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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타 Apr 04. 2023

자식은 기쁠 땐 친구를 찾고, 힘들 땐 부모를 찾는다

우리 엄마 명언집 1장 1절 말씀

<감삼다이어리>는 일상에서 마주한 감사함을
때로는 진솔하게, 때로는 sarcastic 하게 풀어내는 콘텐츠입니다.


엄마는 어지간해서 먼저 무언가 묻는 법이 없다.

아, 정정! 엄마는 본인의 웹사이트 아이디와 비번 빼고는 무언가 먼저 묻는 법이 없다. 어릴 때는 이것저것 묻고 도와주려 하는 다른 친구들의 엄마를 보며 우리 엄마는 나한테 관심이 없는 건가 싶기도 했는데, 이제는 안다. 엄마는 내 선택의 과정을, 그리고 결과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다.


살다가 힘든 일이 생기면 나의 여러 가지 모습이 발현되는데, 그중 하나가 변태성이다. 뭐 갑자기 홀딱 벗고 뛰어다닌다거나 하는 건 아니고, 엄마 목소리를 들으면 눈물이 날 걸 알면서도 마치 그걸 즐기는 사람처럼 전화를 한다는 거다. 물론 득달같이 통화 버튼을 누르지는 않는다. 나름 버틴다고 버티며 일정 기간을 보낸 후에야 연락을 하는데, 일주일이 됐든 한 달이 됐든 엄마 목소리는 그저 눈물 버튼이다.


업무적인 것이든 인간관계든 한참을 털어놓고 나면 후련해진다. 그리고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어 미안하고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면, 엄마는 늘 별일 아닌 듯 반응한다. 내가 겪은 일 자체도, 그 일을 들고 와서 주섬주섬 꺼내 놓는 것도 엄마는 별 것 아니라고 말한다.


"집에 와. 맛있는 거 해줄게."

"미안해 엄마. 맨날 이럴 때만 연락하고."

"자식은 원래 기쁠 땐 친구를 찾고, 힘들 땐 부모를 찾는 거야. 괜찮아."


내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는 세 가지가 있다.

당연한 것, 영원한 것, 원래 그런 것. 그런데 엄마는 저 세 가지 조건을 전제로 나를 사랑하는 듯하다. 신기할 따름이다. 사실 엄마의 저 워딩을 들은 이후, 나는 의식적으로 힘들고 슬픈 일보다는 기쁘고 즐거운 일을 많이 공유했다. 없는 일을 지어낸 건 아니지만 으레 꺼냈던 이야기는 살며시 덮어두었고, 전에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던 시시콜콜한 일상을 전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슬프고 화나는 감정은 생각보다 빠르게 증발한다는 것을 배웠다. 당시에는 그 마음이 온 세상을 지배하는 듯 하지만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괜찮아진다. 시간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분명히 나아진다. 살다 살다 별 일을 다 겪네 싶은 일도, 더 성장한 나를 만들어 주겠지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생긴다. 하다 못해 술자리 안주거리나 아이스 브레이킹용 대화 소재라도 되어 주겠지 하는 뭐 그런.


더 이상 엄마의 말을 그저 그런 잔소리로 여기지 않게 된 것에 감사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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