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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스핫초코 May 26. 2017

사랑에 있어 그 대상이 가지는 의미에 대하여

Before Sunrise

    처음 연인이 생긴 지인의 고민상담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상대방과 순식간에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였고 관계가 빠르게 발전하였다고 설명하면서 그러나 약 한 달 정도가 지난 지금 서로에게 눈에 띄게 소홀해졌다는 걱정을 털어놓았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에 그가 상대방과 연인이 된 것이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인지, 그저 감정을 공유할 대상이 필요했는데 우연히 그녀가 그 대상이 된 것인지에 대해 혼란스럽다는 그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연인이 서로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면서 감정이 불꽃처럼 타오른다면 순간적인 감정에 취하여 이성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일정 시간이 지나 그들 스스로를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을 때 권태감 혹은 회의감을 느끼곤 한다. 상대방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과 자신이 사랑 받고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 중에 어떤 것이 더 앞섰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고, 만일 다른 사람을 만났더라면 지금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가정과 상상을 하기도 한다. 사랑에 있어서 상대방이 가지는 의미와 대상의 선택에 대하여 영화 ‘비포 선라이즈’를 통하여 살펴보았다.


    기차를 타고 집에 가던 셀린느는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남자, 제시와 대화를 하게 된다. 몇 분간의 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제시가 마음에  든 셀린느는 그를 따라 비엔나에서 기차를 내리기로 결심한다. 그들은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 동행하기로 하고 도시를 관광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사랑에 빠진다. 예정대로 다음날 아침이 되자 6개월 뒤 다시 만나기로 하고 그 전까지는 연락을 취하지 않기로 약속하며 작별 인사를 한다. 영화의 흐름은 현실적이라기 보다는 누구나 한번쯤 꿈꿔볼 만한 몽상적인 설정이다. 그러나 두 등장인물의 대화에는 제법 진지하게 고민해 볼 만한 주제들이 등장한다.


셀린느: “사람은 인생을 거짓으로 살 수 있어. 난 결혼해 사는 우리 할머니를 보며 할머니가 참 쉽고 단순한 사랑을 한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할머니가 고백하길 평생 동안 할머니의 마음 속엔 다른 남자가 자리잡고 있었다는 거야. 할머닌 그저 운명을 받아들인거지. 너무 슬퍼. 하지만 한편으론 할머니한텐 없을 거라고 생각한 감정이 할머니한테 있었다는 게 신이 나.”

제시: “장담하는데 그 편이 나아. 할머니가 그 남자랑 잘 됐다면 결국엔 실망했을 테니 말이야.”

- <Before Sunrise>, 1996, 서커스를 거닐면서 나누는 대화 중 -


    셀린느의 할머니는 사랑을 전제로 한 결혼을 하지 못했고, 평생 마음 속에 다른 사람을 품고 살아갔다. 그렇다면 사랑을 행함에 있어서 대상이 있기에 그 대상을 사랑하게 되는 것인지,사랑을 해야 하기에 대상을 선택하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랑이 아토포스로서 유일무이하고 독특한 나의 이상적인 대상이라면 그 특정 대상이 충분히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게 되지만, 그 또한 꼭 그렇지는 않다. 자신이 생각하는 아토포스는 실존하는 그 대상이라기 보다는 내가 인식하거나 받아들인 상대의 상태이고 바라는 모습이다. 처음에 연인은 누구나 서로를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흔들리게 되는 것도 자신이 생각했던 그 모습과 실제 상대의 모습에는 괴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쉘 실버스타인의 <어디로 갔을까, 나의 한쪽은>에 등장하는 동그라미처럼 누구나 자신과 꼭 맞는 조각을 찾아 헤매지만 실제로 딱 맞는 조각을 만났을 때, 그것은 이미 자신이 찾던 그 조각이라고 볼수 없는 것이다.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한 자신의 아토포스는 현실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자기중심적으로 창조된 이미지에 불과하고 그것이 현실의 상대와 일치할 수는 없다. 흔히 로맨스라고 말하는 것과 실제 연인들의 사랑이 불일하는 것도 일맥상통한다.


    이렇듯 운명의 대상으로 여기던 상대가 자신의 아토포스가 될 수 없다면, 그 대상은 그 자체의 의미를 잃게 된다. 물론 자신이 꿈꾸던 이상적인 이성의 모습과 가능한 비슷한 상대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지만, 끊임없이 그보다 이상형에 더 가까운 상대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노력이 소모적이고 끝이 없는 일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랑은 감정을 공유하는 그 행위적인 부분이 앞서는 것일까.


 “나랑 같이 비엔나에서 내려 마을을 둘러보자…(중략)… 좋아, 이런 식으로 생각해봐. 10년,20년이 흘렀다 치자, 알았지? 그리고 넌 결혼을 했어. 그런데 결혼 생활이 옛날만큼 재미있지가 않아. 그래서 남편을 탓하며 네가 옛날에 만난 모든 남자를 떠올리는 거야. 그 때 그 남자를 선택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상상하는거지. 그 남자 중 하나가 바로 나야.”

- <Before Sunrise>, 1996, 제시가 셀린느를 설득하는 대사 중 -


    이 대사는 제시가 셀리느에게 기차에서 내리자고 설득하면서 하는 말이다. 이처럼 누구나 사랑을 함에 있어서 지나간 이들과 지금의 연인을 비교하고, 다른 선택을 가정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앞선 사랑에 대한 사유에서는 특정 대상이 가지는 의미는 없을 것이라고 여겼지만, 현실적으로도 그럴까. 주목할 만한 점은 경험한 사랑에 대해 후회하거나 지나간 사람을 추억하게 되는 이유는 그가 누구였는지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경험의 유무 때문이라는 것이다. 제시의 말처럼 훗날 남편과 함께 하면서도 기차에서 만난 남자를 떠올리고 그리워할 수 있지만 만일 그 남자가 남편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역시 다른 남자를 떠올리며 누군가를 추억할 것이다. 그 기억 속에서 떠올리는 과거의 남자는 여자의 사유이고 이상적인 형상이다. 외부적인 요인이 그것을 공격하지 않는 이상 그것은 셀리느의 할머니가 평생 가슴 속에 품은 사랑이 되는 것이고, 실제로 그 사람을 경험하고 사유에서 경험으로 나아가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이상적인 상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 아토포스의 무너짐은 이상적인 상을 깨뜨리고 그것을 현실로 만들며 이내 새로운 아토포스를 만들어 내어 그것이 공격받기 전까지 간직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른 뒤에는 사랑에 대해 비관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아무리 최고의 이성을 만나려고 노력하고 찾으려 해도 결국 자신이 만들어낸 이상과의 괴리에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것이다. 이 일시적이고 반복적인 사랑의 딜레마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아까 연인이 몇 년 동안 같이 살게 되면 상대의 반응을 예측할 수 있고 또 상대의 습관에 싫증을 느끼게 돼 서로를 싫어하게 된다고 했잖아. 난 정반대일 것 같아. 난 상대에 대해 완전히 알게 될 때 정말 사랑에 빠질 것 같거든. 가르마를 어떻게 타는지, 이런 날은 어떤 셔츠를 입는지, 이런 상황에선 정확히 어떤 이야기를 할지 알게 되면 난 그때야 비로소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될 거야.”

- <Before Sunrise>, 1996, 이튿날 아침 셀린느의 대사 중 -


    오래된 연인의 권태감 혹은 아토포스의 상실은 사랑을 사유하는 행위에서 대상에 대한 관심으로 바꾸는 것으로 극복할 수 있다. 처음 자신의 이상에 가까운 이성을 발견하고 그와 사랑에 빠지기까지의 과정은 자기중심적으로 이루어진다. 자신의 이상에 대상을 맞추고 견주어 보면서 얼마나 근사한 사람인지 호기심을 가지고 관찰한다. 하지만 이내 완벽한 줄 알았던 상대로부터 결점을 발견하고 자신이 생각했던 모습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때 이상과 현실의 대상과의 연결을 끊고 오로지 상대에게 집중할 수 있을 때 현실에서의 사랑이 이루어진다.


    에리히 프롬이 <사랑의기술>에서 주장하듯이 사랑을 받는 것에서 주는 것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종래의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면서 대상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호의를 표하는 단계에서 나아가 모든 행위나 사유의 목표가 온전히 상대가 되는 것을 뜻한다. 더 이상 상대가 자신의 이상과 일치하기를 바라지 않고 그저 대상에 대한 관심이 사랑의 감정으로 이어질 때 현실의 사랑이 성립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아 실현의 과정과도 상당히 닮아있는데 자신의 롤모델을 설정하더라도 현실의 본인은 완벽히 이상적인 모습일 수 없으며, 결국은 처음 생각했던 목표와는 다르더라도 본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존감을 형성하는 것과 같다. 어떠한 사랑이 옳고 그르다고 평가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접근은 반복적인 사랑의 실패로부터 우리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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