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온도계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스핫초코 Dec 21. 2017

좋은 사람

    나는 어려서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는데, 이것은 생각만큼 듣기 좋은 말이 아니다. 사람들은 내가 불이익을 당했을 때 '네가 사람이 좋아서 그래'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고, 딱히 거슬리는 부분은 없지만 나를 설명할 별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을 때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라고 했다. '좋은 사람'은 결국엔 '매력 없는 사람'을 뜻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색무취이거나 알 수 없는 사람. 그게 아니라면 좋다, 나쁘다처럼 의미 없는 말 대신 떠오르는 구체적인 수식어를 붙여주지 않겠는가. 최근에 이 말을 듣게 되었을 때에는 속이 텅 비어서 껍데기만 남겨진 듯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이유 첫째는 원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가 착해서 마음에 안 들어도 참고 견딘다고 생각하는 듯한데, 사실 나는 그냥 상관이 없다. 무엇이 주어지든 그것에 쉽게 만족한다. 어릴 때 과외를 받는 영어 선생님 집에 가면 '오렌지 주스를 줄까? 포도 주스를 줄까?'하는 물음에 한참 동안 가만히 있곤 했는데, 나는 어느 주스를 마셔도 불만이 없기 때문에 어떤 선택을 해도 똑같아서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나이를 먹으면서 상대방을 위해서라도 아무거나 하나는 골라줘야한다는 것을 학습했다. 때로는 중요한 선택에서도 이런 성향이 나타나는데, 어차피 내가 경험 못한 것은 알 수도 없으니 지금 선택한 쪽이 최선일 거라는 속 편한 마음가짐이 되어버린다.


    둘째로는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에 대한 기대치가 거의 0에 가까워서, 나를 배려하거나 생각해주기를 바라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실망하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내가 그들을 이해해준다고 느끼지만 어쩌면 그들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에 가깝다. 최대한 좋게 포장하면 편견이 없는 것 정도겠다.

    나는 좋은 사람 취급을 받아서 유난히 그룹의 장을 맡을 기회도 많이 주어졌는데, 그것은 모두를 위하여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능력이나 노력에 대한 부분조차 기대치가 없어서 믿고 일을 맡기는 데에 서툴렀다.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나 혼자 도맡아서 처리했으니 남들 눈에는 성실한 리더인 양 보였을지 몰라도 그것은 건강하게 집단을 성장시키는 방법은 아니다. 내가 열심히 할수록 나만 돋보이고 다른 구성원들은 배제되었으며, 내가 맡은 동안 잠시 괜찮더라도 떠난 뒤에는 빛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 외롭다. 특히 내가 많은 것을 바라고 기대하고 의지하는 사람이 나를 좋은 사람으로 여기면 어딘가 잘못된 느낌이다. 혼자가 되어버린다. 좋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실망할까 두려워 사람들에게 기대하지 않는 것도 그만둬야 하겠다. 나는 좋은 사람이고 싶지 않다.

   

36도. 추워서 웅크리고 있던 목을 펴니 하늘에 별이 많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