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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저장소 Mar 13. 2019

본부장 밑에만 있으면 되잖아

유라인으로 불리어지다 2

몸과 마음이 지쳐 갈 때쯤이었다.

회사 앞에서 내가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퇴사한 직원을 만났는데 그분이 반갑게 인사를 하셨다. (나는 주변을 잘 보지 않는 편이라 먼저 인사하는 일이 드물다) 사실 얼굴이 가물가물 했지만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했고 그분과 인연이 있던 친구들도 인사를 하며 잘 지내냐는 질문에 '죽겠다'라며 힘듦을 표현하였는데 돌아온 말은


본부장 밑에만 잘 있으면 되잖아

바로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정말 하루하루 버티기 힘들었기 때문에 어떤 다른 기준을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말씀하신 그분 역시 회사에서 고생만 실컷 하시다가 그만두신 걸로 알고 있어서 서로 힘듦을 공유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앞서 '본부장님 사람' 이란 단어를 듣고 무서워졌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때 이 순간이 생각났다. 아. 이거구나. 유라인. 그분은 그냥 회사에서 챙겨주는 윗사람이 있으니 잘 따르면 되지 않냐 라는 정도의 위로 였을터..


나만 몰랐다. 파벌이라는 게, 편을 가른다는 게, 너무도 싫은 기억이었던 나는 어떻게든 그 경계를 없애고 싶었다. 그래서 소위 유라인을 분해했다. 어차피 조직개편이 잦은 회사였기 때문에 잘한다는 그 친구들을 다 다른 부서에 보냈다. 그때 회사의 클라이언트 중 가장 비중 높은(유명한) 클라이언트가 제안팀이 구축을 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어서 보냈다는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으나, 다른 부서에 보내고 나서 난 정말 수많은 입사와 퇴사를 결재하며 한 해를 보냈다. 앞서 말했지만 워낙 속도도 빠르고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경력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적응하지 못하고 경력이 없으면 배우지 못했다. 선행 조직이 점점 대표님 수발 조직이 되어 가고 있었다. 회사는 점점 성정하고 있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 회사의 하이라이트는 그때의 조직개편 전이었던 것 같다. 내가 아는 그 대표는 UX는 정말 잘했다. 소비자가 필요한 것, 소유자(클라이언트)가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캐치해 깔끔하게 표현하였다. 그때는 UI/UX 개념이 막 생겨날 때라 막연히 UX가 하고 싶다고 생각한 나한테는 또 한 명의 사수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컴퓨터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업생(業生- 이 단어가 맞는지 모르겠으나 인생을 바꾼 건 아니라..)을 바꾼 두 명의 사수가 있다. 한분은 정말 컨셉추얼 한 사람이었다. 멋지고 동경했다. 막연히 포토샵만 사용할 줄 알던 나에게 디자인을 가르쳐준 모션 디자인팀장님이었고 한분은 그 뒤로 간 회사에서 가슴을 후벼 파는 직언을 날리시며 잘 이끌어 주는 과장님이었다 두 명이 디자이너인 메이를 만들었다면, 기획자로서의 메이는 사실(인정하기 싫지만) 그 대표를 많이 닮았다. 기획의 디테일보다는 사업적으로, 프로젝트를 하는 목적, 목표 등 사업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끄는 걸 보면. 주제에 벗어나니 이런 얘기는 그만 하고.


본론으로 돌아와서. 조직원들을 분리했으나 유라인은 더 돈독해졌다. 매일 밤 모여 누군가를 답답해하고 프로세스를 의논하고 하는 사이 나는 그들을 책임져야 하는 무게감이 점점 무거워졌다. 프로젝트는 물론이고 내 행동과 말. 선택이 그들에게 어떠한 영향이 끼칠지 생각하니 손가락 하나 까딱 하기가 힘들어졌다. 주어진 일이나 할 줄 알던 내가 누군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게 너무 무서웠다. 갑자기 부모가 된 이들의 기분이 이랬을까. 부모가 돼봐야 내 부모의 심정을 안다는 말이 이런 말이구나...


그제야 생각났다. 아 선배들.. 내 선배들은 어떻게 리더십을 배웠고 아랫사람들을 챙겼지?

 

3년 동안  부사장 명함까지 받고 나온 회사 그렇다 이 회사다.



또 늦어진 약속이지만 글 쓰면서 여러 가지 깨닫는 게 있어서 좋습니다.

쓰면 쓸수록. 참

나는 행복한 사람이구나.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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