 관련 글뿐만 아니라 유튜브 이혼 브이로그까지 아주 살뜰하게 다 챙겨본 사람으로서, 짧지 않은 기간 함께했던 이혼 관련 콘텐츠를 이제 더 이상 소비하지 않으려고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쥐뿔도 모르면서 타인의 삶에 훈수를 두려고 한다거나 '역시 결혼은 ~야.' 하는 식의 성급한 일반화를 내리는 빈도가 잦아진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독자이자 작가로서, 나는 가치 판단 대신 공감할 수 있는 글과 함께하고 싶다. 내가 뭘 안다고 감히 그동안 고생하셨다는 말남기고 싶지않고, 이건 상대방 이야기도 들어봐야 한다며 중립기어를 박은 채 정의의 여신 코스프레를 하고 싶지도 않다.



정도의 차이일 뿐 모든 결과에는 후회가 뒤따른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일기상을 받지 못해서 아쉬워 죽겠는 아홉 살 짜리도 앞으로 남보다 쪼~으~끔 더 노력해야겠다고 마음먹는 게 현실인데,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함께 사는 데에는 상상 이상의 노력과 존중, 배려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격 차이부터 경제적 요인 등 이혼을 선택하게 되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겠지만 만약 이혼을 고민하는 이유가 '아이'때문인 분들이 계시다면 당사자로서 고민은 행복만 늦출 뿐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잘 맞지 않는 아빠와 아주 오랜 시간 삐걱대다가 내가 성인이 된 이후에야 '님'을 '남'으로 바꿔버린 엄마를 봐왔기에 확신할 수 있다. 한 지붕 아래 함께 살진 않았지만 명목상 부부이기에 엄마는 원치 않는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고(예를 들면 시어머니의 참견이나 고모의 연락 등), 내 앞에서 시쳇말로 개싸움을 한 적은 없었으나 불편한 둘의 분위기를 직관할 때면 내가 다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서로를 사랑해서 결혼을 했지만 언젠가부터 딸을 사랑하는 엄마, 딸을 사랑하는 아빠로서 살고 있었다. 더 이상 둘의 미래에 서로는 없었다.


이혼과 동시에 엄마는 개명을 했고, 훨훨 날아다녔다.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고,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먹고 싶은 것을 먹었다. 나 때문에 우리 딸이 혹여 취업할 때 불이익을 받진 않을까, 만나는 사람의 부모님에게 괜히 트집 잡히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셀프 죄인이 되는 순간들은 있었지만 그때마다 나는 기차화통 삶아 먹은 목소리로 정신 차릴 것을 강권했다. 


물론 가끔씩 투닥거리는 아빠와 딸을 목격할 때면 부럽기도 하다. 나는 살아보지 못한 삶이니까. 적어도 부녀 관계에 있어서 내가 가진 지식은 모두 간접 경험에 의한 것이다. 아빠와의 기억은 이 정도다.


이러한 측면에서 나에게 다양한 삶을 보여주는 브런치에 감사할 때가 있다. 자영업자, 여행가, 요리사, 호텔리어, 공무원 등 가보지 못한 길은 너무나 흥미롭고, 이미 오래전 지나버린 것 같은 20대 초반의 이야기는 풋풋하게 설레며, 아직 살아보지 못한 어른들의 삶은 참 멋지고 우아하다.


내가 보는 남의 삶과 남이 보는 나의 삶이 이왕이면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기를 바란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여러 가지 주제의 콘텐츠들을 찾아보는 편이다.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만 보면서 "그래, 역시 내가 생각한 게 맞았어."라는 꼴통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뭐 여전히 이 일은 여자가 하긴 어렵다는 말이나 남편 밥은 챙겨주고 나왔냐거나 하는 개똥 싸는 성차별적 발언에는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지만 브런치 덕분에 작년, 재작년의 나에 비해 올해의 나는 참 많이 성숙해진 것을 느낀다.


인생의 단편적인 조각을 보고 전체를 판단하려 하기보다는 조각을 조각 자체로 받아들일 줄 아는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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