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감 리베 Apr 15. 2019

빛바랜 편지 속의 동생이 그립다.

사람들은 묻곤 한다.  내가 친정 동생 챙기는 모습이 각별해 보였나보다.  우애가 아주 돈독했냐며..  

나에게 동생은 어땠는지 지난 날들을 더듬적거릴 때면 순차적으로 떠오르는 몇 개의 그리운 추억들..


나에겐 바로 아래 여동생과 막내 남동생이 있다.  내가 '동생'이라 함은 막내 남동생을 두고다.  

동생은 어릴 때부터 잘 생겼다는 소릴 많이도 들었고 그에 못지않게 키도 남들보다 월등 컸다.  

얼마나 특출나게 컸던지 둘째 여동생 초등학교 1학년 시험에 '동생은 나보다 크다'라고 체크해서 

틀렸을 정도였으니까 이미 대여섯 살 때 이미 두각을 나타냈다.


나에게는 비밀스런 '보물상자' 하나가 있다.  

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을 법한 추억의 편지 상자.  먼 훗날 추억이 그리울 때 꺼내보려고 고이 간직해 둔 

그 상자 속에는 동생과의 어릴 적 한 때의 추억이 빛바랜 편지지가 되어 담겨있다.   


나를 웃음 짓게 한 편지 한 장... 

볼 때마다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보물이다.  읽다 보면 그 시절이 너무나도 그립기만하다.


편지 속 동생은 껑충하게 커다란 키다리 학생이었고 농구선수였고 건강했다.  

동생이 중학생일 때 난 서울로 대학을 오게 되었다.  그 즈음의 편지 하나를 읽어본다.





콘크리트 위에 어두운 밤이 찾아오며 새벽을 쫓듯 거리에 불빛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가는 이 밤 난 누나에게 편지를 쓴다.

누나!  내 손 거의 다 나아간다.  손에 힘이 없어서 써 가기가 좀 불편해. 
저번에 서울 가서 누나를 볼 때 이제 누나도 다 성장했구나.  벌써 대학 4년생이라니.  나도 어느덧 주민등록 나오는 18세가 되었어.  누나가 옛날 날 목욕시켜줬단 얘기 기억해보니 기억은 나기는 해.  생각해보니 쑥스럽구먼!  이렇게 성장해서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깝다고나 할까?  헤어지게 되잖아. 대학생활 마치면 누난 직장 아니면 결혼할거잖아, 안 그래?  그럼 지금도 두 달에 한 번 오는 것도 힘든데 그때는 1년에 아님 2년에 한 번도 오기 힘들 거 아냐.  그러면 누나가 나 보고 싶어서 안절부절 할거 아니겠어?  심지어는 창고에 가서 발수건으로 코 풀면서 훌쩍거릴 수도 있겠지.  그러니까 나도 누나도 불행이잖아.  안 그렇습니까?    

(중략)     

지금 라디오에서는 FM 이종환의 디스크쇼가 방송되고 있어. 시간은 별로 안됐어.  누나는 지금쯤 학교에 있겠지?  아니면 돌아오는 길에 있나?  아무튼 누나 공부 열심히 하시고 연애(이 말은 마음에 안 든다)도 좀 하시고 1년도 안 남은 대학생활 재미있고 뜻있게 성실하게 보내싶시요.
아까운 시간 허송세월로 보내지 마시고 열심히...
  
안녕!  뜻깊은 대장부 동생 



동생은 내가 결혼을 하면 서로 자주 못 볼 걸 미리 아쉬워할 만큼 날 참 좋아했었는데 지금 난 그 시절의 순수하고 건강하고 해맑기만 하던 동생이 그립기만 하다.  

그런 동생이기에 그 동생의 삶에 내가 깊숙 끼어들었는지 모르겠다.  

남들이 우애라고 하는 정도를 뛰어넘어서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병상에서지만 그 누구보다도 희망을 이루고자 포기 없이 달려가고 있는 동생이기에..  

건강한 날 부끄럽게 만든 강인한 의지를 가지고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열정적인 동생이기에..  난 어느덧  동생의 희망을 같이 만들어가는 친구가 되어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동생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어제 낮은... 정말로 동생만 아프지 않다면 행복하기 그지없을 것 같은 가을날의 한낮이었다.  

따사로이 방안을 가득 채운 가을 햇살과 아파트 창 너머로 보이는 물든 단풍들, 그리고 바닥을 뒹구는 낙엽들.  늘 방안을 오가는 엄마와 간병는 아줌마도 눈앞에 없었기에 

침대에 누워있는 동생에게 눈길만 주지 않는다면 그 가을을 행복하게 만끽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그러나 난 자는 듯 눈을 감고 있는 동생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호흡을 잘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해서만은 아니었다. 

 '왜, 동생이 저렇게 누워 있어야만 하는지'라는 연민 섞인 의문 때문도 아니었다.  

그 순수하고 밝은 동생의 얼굴 모습 속에 감춰져 있을 두려움과 세상을 향하여 쏟아내지 못하여 애통해할 그 눌림들, 그것들을 그렇게 바라보는 것으로라도 덜어주고 싶은 어리석은 바람 때문이었다.  


그러나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동생의 뒤척임(눈을 깜빡이는 것)을 보며 행여 내 생각이 들키면 안 될 것처럼 눈을 재빨리 다른 곳으로 돌렸다.  

동생은 잠을 자렸는지 아님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다시 눈을 감았다.   

나는 옆에 있는 책을 읽으려고 했다.  책장 넘기기를 조심, 조심하며...


그런데 나는 그때 알았다.  조심하며 책장을 넘기는 내 마음 안에 동생에 대한 미안함이 있다는 것을...  잠이 깰까 봐 조심스레 책장을 넘기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건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책장을 넘기고 있다는 것이 동생에게 미안해서라는 것을...'


내가 동생과 함께 걸어야겠다고 마음의 각오를 다지던 몇 해 전 나의 일기다.


엄마는 동생 앞에서 밥 먹는 소리를 내는 것조차 미안해하며 괴로워한다.  

숨 쉬는 것까지도.  그랬다.  우리 가족은 동생과 함께 아파하고 있고 이 시간들을 함께 걸어가고 있다.  

순간순간이 주는 괴로움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상처를 서로에게 줄 때도 있지만 가족이란 이름 안에 우린 사랑으로 이 모든 것을 함께한다.


루게릭병으로 벌써 17년째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동생이지만 병상에서조차 단 한순간도 자신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에, 그 간절한 모습에 나는 나도 모르게 9년 전 그 희망에 동생과 함께 가기로 마음먹었나 보다. 

그 길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지도 가늠해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동생에게 힘이 되고 싶었나 보다.  

그것이 내 지금 모습의 이유겠다.    


내가 동생과 걸어왔던 지난 날들을 생각해보면 많은 순간 힘들기도 했지만 기적과도 같았다. 

그건 우리의  일상이고 평범한 인생이기도 하다. 남들처럼..


난 그것을 소개하고 싶었나보다.


to be continued...


승일희망재단

작가의 이전글 무너진 우리들의 삶의 질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