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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 리베 Jun 09. 2020

그 날이 그 맛이 추억의 한 장면으로 기억될 줄 몰랐다

나와 너의 그리운 날, 그리운 맛...

며칠 전,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음식들로 부모님만생각하며 정성스레 식탁을 차렸다. 지금껏 부모님이 나에게 해주셨던 것처럼..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이날은 또 어떤 냄새로, 또 어떤 억으로 억될?


아주 오래전 행복했던 그날의 기억을 지금 내가 페인트 냄새와 갈치조림 냄새로 기억하는처럼 말이다.

특히 나물을 좋아하시는 아빠를 위해 할 수 있는 나물반찬 가득 준비한 식탁

1978  여름... 페인트 냄새가 진동했던 그 날은 우리 가족이 새로 지은 자그마한 이층 집으로 이사하는 날이었다. 


그날은 그랬다. 허름한 기와집이 아니어서 좋았고 왠지 우리 집도 부자가 된 것만 같아 기분은 한없이 부풀었다. 부족한 게 뭔지도 잘 모르던 꼬맹이 어린 나이였으니 그저 이층 집이라니 마냥 좋았는지도 르겠다. 그날의 코를 찌르는 독한 페인트 냄새는 전혀 거슬리지도 않았고 피하지도 않았다.


지금도 페인트 냄새가 코끝을 스치는 공간에서는 그곳이 어디든 어김없이 난 순식간에 그날을 추억하게 된다. 그날기분 그대로로 돌아가 보고 싶지만 그날의 설렘과는 사뭇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이젠 절대 돌아갈 수 없는 아득하고 쓸쓸하고 허전한 기분에서 그만 멈춰버리고 만다. 너무 그리워서일까!


그 기분은 몇 해 전 '응답하라 1988'의 마지막 회에 모두가 떠나버린 쌍문동 골목 풍경을 바라보던 그  쓸쓸한 기분과 사뭇 비슷했다. 세상에서 사라진  공간적 의미의 아쉬움보다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시간적 의미의 아쉬움 같은 거였다.




동생들과 나를 담은 사진 한장은 나의 어린시절을 추억할 귀한 보물이다.

우리 집 2층 집.. 부자가 된 것 같은 그 좋은 집에서조차 엄마, 아빠, 여동생, 남동생 그리고 나는 늘 일 때문에 바쁘신 부모님과 한 자리에 모여 식사를 한 적이 없었다.


다행히 부모님 일터와 집이 멀지 않은 덕분에 어린 세 남매 저녁 준비를 위해 저녁 무렵이면 엄마 저녁 찬거리를 들고 오셨고.. 이삿날은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식사했던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부엌을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는 엄마 덕분에 맛있는 갈치조림 냄새가 금세 집안 가득해졌다. 



어스름한 저녁 창밖으로 비추인 불빛들이 나에겐 늘 저녁을 준비하던 엄마처럼 느껴지곤한다.

지금도 그 냄새만큼은 생생히 기억난다. 아주 또렷하다. 그 냄새는 나에게 어린 시절 그 행복했던 날을 기억하게 하는 추억 냄새.


고구마 줄기 껍질 벗기는 일을 엄마는 종종 나에게 시키셨다. 긴 줄기 중간을 꺾어 한쪽으로 쭉 내리면 얇은 껍질이 벗겨지는 게 신기했다. 대충 벗겨져도 크게 상관은 없다. 이렇게 준비된 고구마 줄기는 뜨거운 물에 푹 삶아져야 비로소 갈치조림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되었다.


무는 큼직했다. 삶긴 고구마 줄기도 냄비 한편에 수북이 담겨 있었다. 그 위에 큼지막한 갈치 몇 조각이 얹어진다.


적당한 고춧가루 양념장과 어우러진 재료들이 한참을 이리저리 국물을 튀긴 자국들을 남기고 나서야 비로소 갈치조림은 완성된다.


엄마가 "얼른 나와 밥 먹어라"라며 큰소리로 우리 삼 남매를 부를 땐 우린 머리를 쫑쫑 딴 주근깨 소녀가 주인공인 '삐삐'라는 프로그램에 빠져 있었다. 우리를 엄마는 재촉했고 우리는 마지못해 밥상에 둘러앉았던 특별할 것 전혀 없던 바로 그날이 난 왜 이렇게 그리운지 모르겠다.

그 날이 이토록 가슴 먹먹히 그리울 거라고 생각 못했는데.. 이럴 줄 알았다면 좀 더 그날의 기억을 더 멋지게 만들었으려나!


그립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엄마가 해주었던 그 갈치조림을 먹던 그날이.. 그립다! 그 엄마가 해준 갈치조림 냄새가!


내가 냄새로 추억을 떠올리듯이 사람마다 추억을 떠올리는 순간은 다 다르겠지. 추억을 냄새로 떠올리그리워하나와 내 동생이 다른 것처럼...


동생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불치의 병 루게릭병으로 오랫동안 투병 중에 있다. 동생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다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명료한 감각과 인지능력으로 생각할 수 있다 것 말고는 말이다.

오래전 동생은 안구마우스를 통해 '그리운 맛'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한 글자 한 글자 공감 가는 표현에 웃음이 나오다가도 울컥한다. 이건 다름 아닌 내 동생이 쓴 글이기에..  얼마든지 사 먹을 수 있는 맛인데 그 맛을 그리워하다니... 동생에게만 어울리는 형용사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 리. 운. 맛    

- 손끝이  더러우면 어떠냐 내손인데.. 손끝에 끼워먹는 꼬깔콘

- 땅콩을 싼 과잔 침으로 녹여먹고 땅콩은 나중에 먹는 센스 오징어 땅콩

- 길쭉한 과자에 입혀진 초콜릿 빨아먹고 나중에 과자만 먹는 빼빼로

- 주인공보다 엑스트라에(별사탕)  초점을 두는 건빵

- 나와 함께 자라온 같은 나이의 국민스낵 새우깡

- 2% 부족한 맛이  매력적인 에이스

- 한 개씩 먹기엔 감질나는 고래밥

- 몇 개 먹고 나면 바닥 드러나는 런볼


- 좀 거친 맛이 일품인 다이제스티브

- 먹고 나면 입 아픈 양파링

- 잘린 꼭지에  집착하는 쭈쭈바

- 누가 보긴 보냐... 먹는 방법이 빼빼로랑 비슷한 누가바

- 12시에만 만나 먹어야 하는 부라보콘

- 바삭바삭 씹는 맛이 좋은 소라과자

- 그 돈이면 진짜 바나나를 사 먹지 바나나킥



모두가 그리워하는 맛이란 건 단지 그 맛이 주는 입안의 느낌이 아닌 그 시간과 공간에 담긴 추억이 있기 때문이란 걸 점점 더 알게 되면서 참 많은 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며칠 전, 온 가족과 함께한 한 끼의 식사언젠가는 냄새로 또 추억으로 그리운 한 날이 되겠지! 내가 어린 시절의 그 날을 이토록 그리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소중한 지금이다. 그리워할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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