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음식들로 부모님만을 생각하며정성스레 식탁을 차렸다. 지금껏 부모님이 나에게 해주셨던것처럼..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이날은 또 어떤 냄새로, 또 어떤추억으로 기억될까?
아주 오래전 행복했던 그날의 기억을지금 내가 페인트 냄새와 갈치조림 냄새로 기억하는처럼 말이다.
특히 나물을 좋아하시는 아빠를 위해 할 수 있는 나물반찬 가득 준비한 식탁
1978년 여름...페인트 냄새가 진동했던 그 날은 우리 가족이 새로 지은 자그마한 이층 집으로 이사하는 날이었다.
그날은 그랬다. 허름한 기와집이 아니어서 좋았고 왠지우리 집도 부자가 된 것만같아기분은 한없이부풀었다. 부족한 게 뭔지도 잘 모르던 꼬맹이 어린나이였으니 그저 이층 집이라니 마냥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날의코를 찌르는 독한 페인트 냄새는 전혀 거슬리지도않았고피하지도 않았다.
지금도 페인트 냄새가 코끝을 스치는 공간에서는 그곳이 어디든 어김없이 난 순식간에 그날을 추억하게 된다. 그날의 기분그대로로 돌아가 보고 싶지만 그날의 설렘과는 사뭇 다른...어떤 방법으로도 이젠 절대 돌아갈 수 없는아득하고 쓸쓸하고허전한 기분에서 그만멈춰버리고 만다. 너무 그리워서일까!
그 기분은 몇 해 전 '응답하라 1988'의 마지막 회에 모두가 떠나버린 쌍문동 골목 풍경을 바라보던 그 쓸쓸한기분과 사뭇 비슷했다.이 세상에서 사라진 공간적 의미의 아쉬움보다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시간적 의미의 아쉬움 같은 거였다.
동생들과 나를 담은 사진 한장은 나의 어린시절을 추억할 귀한 보물이다.
우리 집 2층 집.. 부자가 된 것 같은 그 좋은 집에서조차 엄마, 아빠, 여동생, 남동생 그리고 나는 늘 일 때문에 바쁘신 부모님과 한 자리에 모여 식사를 한 적이 없었다.
다행히 부모님 일터와 집이 멀지 않은 덕분에 어린 세 남매 저녁 준비를 위해 저녁 무렵이면 엄마는저녁 찬거리를 사들고오셨고..이삿날은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식사했던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부엌을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는 엄마 덕분에 맛있는 갈치조림 냄새가 금세집안 가득해졌다.
어스름한 저녁 창밖으로 비추인 불빛들이 나에겐 늘 저녁을 준비하던 엄마처럼 느껴지곤한다.
지금도 그 냄새만큼은 생생히 기억난다. 아주 또렷하다. 그 냄새는 나에게 어린 시절 그 행복했던 날을 기억하게 하는 추억냄새다.
고구마 줄기 껍질 벗기는 일을 엄마는 종종 나에게 시키셨다. 긴 줄기 중간을 꺾어 한쪽으로 쭉 내리면 얇은 껍질이 벗겨지는 게 신기했다. 대충 벗겨져도 크게 상관은 없다. 이렇게 준비된 고구마 줄기는 뜨거운 물에 푹 삶아져야 비로소 갈치조림에 들어갈 자격을얻게 되었다.
무는 큼직했다. 삶긴 고구마 줄기도 냄비 한편에 수북이 담겨 있었다. 그 위에 큼지막한 갈치몇 조각이 얹어진다.
적당한 고춧가루 양념장과 어우러진 재료들이 한참을 이리저리 국물을 튀긴자국들을 남기고나서야 비로소 갈치조림은완성된다.
엄마가 "얼른 나와밥 먹어라"라며 큰소리로 우리 삼 남매를 부를 땐 우린 머리를 쫑쫑 딴 주근깨 소녀가 주인공인 '삐삐'라는 프로그램에 빠져 있었다. 우리를 엄마는 재촉했고 우리는 마지못해 밥상에 둘러앉았던 특별할 것 전혀 없던 바로 그날이 난 왜 이렇게 그리운지 모르겠다.
그 날이 이토록 가슴 먹먹히 그리울 거라고 생각 못했는데.. 이럴 줄 알았다면 좀 더 그날의 기억을 더 멋지게 만들었으려나!
그립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엄마가 해주었던 그 갈치조림을 먹던 그날이..그립다! 그 엄마가 해준 갈치조림 냄새가!
내가 냄새로 추억을 떠올리듯이 사람마다 추억을 떠올리는 순간은 다 다르겠지. 추억을 냄새로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나와 내 동생이 다른 것처럼...
동생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불치의 병 루게릭병으로 오랫동안 투병 중에 있다. 동생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다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명료한 감각과 인지능력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것 말고는 말이다.
오래전 동생은 안구마우스를 통해 '그리운 맛'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한 글자 한 글자 공감 가는 표현에 웃음이 나오다가도 울컥한다. 이건 다름 아닌 내 동생이 쓴 글이기에.. 얼마든지 사 먹을 수 있는 맛인데 그 맛을 그리워하다니... 동생에게만 어울리는 형용사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 리. 운. 맛
- 손끝이좀더러우면어떠냐내손인데.. 손끝에끼워먹는 꼬깔콘
- 땅콩을감싼 과잔침으로녹여먹고땅콩은나중에먹는센스 오징어 땅콩
- 길쭉한과자에입혀진초콜릿빨아먹고나중에과자만 먹는 빼빼로
- 주인공보다엑스트라에(별사탕)더초점을두는 건빵
- 나와함께자라온같은나이의국민스낵 새우깡
- 2%부족한맛이더매력적인 에이스
- 한 개씩먹기엔감질나는 고래밥
- 몇 개먹고 나면바닥드러나는 홈런볼
- 좀거친맛이일품인 다이제스티브
- 먹고나면 입 아픈 양파링
- 잘린꼭지에더집착하는 쭈쭈바
- 누가보긴보냐... 먹는방법이빼빼로랑비슷한 누가바
- 12시에만만나먹어야 하는 부라보콘
- 바삭바삭씹는맛이좋은 소라과자
- 그 돈이면 진짜 바나나를 사 먹지 바나나킥
모두가 그리워하는 맛이란 건 단지 그 맛이 주는 입안의 느낌이 아닌 그 시간과 공간에 담긴 추억이 있기 때문이란 걸 점점 더 알게 되면서 참 많은 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며칠 전,온 가족과 함께한 한 끼의 식사도 언젠가는냄새로 또 추억으로 그리운 한 날이 되겠지! 내가 어린 시절의 그 날을 이토록 그리워하는 것처럼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