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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 리베 Apr 15. 2019

무너진 우리들의 삶의 질서

17년 전이었다 해도 세상에 수많은 불치의 희귀병들이 있다는 걸 몰랐을 리 없는 나였다. 

너무나 절망적일 거라고 충분히 짐작 가능한 불치의 병들 말이다.  

하지만 아는 것과 나의 일이 되는 건 별개의 일인걸 우린 알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동생의 일이 되고 보니 이야기는 이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달라진 걸 보니..


우선은 예고 없이 눈에 뻔히 보이는 현실을 부인하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우리에게 불치병 이란 건 들어본 적도 없었던 거고 그런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존재해서도 안 되는 거였다.  불가능에 대한 이야기는 그 어느 것도 듣지 않을 작정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머지않아 그 작정마저도 다 무너질망정 그 어딘가에 있을 가능성을 찾아서 난 한동안 있는 힘껏 억지를 부려보았는지도 모르겠다.  남이 가 본 길은 그냥 그들의 것인 거고 그들의 경험인 것이지 

내 것은 그리고 우리의 것은 아닌 거니까..


내가 그럴 때에는 당사자인 동생과 부모님은 말해야 무엇하겠는가!  

하지만 동생은 납득이 되지 않을 만큼 이성적이었다.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이야기를 가족들을 모아 놓은 자리에서 남의 이야기인 듯 선언하듯 해버린다. 

치료제도 없는데 괜한 곳에 시간낭비 돈 낭비 말라며.. 가족 앞에서만큼은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않아서였다는걸 우린 알 수 있었다.


동생인들 그 뭐라도 붙잡고 싶지 않았을까!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을까!  불치병이라니..
 
내 머리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순간에도 내 몸은 조금씩 무너져갔다.  자꾸만 움츠러드는 자신을 추스르려 많은 책들을 읽으면서도 그 책의 주인공들처럼 어떤 모습으로라도 살아있을 수만 있다면 하는 마음은 더욱 간절해지기만 했다. 팔이 없어도, 다리가 없어도, 어디가 일그러졌어도 좋다.  
살아 있기만 한다면..  살아있을 수만 있다면.. 

이제 남은 것은 하나씩 하나씩 포기해가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끝이 명확히 보이는데 하나씩 내던지며 가는 길은 
차라리 한꺼번에 다 버리는 것보다 더한 고통이 일지 모르겠다.

(2002년 6월 동생의 일기 중에서)


내 삶의 질서란 이랬다.  계획하고 애써 노력하면 그에 따른 결실은 당연히 따라오는 거라고 그게 삶의 이치인 거라고..  욕심이 터무니없이 크지 않은 이유여서일까!  

노력해도 불가능한 것이 있다는 것은 그때까지 만나지 못한 우리 질서 밖의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부모님은 남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 가난했다. 

아마도 찢어지게였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내가 기억을 못 할 뿐..  너무나도 가난하게 결혼생활을 시작했던 부모님에게서 성실함은 재산이고 힘이었고.. 그 질서 안에서의 노력은 적당히 안정적인 삶을 살아갈 여유를 안겨다 주었으니.. 우리의 질서는 정당했고 합리적이었고 충분히 타당했다. 


하지만 그 질서는 루게릭병 앞에서 한순간 무너져야만 하는 허무하기 짝이 없는 우리만의 질서였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어찌하든 그곳으로부터 하루빨리 벗어나고만 싶어 몸부림쳤다.  

어느 것도 할 필요도 없고 할 수도 없는 최고의 무기력 상태에 우릴 던져놓았으니 왜 안 그랬겠는가!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었고.. 아니다!  발휘할 필요도 없었다.  

이건 그냥 손 놓고 받아 드려야만 하는 주어진 운명이었고 받아 드릴 수밖에 없는 무기력함의 극치였다.  

마음은 요동치는 전쟁터 같았고 뭐라도 해보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서울의 종합병원이라 이름 붙은 곳을 여기저기 찾아다녔다. 

오진이라는 결과가 주어지길 바라는 마음은 매번 한결같았고.. 아무 반발도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서 그 의사는 내 마음 안에 완전 돌팔이로 낙인찍혔다.  

자기들이 뭘 안다고.. 생과 사를 어찌 안다고 그깟 알량한 지식으로.. 게다가 한결같이 그렇게 인정머리라곤 하나 없는 차가운 표정과 말투로.. 남의 인생의 기간을 정해놓는건데.. 어이없다.  자기들이 뭔데..


억울함과 원통함을 의사의 뒤통수에 대고 혼잣말로 내뱉는다 해도 소용없었지만 그렇게 내 안의 분노를 쏟아내고 싶었다.  그들은 나에게 무모한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  


손 한번 써 볼 수도 없는 아무런 치료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불치병!  

난, 수도 없이 확인해보고서야 비로소 현실을  다시 한번 확정 지을 수밖에 없는 꼴로 서 있었다.  

미련하다고 해야 하나!  남들의 뻔한 미련스러운 모습을 보고 이해가 가지 않았던 내가..  

이성적으로도 멀쩡했던 내가..


어떡하든 동생과 동생을 바라보는 부모님께 하루빨리 희소식을 전해드려야만 했다. 

숨죽여 울먹이던 아버지의 들썩이던 뒷모습도.. 넋이 나간 듯 헤매는 어머니도 다 제 자리에 돌려놓아야 했다. 그래야 우리는 전처럼 행복할 수 있었고 그래야 각자의 위치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그것만 생각했던 17년 전의 나의 모습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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