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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 리베 Jul 12. 2020

어제와 같음, 어제와 같음

글을 통해 마음을 전하는 나

행동을 주저하게 만드는 가장 큰 망설임의 근원은 실패와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지 싶다.


아주아주 오래 전 난 이랬다.


1981년 7월 1일 화요일 맑음, 어제와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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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7월 2일 수요일 흐림, 어제와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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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7월 3일 목요일 맑음, 어제와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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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중학교 시절 숙제로 제출했던 어느 한 주간의 일기장 내용이다. 착한 아이 신드롬 같은 게 있었던 건지 비교적 착하고 바르다는 소릴 제법 듣곤 했던 내가 그땐 왜 그랬을까!  삶 중에 유일하게 그리고 너무나도 솔직하게 나의 하기 싫음을 드러낸 덕분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심한 꾸지람을 들었던 기억 저편, 추억 저편의 하루가 문득 생각난다.


매일매일이 일상의 반복이었고 매일매일이 그렇고 그런 똑같은 날이긴 했겠지만 그렇다고 어제와 같음, 어제와 같음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다 똑같진 않았을 텐데 숙제로 제출할 일기장에 그렇게 썼다는 게  엉뚱하다 싶기도 하고 나답지 않은 용기였다 싶기도 하다. 이 기억은 내가 얼마나 글 쓰는 걸 정말 싫어했는지 설명하기 딱 좋은 예가 될 것 같다. 그것도 엄청나게 싫어했다는... 생각과 감정을 적절히 넣어가며 일기를 쓰는 것은 고사하고 하루 일과를 있는 그대로 적어 옮기는 것조차 싫었던걸 보면 난 생각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매우 싫어했던 게 분명하다.


그리고 난 또 이랬다.


뭔가 분명한 답이 딱 떨어지는 것을 좋아했고 이과적이 성향이 강했던 난 고등학교 때 이과생이었다. 적성에도 딱 맞았고 수학, 화학 등 이과 과목의 성적이 좋았지만 대학 1차 낙방으로 생각지도 않았던 문과 그것도 문학과 철학의 깊이가 남다른 독어독문학을 전공하게 되었다. 어머니께서 재수는 안 시키시겠다며 나 몰래 담임선생님과 상의 후 딸이 독일어를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독어독문학과에 원서를 제출하신 탓에.. 또 거기에 합격한 탓에 말이다. 3~4학년이 되어 전공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난 시험을 망쳐 졸업을 못하는 꿈에 시달리곤 했던 기억 또한 내가 얼마나 글을 쓰고 사색하는 것을 싫어했는지 짐작하게 할 수 있을듯하다.


그런 내가 지금은 대부분의 일을 글을 통해 해내가야 하는 자리에 있다. 글로써 사람들로부터 해야 하는 일에 대해 공감을 이끌어내야 하고 또 함께 참여하게 해야 하는 일들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인데 그 일을 해야 하는 자리!


문득문득 거절 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게 나를 따라다닌다.


자신감 넘쳐 보이는 겉으로 드러난 나의 모습..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나의 내면의 모습.. 매 순간 그 둘은 늘 공존한다.


하지만 일에 대한 간절한 목표의식은 나로 하여금 내면의 거절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게 해 준다. 아니 떨쳐버려야만 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차별 대우로 인한 거절감과 외면에 대한 두려움을 같은 반 친구에게서 처음 험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이다. 엄밀히 국민학교 시절.. 아주 오래전인데도 기억에 생생하다. 친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두각을 나타내지도 않았던 같은 반 한 친구가 자신의 생일날 나와 친한 친구 모두를 자기 집으로 초대를 했다. 나만 빼고..


그 친구 생일도 몰랐고 초대받고 싶은 생각도 없었지만 그날 '나만 빼고'라는 외톨이가 되었던 그 소외감은 어린 나이의 나에겐 매우 큰 충격이었고 상처였다.


"왜 나만 안 불렀지?"


그냥

소외감..

거절감..

자존감 같은 게 땅으로 뚝 떨어진 상처로 모두가 생일초대로 우루루 몰려간 후의 텅빈 하굣길 내내 그리고 한동안 몹시 우울했던 기억이다.


그 친구가 날 심하게 질투하고 있었고 그 초대를 안 한 이유였다는 것을 다른 친구로부터 전해 들었지만 난 나를 왜 질투했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느닷없이 일방적으로 받게 된 그날의 소외감은 거부당하고 거절당한 것 같은 큰 상처였다. 난 그 친구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으로 되갚아주고 싶었고 그까짓 초대가 뭐라고 하며 대수롭지 않게 내 속상함을 내색 않고 묻어두기로 했다. 어린 나이에도 괜한 자존심이었는지! 아니면 내 안에 나도 모르게 잠재되어 있다가 갑자기 발동한 꽤나 쓸모있는 자존감 때문이었는지!




내가 비영리재단의 일을 시작한 후로 참 많은 제안을 해야 할 일 앞에 서게 된다. 물론 좋은 일이라는 명분을 가지고는 있지만 상황과 상대에 따라서는 충분히 부담스러울 수 있는 후원에 대한 제안,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제안, 유명인에게 보내는 참여 제안 등..


난 그때마다 거절 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잠시 주춤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 두려움에 뒷걸음치지는 않기로 결심했다. 그러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겠지. 어릴 적 친구에게 외면받았을 때 나 자신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 자존감이었던 것처럼 당당하게 그리고 자신감 있게 내가 하는 일의 자존감을 지켜가기로 생각의 방향을 잡게 된 것이다.


해야 하는 일에 대한 당당함과 진정성과 절실함은 실패와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는 힘이 되었고 좌절을 이겨내는 강인함이 되었다.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생각의 방향을 잡는 것보다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정당함을 세워가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비전문가인 내가 승일희망재단을 이끌어가며 하기 싫어했던 글들을 쓰고, 하기 어려웠던 수많은 제안들 앞에서 멈칫멈칫하던 순간 멈추지 않고 도전한 결과는 뜻밖이었고 기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70억 원 이상의 모금액이 그걸 말해주고 있고 또 불가능할 것 같았던 막연한 일들이 실체를.. 결실을 점점 드러내고 있으니 말이다.


이것이 실패와 거절에 대한 두려움 앞에서 순간 움찔 망설일망정 결코 멈추지 않아야 할 이유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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