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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 리베 May 03. 2021

그리운 나의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

천국에 계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얼마 전 모 라디오 방송에서 '가게'를 주제로 한 봄 편지 글을 공모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일과 연결된 일 외에는 자리잡고 글 쓰는 일이 거의 없기도하고, 공모라는 것에 도전해 볼 생각은 더더군다나 해  적이 없었고, 가게라는 주제에 걸맞은 사연도 딱히 없었기에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 생각하고 지나쳐버렸는데...


어느 날 문득 난 아버지와 나와의 소중했던 어느 한 날의 시간을 소재삼아 써보기로하고 컴퓨터 책상 앞에 앉게 되었다. 아버지가 우리 곁을 떠나시고 종종 혼잣말처럼 아버지와 나누었고 또 아버지에게 전하고 싶었던 생각을 편지 속에 담아 정리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수상자가 되면 아버지에게 선물처럼 상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드리고 싶었는데 수상자로는 선정되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읽어드리고 싶어 쓴 글이었기에 개념치 않았고, 지난 주말 난 편지글을 들고 아버지를 모신 산소를 찾았다.


내 사랑하는 아버지! 그립고 그리운 아버지!

천국에서 이곳보다 더 행복하고 편안하게 지내실거라 믿기에 아버지 앞에서의 난 살아계신 아버지 앞에서인듯 덤덤히 읽어드렸다.


아버지께 드린 나의 글을 소개해보련다.




이번 봄은 지난해 여름 아버지가 우리 곁을 떠나시고 맞이하는 첫 번째 봄입니다. 며칠 전 저는 눈이 부시게 푸르른 아침 출근길에 너무나도 눈물겹도록 보고 싶은 아버지 생각에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차 안에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볼 수 없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을 마주하는 일이 빈번히 있지만 이 날의 눈물은 다른 날과는 좀 다름이 있었습니다.


가게를 주제로 한 사연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 같았는데 이 날 문득 아버지와의 한 날이 떠올랐고, 그 날은 아버지가 우리 곁을 떠나시기 보름 전 마지막 산책길 공원 벤치에서 나눈 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날이 아버지 생전에 단 둘이 가장 진지하게 가장 오래 이야기한 날로 기억에 남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여름, 새벽마다 운동을 다니실 만큼 건강하셨던 저의 아버지는 암 진단을 받으신 지 1년 만에 우리 곁을 떠나 하나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수술 이후 1년의 시간 중 절반은 일상의 시간을 보낼 만큼 평소의 기력을 회복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혹시나 하는 만의 하나라는 기적을 기대하게 하셨고, 그 이후 반년은 흘러가는 시간 하루하루가 아쉽고 야속하기만 했고 그렇게 지나버린 그 하루는 또 슬픔의 시간이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의 한계에 마음이 무너지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가족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무지 당신의 마음과 생각을 단 한 번도 내색하지 않으셨고 가족을 힘들게도 하지 않으셨고 나약한 모습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험난한 세월을 오직 근면 성실로 견뎌 오신 강한 분이셨지만 웃으실 땐 눈이 보이지 않을 만큼의 순수함을 가지고 계셨던 아버지의 그 마지막 1년의 의연함과 그 인내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문득 아버지가 우리 삼 남매에게 남겨 주신 유산 하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2002년 32살의 젊은 나이에 국내 최연소 프로농구 모비스 코치로 부임하자마자 루게릭병 판정을 받은 남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이름이 알려지기도 한 동생은 그 당시 동생에게 남아있는 수명이 2~3년밖에 되지 않다는 의사의 사망선고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가족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고 루게릭병을 받아들였고, 자신과 같은 환우를 위한 전문 요양시설 건립을 위한 꿈을 가졌고, 지금은 비록 병상에서이지만 승일희망재단이라는 곳의 지탱자가 되어 뒤에서 묵묵히 힘이되어 주고 있습니다. 지나온 20년이란 긴 시간 동안 순간순간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절망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동생은 그 강인함과 의연함을 말이 아닌 평생을 살아오신 아버지의 뒷모습으로부터 배우고 물려받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 저는 공원에 앉아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봅니다. 목소리를 더 많이 듣고 싶었나 봅니다. "아빠! 아빠는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언제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요? 언제 가장 행복하셨어요?" 한참을 생각하셨습니다. 늘 그러셨습니다. 말 수도 너무 적으셨고 배움이 너무나 짧으셨지만 언제나 진심을 담아 진지하게 대답해 주셨던 분이셨습니다.  "전에 아빠가 가게 할 때, 정말 장사가 잘 되었을 때 그때로 가고 싶지.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시절 너무 많이 고생하셨던 것을 난 알고 있었기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때가 그  가게 할 때라고 말씀하실지 몰랐습니다. "아빠! 그때 많이 힘들었는데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나는 되물었고, 아버지는 그때는 뭐든 자신감 넘칠 때였고, 너희들도 모두 너무 모범적으로 잘 자라고 있었고 가장 보람 있었고 신나셨다고 말씀하시며 한참을 아버지의 지난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으셨습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늘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셨고, 배움에 대한 열망이 있었지만 그럴 형편이 되지 못한 아쉬움 그리고 결혼 후 엄마와 함께 그야말로 무일푼으로 아주 작은 구멍가게로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가게 규모를 키웠던 과정들을 마치 어제 일처럼 이야기하셨습니다. 삼 남매를 낳았고 자식들 고생 안 시켜야 한다는 일념 그리고 자식들 원하는 대로 공부시키겠다는 목표와 나중에 나이 들어서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는 목표만으로 살아오신 지난 세월을 무슨 자서전 쓰듯 작은 목소리로 하나도 놓치지 않으시려는 듯...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이야기도 있었지만 감회가 새로웠고 처음 듣는 이야기들도 있었기에 왜 진작 그동안 아버지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과 인생의 뒤안길에서 정말 고생 많으셨던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밀려와 목이 메어왔습니다.


저에게는 아주 작은 구멍가게 시절부터 가게가 점점 규모가 커지며 형편이 훨씬 나아지던 시절까지 집 안에 부모님의 부재로 온 가족이 한데 모였던 행복하고 따뜻했던 기억이 없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가 다시 돌아가고 싶으셨던 그 시절이 저에게는 외로움과 쓸쓸함 그래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었다는 것을 아버지께는 차마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1년 365일 하루도 쉼 없이 일 하셨어야 만했던 이유를 언제부터 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가게를 꾸려나가야 했기에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갖지 못하는 아쉬움과 마음 아픔이 저보다 부모님에게 더 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가게에 대한 모든 일이 감사와 고마움인 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가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말씀하신 대전 그 가게 가 있던 곳엘 다녀왔습니다. 시간은 돌릴 수 없지만 여전히 비슷한 모습의 그곳이 새삼 더 정감 있게 느껴졌습니다. 그 곳을 떠난 아버지의 부재만큼이나 활기도 잃고 생기도 잃어버린 그 가게 그 자리가 주는 쓸쓸함 또한 내가 기억할 나의 옛 시간들이겠지만 아버지가 다시금 돌아가고 싶어 하셨던 아버지의 인생이자 고향 같은 곳!


내 사랑하는 아버지! 너무나 보고 싶고 그 따뜻한 손잡고 싶은 아버지가 그토록 다시 돌아가고 싶다던 그 시절 그 장소도 언젠가는 영원히 사라지겠지만 내 마음속 내 기억 속에서는 영원하게 남아있을 그곳 그 가게가 아버지의 인생 가장 한가운데 있었고 그곳이 우리 가족을 지탱해주는 곳이었다는 사실을 이 봄 기억할 수 있어 참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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