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밥, 어차피 망할 운명이었다.
김밥을 싸기로 한 건 다분히 충동적이었다.
누가 SNS에 올린 고급진 김밥 사진 한 장이 나를 자극했다. 속이 꽉 찬 단면, 선명한 색의 조화, 깔끔하게 말린 김밥의 자태는 나의 도전을 자극했다. 그래서 나도 했다! 아니, 해보려 했다.
김밥에 들어갈 스팸, 맛살, 단무지, 우엉은 장보기로 깔끔하게 마무리! 이때까지 완벽했다.
그런데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심상치 않다. 신발 끈도 야무지게 못 매는 거친 손으로 당근 채를 썰기 시작했다. 깍둑깍둑 소리가 날 정도로 투박하게 썰리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당근 두 개가 토막이 나있었다.
결과물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속도감 만큼은 괜찮은 듯했다. 그래, 다음은 달걀이다.
달걀 부치는 건 후라이팬이 좌우하는 거 아닌가? 달걀은 맨들맨들한 지단으로 부치려했건만, 뒤집는 순간 내 야무진 바람은 산산조각이 났다. 시작은 지단이었으나 그 끝은 스크럼블로 재탄생!
그 와중에 참치 김밥을 싸겠다고 한 건 역시 무리였을까? 참치 기름을 짜내니 살코기가 흘러 내려가고 덜 짜내니 기름이 너무 많아 흥건하고, 에라 모르겠다하고 거기에 마요네즈까지 더하니......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아무래도 김밥은 재료 단계에서부터 나와의 싸움을 예고했던 것 같다.
김밥을 말 때쯤 되자, 뭔가 잘못됐음을 확신했다. 밥이 너무 많았나? 재료들이 튀어나왔다. 김이 터질 것 같았다. 힘겹게 말아낸 김밥은 마치 풍선처럼 팽팽해졌고, 칼로 자르니 결국 재료들이 우르르 흘러내렸다. 몇 개는 자르다 포기하고, 통째로 집어삼킬까 고민했다.
슬며시 주방 근처로 온 아이들은 놀란 마음을 급히 숨기며 나를 위로했다. 나는 그제야 김밥을 완벽하게 실패했음을 인정했다. SNS 속 김밥 사진처럼 매끈하고 아름다운 모습은커녕, 이것은 조각조각 부서진 '밥과 재료의 집합체'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같이 둘러앉아 김밥을 먹었다. 흐트러진 김밥은 숟가락으로 퍼서 먹으면 됐고, 맛은 의외로 괜찮았다. 아이들은 김밥 대신 '김밥 비빔밥'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어쩌면 김밥이 본래 의도와 다르게 나를 가르치려 했던 건 아닐까? 완벽한 모습이 아니라도 괜찮다고
김밥은 망쳤지만, 결코 실패한 날은 아니었다. 김밥이 그 모양이면 어떻고, 밥과 재료가 따로 놀면 어떤가. 중요한 건 나의 피땀눈물을 함께했던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다음엔 그냥 사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