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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타 Jul 12. 2022

하루에 네 번 빡침을 말하고 여섯 번 참고

여덟 번의 잡일을 해줘(feat. 회사원)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미간 찌푸리는 일 없이 보낸 하루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젠가부터 나는 누가 존경하는 인물을 물어볼 때마다 '장기근속자'라고 대답하곤 하는데 아마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대부분의 일들이 회사에서 발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 실행보다 보고서에 집착하는 것

- 아무도 답을 모르는 회의에 참석하는 것

- 예상치 못한 업무가 하달되는 것

- 메일을 끝까지 읽지 않고 질문하는 것

- 흐아아아암 소리 내며 하품하는 것

- 휴가인데 굳이 연락하는 것 등


마음 같아서는 도대체 왜 이 보고서의 자간과 행간에 집착하는 거냐 묻고 싶고, 엉덩이 아파 죽겠는데 회의실에 죽치고 앉아 있으면 답이 나오냐 묻고 싶고, 그렇게 의미 있는 일이면 너나 하라고 하고 싶고, 질문하기 전에 생각했냐고 묻고 싶고, 생리현상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이면 사장님 앞에서도 그렇게 소리 내서 하품해 보시라 말하고 싶다. 휴가 중 연락은 원래도 받지 않거나, 받아서 꼽을 주기 때문에 제외했다.

 

누군가의 통제 아래 살아 본 경험이 거의 없는 나는 사실 매일이 쉽지 않다.

혼나기도 하고 닮고 싶은 선배들을 보고 배우며 조금씩 성장하고는 있지만 이해되지 않는 사안에 대해 '그냥'하는 것은 여전히 인생 최고 난이도의 과제이다.

대한민국에 자기 결정권을 가진 회사원은 없는 것 같다. 신입은 얼타기 바쁘고 대리는 직급은 주어졌지만 사실 딱히 큰 책임감은 없고 과장은 중간에 끼인 것만으로도 벅차며 팀장부터는 "잘 봐, 언니들 생존싸움이다."


오늘도 적당 수준의 현타를 맛본 나는 작음이*에게 재벌이 되어 내 마음대로 살고 싶으니 어서 나를 재벌로 만들어달라는 신소리를 늘어놓은 뒤, 97년의 작음이를 만나러 갔다.

*작음이: 본명은 아니지만 실제로 키가 작아 문작음이라고 부를 예정이다.



특기: 마음 내키는 대로 일기장에 일러바치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친구를 한 명 더 발견했다.

그리고 신기했다.


나는 잔소리를 거의 듣지 않고 자랐다. 내가 잘나서,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부모님의 성향이 그랬다. 어린 시절 내 기억 속의 아빠는 밖에만 나가면 날 두 팔로 안고 다니거나 목마를 태워 다닐 만큼 예뻐했고, 엄마는 엄하고 짜증이 많았지만 잔소리는 없었다.


문제는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엄마와 둘이 사는 삶에는 어느샌가 익숙해졌지만 엄마의 양육방식이 당시 내 눈에는 마뜩지 않았다. 많은 친구들이 엄마의 이거 해라 저거 해라에 지쳐갔지만 나는 잔소리를 하지 않는 엄마가 엄마의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매일 등하굣길에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는 것이나 야자시간에 반 친구들이 모두 먹을 만큼의 새우튀김을 튀겨오는 것, 지금 내가 사기에도 고가인 사치품들을 사달라고 해도 아무 말 없이 사줬던 것 등은 고맙지 않았다. 왜 나에게 다른 엄마들처럼 입시 정보를 알아다주지 않는지에서 시작한 원망은 왜 나에게 미래에 대한 방향성을 주지 않는지로 번졌다가 결국 내가 왜 엄마 때문에 이혼 가정의 자녀라는 딱지를 붙이고 살아야 하는지로 옮겨갔다.


엄마와 수도 없이 물고 뜯으며 상처를 주고받았지만 그때도 지금도 내 결론은 같다. 뭐가 됐든 엄마에게 그러면 안 되는 거였고, 내가 엄마였다면 나는 절대로 그만큼 하지 못했을 거라는 것.

(여기까지 쓰고 주책맞게 눈물이 나서 한 20분 울다 왔다.)

엄마와의 썰은 약 7,759,332,114개 정도 있어서 앞으로 차근차근 풀어나갈 예정이다.


"자식은 기분이 좋을 땐 친구를 찾고 힘들 땐 부모를 찾는 거야."

엄마도 약간 명언병이 있는데 엄마가 했던 말 중에 가장 와닿았던 말이다. 그리고 엄마가 모르는 게 있는데 난 기분 좋은 일이 생기면 엄마를 제일 먼저 찾는다. 엄마의 청춘과 맞바꾼 내가 쓸모 있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주기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엄마 인생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회화된 이기주의자로서, 엄마의 딸로서 오늘 하루도 적당히 욕하며 적당히 배우고 적당히 즐거워야겠다.




<쿠키 이미지>


흔한 30대의 눈물 콧물

다들 대갈백이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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