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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타 Jul 19. 2022

빈말 싫다면서 빈말을 바라는 게 사람 마음

근데 이제 빈말인 티는 나지 않게

우리는 쉴 새 없이 많은 빈말을 주고받는다.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빈말은 업무 전화 후 마침표처럼 따라붙는 "감사합니다."이다.

상대가 나에게 무언가를 물어보았고, 도움을 준 것도 나인데 기승전 감사하다며 대화를 마무리하는 게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표정은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상태임)


친한 책임님 중 한 분은 전화해 놓고 "지금 통화 가능하세요?"라고 묻는 게 너무 싫다고 한다. 통화가 가능하니까 받지 않았겠냐는 그에게 너도 참 너다 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데 이래서 우리가 친한 거라길래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절대 하지 않는 빈말은 "나중에/조만간/언제 한 번/곧 같이 밥 먹자~"이다. 밥이든 술이든 커피든 모든 종류의 식음 행위는 내가 좋아하고 편한 사람들과 하고 싶다. 그리고 극강의 J인 나에게 저렇게 기약 없는 약속은 진심이 0.1g도 담겨있지 않은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만약 정말로 밥을 같이 먹고 싶은 상대인데 일정이 불확실한 상황이라면 최소 다음 주 혹은 다음 달 정도로 범위를 좁히며 가까운 미래를 기약한다.


작음이*에게 같은 질문을 했더니 가장 자주 하는 빈말이 "조만간 술 한잔 하시죠."란다. 이렇게 안 맞을 수가. 그런 말을 던졌을 때 덥석 물면 거절할 생각이 없단다. 옆구리살을 보면 거절을 해야 할 텐데 말이다.

*작음이: 본명은 아니지만 실제로 키가 작아 문작음이라고 부를 예정이다.


사실 작음이는 빈말을 자주 하는 타입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유전이라는 것이 내가 만든 학계의 정설이다.



빈말 못하는 피는 아버지를 닮았구나


콩알만 한 아들이 앵겨 붙으면 우리 아들이 최고라고 해주실 법도 한데 대쪽 같기가 거의 독립투사 급이시다. 그 와중에 마무리는 '자상하신 우리 아빠'인 게 너무 웃기다. 그리고 문득 엄마의 얼굴이 스친다. 우리 엄마는 내가 살면서 본 사람 중에 가장 빈말을 못 하는 사람이다. 여전히 그로 인해 많이 싸우고 서운함을 느끼지만 조금씩 이해해 가는 중이다.


얼마 전, 얼굴에 큰 상처가 생겼었다. 출장차 도착한 파주는 때 이른 더위와 꽃가루가 환장의 콜라보를 이루는 상태였다. 하루 종일 얼굴이 당겼지만 워낙 피부가 예민한 편이라 단순한 건조함이라고 생각했다. 퇴근 후 얼굴에 열이 오르는 느낌이 들어 찬물로 세수를 하고 유튜브를 보며 낄낄대고 있는데 점점 뜨거움이 극에 달했다. 거울을 보니 눈앞에 등장한 건 빨갛게 잘 익은 멋쟁이 토마토. 호들갑 떠는 성격이 아니라 괜찮아지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며칠 뒤 눈 밑을 중심으로 화상을 입은 듯한 상처가 생겼다. 상처 부위가 점점 번지자 주변에서 더 걱정하며 병원을 가보라고 했고, 진단명은 접촉성 피부염과 햇빛 알레르기로 인한 경미한 화상. 사람들에게는 괜찮은 척했지만 자꾸만 심해지는 피부 때문에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고, 심신의 안정을 취하기 위해 서둘러 본가로 향했다.


"아우 얼굴이 이게 뭐야? 어떻게 해~ 저게 뭐야 진짜."

"엄마 나 흉터 안 생기겠지?"

"아휴 저거 진짜 어쩌냐. 연고 발랐어? 약은?"

"발랐어. 약도 먹었어. 엄마 나 흉터 안 생기겠지?"

"자꾸 건드리지 마. 손 대면 더 안 좋아."

"엄마 나 흉터 안 생길 거라고 해줘."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의사도 아니고. 병원에서는 뭐래?"


...? 아니 저기요 어머니

제가 의학적으로 "박현타씨, 당신에게는 상처가 생기는 것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합니다."라고 진단을 내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심적으로 안정을 찾기 위해 빈말 한 번 해달라는 건데 그거를 이렇게까지 안 해주실 일입니까? 예? 그 뒤로도 무엇이든 다 뚫는 창과 무엇이든 막아내는 방패처럼 서로가 답도 없는 질문을 한참이나 주고받았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그래 마지막이다 하는 마음으로(돌이켜 보니 내가 더 징한 것 같다. 엄마 사랑해) 제발 흉터 생기지 않을 거라고 말해달라고 애원을 했는데도 엄마의 반응은 동일했다. 그리고 나의 발작 버튼이 눌리고 말았다. 엄마 진짜 왜 그러냐고 왜 그냥 그 쉬운 말을 하나 못 해주냐는 나의 원망 섞인 포효를 다 듣고 난 엄마의 답변이 히트였다.


"아니 근데 진짜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맞다. 엄마는 본인이 책임지지 못할 말이나 확실치 않은 말은 하지 않는 사람이다. 난 그걸 알면서도 떼를 쓴 거다. 내 얼굴을 보니 본인도 속이 상하고 걱정스럽지만 해줄 수 있는 건 없고, 그렇다고 근거도 없이 씻은 듯이 나을 거라고 말할 수 없는 엄마 자신도 무척이나 답답했을 거다.


우여곡절 끝에 쿨하게(도대체 어디가) 화해를 하고 씩씩하게 출근을 한 다음 날, 이모들과 할머니에게 번갈아 가며 연락이 왔다. 괜찮냐, 왜 그런 거냐, 관리 잘해야 한다, 화상에는 이게 좋다더라 등등 아무튼 우리 집안 여자들 극성은 못 말린다 싶으면서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났다.


사랑받는 건 언제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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