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일희망재단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2002년 1월의 어느 날... 멀리 미국에서 걸려온 전화기 속 동생의 목소리는 한없이 힘이 없었다. 그 너머로 느껴지던 왠지 모를 불길함은 아직 무슨 상황인지 전혀 알지 못했던 내 온몸의 기운을 다 빼앗아가고도 남을 만큼 강했다.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날의 느낌은 생생하다.
누나! 내 몸이 좀 이상해.
기분 나쁘게 손에 힘이 빠지면서 운동하려고 들고 있던 바벨을 힘없이 떨어뜨렸어.
신기했다. 동생이 한 말은 겨우 그것뿐이었는데 나는 불현듯 친한 친구가 앓고 있던 루게릭병 을 떠올렸으니 말이다. 너무나도 희귀하다는 그 병명이 왜 내 뇌리를 스쳤는지 모르겠지만 그로부터 3개월 후 의사를 통해 그 병명을 다시금 듣게 될 줄은 정말이지 꿈에서도 몰랐던 우리였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조차 없이 처음 병원을 내원한 우리에겐 루게릭병이며 앞으로 2~3년밖에 살 수 없다는 사형선고는 너무나도 가혹했고 잔인하기만 했다. 어디에 하소연조차 할 수 없게 만든 '확진'이라는 요지부동의 이름표를 매달고 들려온 루게릭병이라는 의사의 선고는 동생은 물론 내 삶 전체의 질서를 송두리째 흔들어버렸다. 그 병명이 내 뇌리에 떠오른 까닭이 마치 예정되었던 운명의 전조였던가 하는 생각이 일견 스쳐 지나갔다.
그때부터였으리라. 결혼 후 각자의 삶의 영역이라고 정해졌던 동생과 나의 삶의 테두리는 온 데 간데 없어졌고 동생과 얽히고설켜 버린 운명은 너무나도 버거워 매일매일 던져버리고 싶기만했다. 하루하루의 삶의 무게는 맏딸이자 큰누나인 내 어깨에 가감 없이 얹혀졌고 그 피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현실을 벗어버리고 싶어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면 차라리 내일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기도했었다.
하지만 세월은 어느덧 열일곱 해만큼 흘러갔고 우리들의 삶은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차곡차곡 쌓여 인생이 되었다. 모든 게 하루빨리 원래대로 돌아갔으면 하는 가당치 않은 바람을 가진채 말이다.
그러는 사이.. 어느 날 문득 예고 없이 찾아왔던 참담한 현실이 우리 가족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란 것도 알게 되었다. 동생을 위로하려 찾아왔던 무수히 많은 사람들 중에는 다양한 이유로 동생보다 앞서 세상을 떠나기도 하였고, 동생과 같은 병이 자신에게 찾아오리라 생각도 못했다던 사람들이 같은 병을 진단받았다며 찾아오기도 했다.
인생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라는 걸 뼈저리게 실감하면서 이런 특별할 것만 같은 삶이 결코 특별하지만은 않음을...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 일들과의 만남이 인생인거구나하는 삶의 이치를 하나하나 채득해가게 되었다.
글재주라고는 하나 없는 나이지만 누군에게 공감이 될 수 있는 삶일 수 있겠다는 기대가 도전하는데 힘이 되어준다.
써보아야겠다. 지난 17년 '너는 내 운명'이 되어버린 동생과 나의 삶의 흔적들.. 그리고 생과 사의 사선에서의 하루하루를 그리고 그 속에도 생생히 살아있는 일상의 삶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