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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타 Apr 25. 2023

웃음과 빡침 포인트가 일치하는 동료

우리는 매일 아침 함께 사무실을 탈출한다

<감삼다이어리>는 일상에서 마주한 감사함을
때로는 진솔하게, 때로는 sarcastic 하게 풀어내는 콘텐츠입니다.


S | "커피 사러 가자."

B | "넵, 좋습니다!"

P | "ㄱ"


출근 후, 가장 먼저 이루어지는 메신저 대화 내용이다. 누가 보면 커피 마시러 회사 오는 줄 알겠다고 하는데 정답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날 회사로 향하게 하는 동력은 작고 소중한 모닝커피 타임이다. 누군가 신호를 보내면(출근하기도 전에 카톡으로 언제 오냐고 서로를 닦달할 때도 있음)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출근 직후 대면한 갑작스러운 이슈가 있으면 소상히 공유하고자 신나게 떠들고, 며칠 째 계속되는 골칫거리가 있다면 진척 상황 또는 신규 장애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신나게 떠든다. (가뭄에 콩 나듯한 일이지만)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어제저녁에 본 TV 프로그램이나 먹은 음식을 가지고도 서너 시간은 거뜬히 떠들어 재낄 수 있는 우리다. 이렇게나 의욕이 충만한데 주어진 시간*은 최대 20분 이내이니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간을 넘긴다고 해서 질책을 받는다거나 월급이 깎인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눈치 보지 않고 영위할 수 있는 우리만의 시간 기준을 설정해 놓았다.


S는 나보다 한 살 언니고 B는 나보다 여섯 살이 어리다.

나이 차이가 꽤 나는 편이지만 다행히 나와 S는 꼰대미가 덜하고 B는 애늙은이라 제법 잘 맞는 편이다. 경력직인 나와 B가 이해하지 못하는 회사 특유의 문화에 대해 S가 우리보다 더 치를 떠는 것도 웃기고, 아직 미혼인 나에게 기혼인 두 사람이 해주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은 생각보다 재미있다. 극 F의 아이콘이며 가장 어린 B가 불합리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친절함과 차분함을 잃지 않는 모습에 나와 S는 경의를 표하고, 창립주처럼 회사의 대소사를 다 알고 있으며 적재적소에 적합한 도움을 주는 S 덕분에 나와 B는 여러 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괜히 불똥 튈지 모른다는 생각에 모두 눈치만 보는 상황에서 소신껏 의견을 내나를 보며 B는 엄지 척과 박수를, S는 "나는 너 오래 보고 싶은데 위에서는 네네하는 사람 좋아해서 오래 보긴 글렀어. 근데 속이 너무 시원해 어우 기분 좋아!"라며 웃으라는 건지 울라는 건지 모를 말을 한다.


전 직장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요인이 사람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일상이 참 감사하고 행복하다. 말없이 출근해서 자리에 앉고,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 앉아 표정 없이 일하거나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닦은 적도 있었다. 영혼 없는 하루를 살아 내는 것에 익숙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치켜세우며 칭찬하고, 으쌰으쌰 하려는 분위기가 처음에는 어색했다. 이직 초반에 누군가가 물어보면 "예전에는 위스키바에서 혼술 했는데, 지금은 다 같이 등산하고 막걸릿집 온 기분이야."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도 내가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무언가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이 참 감사하다. 그깟 시간 좀 뺏기면 어떻고, 그깟 업무 좀 늘면 어떠냐는 말을 하게 되었다. 공적으로 만난 사람들을 이렇게 대하다 보니 사적인 관계에서의 이해의 영역도 덩달아 넓어졌다. 머릿속으로만 꿈꿔왔던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삶의 태도가 조금씩 스며들고 있음을 느낀다. 본가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대화가 '기-승--즐겁게 살자', '인생 별 거 없다.'로 귀결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살아 보니 나는 정말 별 거 아닌 일에 울고 웃으며 산다.


눈앞에 펼쳐별의 별일들을,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모금과 함께 꾸울꺽 삼켜 줄 동료가 있어 감사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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