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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록키 Sep 07. 2018

[4화] 폐허에서 꽃을 찾는 만화가, 조남훈

인력거꾼 동료


웹툰 학원을 다니고 있어.


2018년 1월. 인력거 사무소에서 처음 만난 예보(인력거 일터에서 부르는 닉네임, 본명은 조남훈)는 위와 같이 말했다. 당시 그 말이 참 재밌었다. 웹툰을 그리는 사람과 처음 이야기를 섞은 것도 재밌었지만, 웹툰을 가르치는 학원이 있다는 게 더 재밌었다. 토익학원부터 시작해서 춤 학원, 요리학원, 커피학원까지. 학원 공화국인 한국에서 이젠 없는 학원이 없었다.
우리는 웹툰 얘기를 나누며 인력거를 끌었다. 나도 이말년, 주호민, 김태호 작가의 웹툰을 즐겨봤기 때문에 할 얘기가 많았다. 웹툰 이야기와 현실적인 이야기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구슬땀을 흘렸다. 

방송에 나온 유명인, '예보' -출처: 백년손님, 서울메이트


그러던 7월 어느 날. 예보가 사라졌다. 더 이상 예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다. 웹툰에 매진하는 건지, 아니면 집안일이 생긴 건지. 인력거꾼 명단엔 예보의 이름이 없었다. 

나는 궁금하던 차에 수줍게 전화를 걸었다. 예보는 내가 생각하던 것과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얼떨결에 잡게 된 인터뷰 날짜. 급작스러운 인터뷰 약속에 당황할 법도 했지만, 예보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겨울을 대비하는 다람쥐, 예보>


예보얼굴 본 지 꽤 오래됐는데그동안 뭐하고 지냈어?

다섯 달간 일할 짧은 직장이 생겼어. 원래 인력거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만화 연습하고 있었는데, 연습만 하기 심심하니까 가끔 낙서를 SNS에 올리거든. 근데 작년에 일할 때 거래처 관계였던 분이 그걸 보고 연락이 온 거야. 금천구에서 청년을 위한 무료 공간(청춘삘딩)을 운영하시는 분인데, 그 사업을 알리는 데 만화가 필요하다 해서 갔어. 

이렇게 생긴 곳이라 합니다.


거기서 만화를 그리는 거야?
아니. 사실상 만화보다는 회사 홍보를 담당하는 데야. 인스타, 블로그, 페이스북을 관리하는 거지. 아무튼 업무는 홍보 담당이고, 이제 익숙해지면 여기에 만화를 끼워 넣을 여지가 있겠지. 만화 포트폴리오를 못 만들 거 같아서 좀 속상하긴 한데. 어쨌든 여기서 서류작업 배워 놓으면 굉장히 도움이 될 거야. 만화가는 1인 기업 프리랜서로 살아가야 되니까. 세금 신고하거나, 납부하거나, 정산한다거나, 국가 보조 지원을 받을 때 도움이 많이 되겠더라고. 그래서 정산 같은 걸 배워갈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한동안 일할 생각이야. 그리고 인력거의 겨울은 추우니까(추운 겨울에 인력거꾼은 일감이 없다.), 다람쥐가 겨울을 대비해서 도토리를 쌓듯이, 그런 기분으로 일하려고.
  
그 외에 다른 소식은 없어?
그다음 내가 심혈을 기울이는 게, 게임? 
  
게임어떤 게임?
시티즈 스카이라인이란 도시 건설 게임인데, 인기가 굉장히 많아. 이 게임은 죽어가던 도시경영 시뮬레이션 장르를 살린 것으로 유명해. 기본적인 자유도가 아주 높아서 원하는 대로 도시를 만들 수 있는데, 나는 서울을 개발하고 있어. 오늘 여기 오기 전에도 잠깐 하다 왔는데, 관악산을 다 파서 댐을 만들었어. 그러면 댐의 물은 어디서 끌어오느냐? 가정에서 생활하수를 배출하잖아. 그걸 모아서 댐을 채웠어. 이 하수가 댐을 가득 채우고부턴 재활용을 하지. (으쓱) 


예보가 만든 도시. 퀄리티가 상당하다.


근데 그런 게임이 재밌어?
재밌지. 이런 종류 게임을 샌드박스(SANDBOX)라고 하는데, 나처럼 자기 세계관이 비교적 뚜렷한 사람들이 이런 게임을 하면서 되게 만족을 느끼지.(웃음) 나만의 작은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즐기는 거야.

심시티(좌), 롤러코스터 타이쿤(우). 딱히 목표 없이, 세계를 구축하는 대표적 샌드박스 게임.


예보 앞에선 재밌어 보인다며 웃었지만, 사실 난 전혀 흥미가 없었다.(미안해, 예보...) 예보는 가끔 인력거 차고에서, 자신이 만든 도시를 자랑스레 보여줬다. 하지만 나는 그걸 보면서 "응. 멋있네."라며 영혼 없이 대답했다. 목표 없이 세계를 구축하는 일은 내게 매력적이지 않았다. 적과 싸워 이기거나 미션을 깨는 게임을 더 즐기는 편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웹툰 작가는 그런 덕목을 가져야 할 것 같았다. 게임에서 자신의 도시를 건설하는 것처럼. 자신의 세계를 그리고, 그 세계에 사람들을 초대하는 게 웹툰이었다.

<예보의 웹툰 세계>


나만의 작은 세계라... 웹툰이랑 비슷한 것 같아웹툰도 작가만의 세계가 있잖아
그렇지. 특히 내가 좋아하는 세계는 디스토피아나 포스트 아포칼립스. 뭔가 싸그리 망하고 많이 잘못된 세계를 뜻하지. 난 그런 잘못된 세계를 좋아해. 내 작은 목표 중에 하나가 체르노빌 원전 사고 현장 답사에 참여해보는 것이거든. 예전에 독일에 있는 유대인 수용소인 ‘다하우’라는 곳을 가보기도 했고. 요즘에 나와 비슷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용어도 생겼지.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라고, 말 그대로 어둠을 쫓는 관광이야. 넷플릭스(NETFLIX)에서 다크 투어리즘에 관한 다큐 시리즈도 나왔는데, 꽤 즐겨 보고 있지. 다큐 주인공이 일본 후쿠시마 원전 관광코스를 가거나, 문제가 많은 박물관을 가거나, 아니면 남미에 마약상인이 부흥시킨 마을을 가기도 하고. 
  
후쿠시마도 간다고그런 데 가면 몸이 망가지지 않아?
망가지지. 다큐에서 보니까, 투어 하는 버스도 있고 중간에 먹는 식당까지 지정이 돼있고, 일본 가이드도 있어. 심지어 그 가이드가 영어도 되게 잘해. 아무튼 그 정부 차원에서 진행하는 투어를 다큐의 주인공이 갔나 봐. 근데 기계가 거짓말을 못하잖아? 가이거 계수기(방사능 오염 측정기)가 너무 깜빡깜빡 거리는 거야. 심지어 어느 지역 들어가서는 버스도 정차 안 시키더라고. 그래서 그런 거 볼 때는 ‘아 이건 영상매체로만 봐야겠다.’ 싶기도 하고. 


???? 진짜 있다. -출처: TV조선


최근에 비슷한 여행을 해보긴 했는데 다크 투어리즘까지는 아니고. 오사카랑 나라 사이에, 터널 공사를 하다 죽은 한국인들(전쟁 때 징용된)을 위한 '보덕사'라는 절이 있는데, 거긴 아무도 안가. 진짜 아무도 안가. 국내 몇몇 블로그에만 나와 있는 곳이야. 이번 1월에 오사카 여행 간 김에, 시간 내서 거길 갔는데 진짜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고. 
  
그럼 웹툰도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그리겠네?
그렇지. 사회의 흐름에 맞게 다른 내용도 준비하고 있지만, 가장 좋아하는 쪽은 그쪽이야.

그러면 디스토피아를 통해 예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
희망을 주거나 경고를 주는 거지. 디스토피아처럼 무너진 세상에서 주인공이 희망을 찾던가, ‘디스토피아 같은 상황이 와선 안 된다.’라는 교훈? 나는 사람이 결국은 착하다 믿어. 상황이 나쁜 거지. 할리우드 보면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많잖아.
 
사람이 상황이랑 환경에 따라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네?
그렇지. 상황이 좋지 않다면 사람들이 악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사람 답답하게 할 정도로 착하게 구는 사람들 있잖아? 그것보다 더 가혹한 환경에 착한 주인공을 던져놓고 성공하게 만들고 싶은 거야. 주인공이 진짜 답답하게 행동해서 사람이 많이 죽고, 다치고, 식량도 뺏기고, 극단적으로 행동한 사람한테 휘둘리지만,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조차 서로 사랑하고 연대하고 차별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오래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난 이게 실제 상황에서도 맞다고 생각해. 조직문화를 봐도 서로 진심으로 아껴주고 연대하는 조직에서, 구성원들이 더 헌신적이고, 아이디어도 많이 나오고, 위기 상황에서 협력을 잘 하잖아. 평소에는 민주적이랍시고 느려 터져 보이기도 하겠지만. 난 그게 디스토피아적 상황에서도 가능하다고 믿어서, 이 주제의식을 골자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 
  

예보가 그려본 디스토피아 한 컷


얼마나 디스토피아를 좋아하면,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고 그곳으로 여행을 가기도 할까? 이전에 드라마 '시그널' 작가, 김은희 씨가 무한도전에서 한 말이 생각났다. 

"저는 어떤 장소에 가면, 그 장소에서 사람을 어떻게 죽일 수 있을까를 상상해요."
디스토피아 얘길 하면서 눈을 반짝이는 예보를 보니, 제 길을 찾아 만화를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준비하는 웹툰 이야기를 맛보기로 들려줄 수 있어?
내가 인력거를 끌고 하다 보니까, 소재는 자전거가 끌리더라고. 석유가 사라진 세상에서 자전거가 최강자가 되는 내용인데, 한국판 매드맥스라 보면 돼. 기름이 없어졌다, 그럼 뭘 타야 되냐? 자전거를 타야 된다! 
현대인은 100% 생존을 시장경제에 의존하니까 (마시던 커피 잔을 들면서) 이런 컵 하나도 집에서 못 만들잖아. 석유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상태에서 모든 게 다 무너지는 거지. 이 상태에서 자급자족 경제를 건설하는 동안 사람도 많이 죽기도 하고. 근데 결국 선조들이 했던 것처럼 잉여자원을 서로 교역해. 물이 많은 사람은 남는 물을 팔아서 식량을 좀 땡겨 오고 이런 식. 
이 세계에선 약탈자들과 돌연변이가 생겨나는데, 얘네를 뚫고 갈 수 있는 게 자전거밖에 없어. 그래서 쌀집 자전거, 산악자전거 다양한 자전거 그룹이 있어. 게다가 자전거로 물류를 운반만 하는 게 아니라 싸울 줄도 알아. 모티브가 된 게 스위스에 전투부대나 1,2차 세계대전 때도 자전거 전투부대가 되게 많았거든. 어쨌든 이 웹툰은 자전거를 모는 거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디스토피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 거지.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처음엔 생존만을 위해서 이기적으로 행동하다가, 나중에 점점 이타적인 행동을 하면서 손해를 많이 봐. 근데 결국은 계속 이타적으로 했더니 조직 규모도 커지고 사람도 많아진다는 얘기야. 
  
잠시 예보가 설명하는 내용을 머릿속에 그려봤다. '석유가 사라진 세계는 어떨까?'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미래지만, 왠지 미래에 벌어질 일 같기도 했다. 내가 그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 그 세계를 상상해볼 만큼 흥미로웠다. 이미 예보는 웹툰 독자 한 명(나)를 확보한 셈이었다. 
  

<인생은 직선이 아닌, 투박한 곡선>


예보는 만화 학과를 나왔어?
아니, 영상학과를 나왔어.
  
그래? 웹툰이랑 관련 없는 영상학과는 왜?
실수로.
  
실수????
고3 때 담임선생님이 영상학과를 추천해서 들어갔어. 내가 최소한 예술 언저리에 있게끔 배려를 해준 거지. 
  
???? 그럼 고등학교는 예술 고등학교를 나왔어?
아니야. 중학교 때 만화하겠다고 난리를 쳤는데, 부모님 반대로 그냥 인문계를 갔지. 그런데 인문계를 가서도 내가 수백수천 장의 낙서를 하고 다니니까, 고3 때 선생님이 딱 알아본 거야. 대학교 원서를 쓸 때, 미대를 넣자니 입시미술을 하나도 준비 안한 상태고 해서 못 넣었고. 담임선생님이 ‘얘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다가, 내가 다닌 영상학과를 추천해줬지. 예술의 언저리니까. 언저리라기보다는, 내 꿈의 근처니까. 그래서 진짜 어이없이 갔어. 
  
그런데 가란 말에 설득이 됐어?
갔는데 재밌더라고. 영상도 엄연한 창작의 세계고, 이걸 하면서 오히려 만화에 도움 되는 것도 많이 얻은 것 같고. 영상기획과를 갔지만 그걸 창작하는 시나리오 학과 수업도 같이 섞어 들었으니 거기서 스토리를 짜는 법도 배웠지.
영상 공부를 하면서도 언젠가는 내 만화를 그려야지 했는데, 그보다는 취업 걱정이 앞서더라고. ‘어떻게 먹고 살까?’ 그래서 진짜 고민 많이 했는데, 내 주변에, 찍은 영상을 팔아서 돈을 버는 친구가 있었어. 학교 다닐 때같이 작업도 많이 했었고. 그러다 인연이 돼서 같이 작업하기로 했지. 그렇게 시작을 했고 즐겁게 1년 했었어. 괴롭기도 했지만... 영상 일을 하면서 이걸로 시장에서 어떻게 돈을 버는지를 많이 배우기도 했고. 

영상팀에서 일할 당시 예보의 모습


그럼 왜 영상을 그만두게 됐어?

그러던 찰나에 이런 생각이 들었어. 먹고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술’을 하고 싶었거든. 먹고 살 거였으면 진즉에 다른 데 취업했지. 근데 영상은 내가 일정 수준의 경지에 올라도 제약이 많아. 지금 록키(내 닉네임)랑 나랑 커피 마시는 장면 하나를 찍기 위해서, 이 카페를 빌려야 되고, 사람을 써야 되고, 과정이 되게 많잖아?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건 디스토피아 장르인데, 한국에서 영상 일을 하면서 그런 걸 찍긴 힘들어. 그래서 원래 꿈이 만화이기도 했으니까, ‘나이가 조금이라도 젊을 때 만화에 도전해보자!’라면서 나왔어. 
  
용기가 대단했다. 기존에 하던 일을 포기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건 쉽지 않다. 새로운 길은 언제나 불확실하고, 실패할 확률이 높은 길이기 때문이다. 해보고 싶은 일을 하려고 잘하는 일을 포기했다는 사실이 존경스러웠다.
  
좀 전에 부모님이 만화를 반대하셨다고 했잖아?
반대할 만했던 것 같아. 먹고살기 힘드니까. 그때만 해도 웹툰 시장이 생기기 전이었거든. 지금 내가 자료 조사를 해봐도, 출판 만화 때 만화가들은 어떻게 먹고살았나 싶어. 계약만 했다 하면은 모든 권리를 출판사에 넘기는 탓에, 작품이 아무리 유명해져도 돌아오는 게 없었어. 
부모님이 그런 사실까지 알지는 않으셨겠지만. 만화가가 삶을 꾸리는 데 좋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으셨겠지. 지금은 그 말씀을 이해해.
  
고등학교 진학 전에는 만화 시장 자체가 그리 좋지 않았다는 거지?
그렇지. 웹툰의 시작이 2000년대 후반이니까. 
  
당시 부모님은 노파심 때문에 반대하셨던 거지
그렇지. 그리고 큰아버지가 미대 교수거든. 물론 만화랑은 분야가 다르긴 하지만, 큰아버지까지 집에 와서 날 설득했을 정도니까. 아니, 전공 교수가 와서, ‘야, 너 거기 가면 망한다!’라고 하니까.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
어릴 때, 한창 유행했던 거 있잖아. ‘김충원의 그림 교실.’ 어린이들도 입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주는 교잰데, 어릴 때 거기에 꽂혔어. 그리고 어릴 때 부모님이 장난감은 잘 안 사준 편인데, 책은 많이 사주셨거든. 책을 읽으면서 그걸 그림으로 그렸지. 

여전한 그림 실력을 가진 김충원 아저씨. 최근에 마리텔에도 나왔다. -출처: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그리고 어머니가 어디서 구하셨는지 모르겠는데, 집에 갱지가 몇 만장이 쌓여있어. 그래서 계속 낙서하고 버리고 낙서하고 버리고 이랬거든. 

그러다 6학년 때, 보통은 같은 반 애들 중에 연습장에 만화 그리는 애들 있잖아? 나도 그런 과였는데. 내가 그린 거 애들한테 보여주고 요즘 말로 말하면 ‘좋아요’ 받고 좋아하고, 또다시 그리고. 그러다 보니 꿈을 키우게 된 것 같아. 
그게 딱 중학교 전까지 일이고. 하남에 있는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에 가려고, 거기 입학전형이랑 완전히 똑같은 공모전에서 동상까지 받았어. 
  
원래 그쪽에 재능이 있었네
그랬다고 내가 생각했나 봐. 그래서 만화하려고 했는데, 미대 교수님까지 와서 망할 거라고 하니깐.(쓴웃음)
  
만화학과를 못 간 게 후회는 안 돼
후회는 안 돼. 돌이켜 생각해보면, 만화만 배웠으면 창작물에 관한 좋은 교육을 받지 못했을 거 같아. 오히려 길을 돌아와서 다행이지. 그리고 가끔 웹툰을 생업으로 하시는 분들을 작업 상대로든 동료로든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면,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만화를 대학에서 배울만한 수준은 안 된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 대학에서 4년씩이나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배울만한 건 아닌 것 같다고. 
  
지인 중에서 만화학과를 간 사람이 있었다. 캐나다 국적을 가지고 캐나다에서 대학을 다니던 한인 교포인데, 만화를 그리겠다는 부푼 꿈을 갖고 한국에 왔다. 곧 그 친구는 만화를 그리러 한국에 온 걸 후회했다. 매일 대학교수가 원하는 만화를 그렸고, 매일 한강물에 뛰어들고픈 충동을 느꼈다. 결국 그 친구는 일 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다시 캐나다로 돌아갔다.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야>


어쨌든 그림 그리면서 재능이 있었다고 생각했겠네동상도 탔었으니깐.

생각했었는데, 요즘엔 웹툰 학원에 와서 피드백 받고 하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 ‘나는 만화를 그릴 줄 아는 사람이지, 재능이 특출난 사람은 아니구나.’ 그래서 노력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내가 의지가 약한 사람이라 그런 걸 하고 있어. ‘매일 의미 없는 양이라도 조금씩 그리면 버릇이 붙어서 계속하겠지.’해서 지금도 계속하고 있거든. 쉬는 날에도 한 페이지 정도는 꼭 그리고. 
그리고 요즘 바라는 게, ‘단 한 화(만화)라도 내 손에 쥐고 싶다.’는 거거든. 나중에 주인공 바뀌고 이야기가 바뀌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그거 하나 갖고 싶더라고. 그 생각하면서 올해 1월 1일을 시작했는데 8월 15일 되도록 아직 한 화도 쥐지 못했으니깐. 생각보다 진전이 느리더라고. 웹툰 학원 다녔을 때는 거기 진도 따라가느라 못하고. 근데 변명이지 뭐. 내가 열심히 해야지. 아무튼 나는 그런 티스푼의 위력을 믿어. 하루에 조금이라도 해놓으면 계속 짜증 나서라도 하게 돼있는 거 같아. 

 

배차간격이 긴, 경의선이 짜증 나서 그린 만화 -BY. 예보


그림 그리는 동안은 어떤 점이 좋아?
몰두할 수 있는 게 좋아. 그리고 ‘드디어 내가 원하는 걸 하고 있구나!’ 그런 느낌이 들 때 기분이 굉장히 좋지. 예전엔 ‘언젠간 그림 그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항상 24시간 보냈었거든. 영상 일할 때도 성과를 내놓고도 미적 지근~ 하고, 인력거 하면서도 미적 지근~ 했거든. 하지만 그림을 그리면서 얻은 성과는 온전히 나의 것이잖아. 신기한 게 영상 공모전 나가서 상 받은 적은 있어도, 그림은 한 번도 없거든. 그림 쪽은 아예 성과가 없어. 그래서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 

조급하지 않아성과가 나지 않으면?
그렇지. 조급해져있지. 기회비용도 생각이 나고. 
  
어떤 기회비용?
내가 만약에 영상 팀에 버티고 앉아 있었으면 얻었을... 걔네 올해 사무실 생겼거든. 번듯하게 일도 하고. 계속 영상팀에 남아있었다면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더 잘 되었을 거야. 어찌 되었건 고생고생해서 다들 조금씩 수익이 나아지고 있었으니까.
  
영상 팀 나온 건 후회가 되지 않아?
후회? 없진 않아. 사실 최근 사무실을 갖게 되었다는 소식에 싱숭생숭했지. 지원 사업 덕에 작은 사무실이 생겼는데, 나는 그것도 너무 부러운 거야. 애들이랑 일하면서 발생한 싸움의 한 50%가, 서로 마주 볼 공간이 없어서 커뮤니케이션을 어렵게 하다 보니 생긴 문제였거든. 뭐 하나 보여주려 해도 다 압축해서 보내야 되고, 귀찮게 왔다 갔다 하고. 그게 너무 싫은 거야. 티끌만 한 문제가 있어도, 장문으로 얘기해야 하니깐 돌겠더라고. 엄청 싸웠어 애들이랑. 그런데 지금은 공간이 생겼다는 거~
  
웹툰 쪽으로 길을 선택하면서 생긴 다른 후회는 없어?
음... 아무래도 내가 소속을 많이 바꾸다 보니까, 나처럼 소속을 여기저기 안 바꾸고 한 직장만 오래 다닌 친구들은 이미 직장 4년 차 거든. 그렇게 한 직장만 갖고 조금씩 직급이 올라간 친구들 보면 뭔가 생활이 윤택해 보이고,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고 하니. 그런 거 볼 때마다 슬슬 질투가 나기도 하고. 나는 질투가 없을 줄 알았는데 그런 게 있더라고.
  
못 가진 거에 대한 동경이 있는 거 같아.
그렇지. 스물일곱 살이 넘어가니까 지금부터 생각이 나는 것 같아. 졸업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주변에 딱히 비교 대상이 없었는데, 이젠 슬슬 주변에 결혼도 하고. 
그런데 막상 그런 사람들 만나서 얘기해보면 다 나름의 고민이 있고, 그 고민이 있는 걸 내가 가지기도 했고. 사람은 다 똑같더라고. 
  
예보의 한마디 한마디가 내 이야기 같았다. 좋아하는 걸 한다고 하지만, 주변 친구들이 나보다 잘 나가고 있을 때 샘이 났다. 안정적 직장을 갖고 결혼도 하는 친구들을 보면, 내 손에 쥐어진 게 가난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게 살아간다. 높은 꿈에 비해, 초라한 현실을 살 때 느껴지는 좌절감은 덤이다.

예보가 영상을 포기한 이유, '만화'


웹툰 작업하면서 힘든 점은 없어
나의 게으름? 온갖 유혹? 왜냐면 그 게임(댐 건설하는 게임)이 깔린 하드 드라이브에 그림 그리는 소프트웨어도 같이 있는 데다, 내 방에서 작업하니까 놀고 싶지. 제일 심각한 게, 아까 얘기한 도시 게임 있잖아? 걘 방치할 수 있거든. 걔 틀어놓고 작업하는 거야. 근데 방치하고 한다고는 하는데 방치가 잘 안돼. 왜냐면 5분만 지나도 돌발 상황이 생기거든. 댐이 무너진다거나, 태풍이 분다거나. 그래서 내가 여력이 되면, 노트북이나 미니 PC를 사서 작업 공간을 분리하고 싶어. 
그리고 내가 아파트 가장 끝 집의 끝 방이다 보니까, 아파트 외벽의 복사열을 다 받거든. 너무 더워. 단열재를 넣고 싶어도 아파트 구조상 넣을 수도 없고. 집에서 에어컨을 틀어도, 거실 온도랑 내 방 온도랑 10도나 차이 나더라고. 그래서 이번에 월급 받으면 방안을 모색해보려고.
  
그럼 웹툰 작업하면서 재미나 희열을 느낄 때는 언제야?
사람들이 재밌어할 때. 
  
아직 웹툰 개시를 안 했는데 반응은 어떻게 알아?
아, 그러니까 낙서해서 인터넷에 올린 거. 하루는 원고 그리기 너무 싫어서, 아무렇게 하나 그렸거든. 페이스북에 보면 가벼운 유머 만화 있잖아? 그걸 어떤 일러스트레이션 페이지에 올렸는데, 좋아요 1000개 받았거든.
  
어떤 거였는데?
그냥 아재개그. 새 한 마리가 심각하게 나와서, 눈을 찡그리면서 ‘안녕?’, 이래. 그다음에 ‘너 나쁜 새가 날 때 어떤 소리가 나는지 알아?’ 한 다음 나오는 효과음이 되게 웃겨.
  
뭔데
(양팔을 새처럼 푸드덕거리며) 부도덕.
  
.......(하아)

좋아요 천 개 받은 그림. by 예보


<달콤한 혹은 불안한 미래>


예보는 미래가 불안하진 않아
불안? 뭐... 웹툰이 잘 안되면 어떻게 될까...
  
생각은 해봤어?
아직 뚜렷한 계획은 없어. 그나마 갖고 있는 능력이 외국어랑, 그림 좀 그리는 거랑, 사람들 서글서글하게 대하는 거 잘 하니까 어떻게든 먹고살겠지. 그래서 외국으로 나갈까 생각 중이야. 평범한 외노자로 살아도 이 땅보단 낫지 않을까. 
  
그럼 3~5년 후엔 예보가 어떤 사람이 돼있을 거 같아?
잘 돼 있으면, 원고료로 월 200~300 정도 받으면서 열심히 내 만화 그리고 있는 사람이 돼있겠지. 안 돼 있으면, 외국어디에선가 딸기를 따고 있지 않을까.(웃음)

먼 훗날에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한 분야에서 성공하면 이슈메이커가 되잖아? 그런 것 까진 안 바라고, 그냥 작품으로 꾸준히 메시지를 내는 그런 사람.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 -출처: https://www.deviantart.com/tenaga/art/Ghibli-parade-451731294


큰 욕심은 아니네. 그러면 예보가 바라는 미래의 삶은 어떤 거야?
내 생활을 완벽하게 안정시켜놓고, 하고 싶은 것 하는 삶. 예를 들어서 내가 의식주에 관한 걱정이 없다면 무슨 미친 짓을 해도 비빌 언덕이 있잖아. 이걸 마련하는 게 꿈이야. 이게 안 되니까 불안한 거지. 그래서 내 목표가 조그만 집이라도 가지고 사는 거야. 솔직히 월세만 안 내면 고정 비용이 작잖아. 그것만 해결하고 나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고 싶어. 그렇게 하면 좀 더 대담한 시도도 할 수 있을 거 같아.
  
뭘 할 수 있을 거 같아?
조금 마이너 한 장르에도 많이 도전해볼 수 있을 거 같아. 우리나라 웹툰 쪽에서 SF나 디스토피아적 성향을 가진 작품이 많진 않아. 지금 생각나는 게 김규삼 작가의 '하이브'라는 다음 웹툰 밖에 없는데. 그런 마이너 한 장르를 그려보고 싶어.

김규삼의 '하이브'


<마치며>


내 상황이 예보의 상황과 비슷해서였을까. 왠지 모를 불안감이 느껴지는 인터뷰였다. 인터뷰 내내,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현재의 팍팍한 삶과 불안한 미래. 그 이야기를 나눌 땐 땅을 파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불안감을 숨김없이 보여주는, 용기 있는 예보의 모습이 좋았다. 많은 유명인이 '네 멋대로 해.', '꿈을 좇아.'라고 말하지만, 그 삶이 주는 불안감과 세상에서 오는 압박감, 등등. 현실적인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다. 지나간 고통스러운 이야기가 아름다운 과거로 포장이 돼버리는 까닭일까? 
다만 내가 기억하는 건, 녹록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빛나던 예보의 눈빛이다. 예보는 현실 이야기에 차분하게 얘기하다가도, 만화 이야기만 하면 눈을 반짝였다. 목표가 없는 샌드박스 게임을 좋아하는 예보. 하지만 만화에서만큼만은 달랐다. 예보는 만화를 그리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걸 위해 영상 일을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생계 때문에 작업 속도가 느려졌지만, 중요한 건 펜대를 계속 잡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나는 인터뷰에서 예보의 만화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었다. 



                                                                             너의 첫 독자가 될게. 빨리 웹툰이 연재되길 바라.

                                                                                                                            2018.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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