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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Jun 21. 2020

휴먼스릴러라고 불러야 하나, <결백>

2.7점 / 5점 만점

추리 스릴러임에도 불구하고 가족 사랑과 정이 들어가 있다. '정'은 어디에 넣어도 맛을 극대화해주는 백종원 만능장이 아니다. 그런데 감독은 '아차차 내가 이걸 빼먹었군'하며 후반부에 대량 투하했다. 그때 영화의 장르가 바뀐다. 모녀간에 안타까운 사연이 극대화되면서 관객들의 울음을 이끌어내려고 하지만...

장르가 추리 스릴러라면, 초중반 과정에서 머리를 쓰게 만드는 재미를 확실히 줘야 한다. 그리고 후반에 복잡한 퍼즐이 한 번에 풀리는 쾌감을 딱! 그게 장르적 기대감이다. 휴먼 드라마라면 안타까운 사연을 잘 짜고 불효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 떡밥을 깔아놓아야 한다. 그리고 후반에 용서와 화해를 보여주며 눈물샘을 빵! <결백>은 둘 사이에 어정쩡하게 걸쳐있다. 초중반은 추리물인데, 후반부는 휴먼 드라마다. 추리물로서 증거를 하나씩 찾아가는 재미는 있는 편이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빠진다. 대립하는 빌런(개인이든 공동체든)도 너무 취약하다.

전반적으로 너무 순조롭다는 게 문제다. 주인공과 대립하는 추 시장은 끊임없이 진실을 찾으려는 안정인을 방해하는데 얼마든지 막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방해하지 않는다. 건달을 동원한 전략으로 위협을 주고 안정인은 겁을 먹지만 추 시장은 어쩐 이유에서인지 더 이상 액션을 취하지 않는다. 이런 절제하는 악역을 봤나.

대천시의 사람들은 추 시장의 영향력 안에 들어있는 듯하면서도 안정인을 도와주는 경찰 친구(태항호)는 어쩐 이유에서인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태항호 귀신설). 그 친구를 회유하거나 협박할 생각이 없다. 추 시장은 온갖 잔머리를 써가며 시의원에서 시장까지 올라간 능력 있는 사람인데, 처음에는 한 교활할 것처럼 보이다가 나중에는 허술하게 무능하나 모습을 보인다. 빌런도 이렇게 심심하고, 빌런을 추종하는 공동체 역시 안정인을 막으려는 욕망의 강도가 생각보다 작아서 실망스럽다. 부장 검사라는 사람도 안정인에 대항하여 잘 싸우는 듯싶다가 무능하게 진다. 안정인이 로펌의 에이스라는 건 알겠지만, 부장검사도 나름 에이슨일 텐데? 정치에만 감각 있고 수사에는 무능한 검사라는 설정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맥 빠지게? 주인공의 발차기에 스치기만 해도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무술팀 같다. 빈틈없어 보이는 판사들은 주인공에 말에 웬만하면 설득된다. 주인공을 빛나게 하기 위해선 악역의 밝기도 키워야 함을 <결백>을 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한다. 명암비가 낮은 시나리오다.

그럼 추리 스릴러가 아니라 휴먼 드라마로서는 어떨까. 둘 사이를 갈라놓은 감정의 골이 그리 깊지 않다. 딸은 공부를 더 하고 싶었고, 엄마는 그런 딸을 도와주지 못했다. 딸은 도망쳐서 서울로 가서 성공한 변호사가 된다. 딸에게는 엄마를 버리고 왔다는 부채의식이 있고, 엄마에게는 딸을 도와주지 못했다는 죄의식이 있는데 딸로서는 그 당시에 최선의 선택을 했고, 엄마로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서로 미안할 만한 상황이긴 하지만 갈등의 골을 생각하면 그리 깊지 않다. 딸은 엄마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으며 나중에 오열을 하지만 이마저도 손쉽게 해결. <신과 함께>의 줄거리를 떠올려보면 엄마와 두 아들의 상황이 얼마나 절절했던가. 

가장 좋았던 부분은 신혜선의 연기였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연기'라는 표현이 있다. 오랫동안 영화판에서 활동해온 주연급의 배우라면 당연히 쉽게 해낼 것 같지만 그리 쉽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런 걸 물 경력이라고 해도 되겠다. 이 세상 모든 부장이 부장급 능력치를 갖춘 게 아니듯, 짬에서 바이브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신혜선의 주연 데뷔작은 꽤 성공적이다. 엔딩크레딧에서 신혜선의 이름이 배종옥보다 앞에 나올 만큼 신혜선은 공동 주연이 아닌 거의 단독 주연을 맡았는데, 첫 주연작이라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2시간을 무게감 있는 연기로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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