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록키 Sep 12. 2018

024. 좋아하는 일을 꼭 본업으로 삼아야 하나요?

손님: 사진사 1명


L7 호텔에서 인력거 관련해서 홍보 사진을 찍을 때였다. 내가 사진사를 싣고 다른 인력거꾼이 여자 모델을 실었다. 


이런 방식으로 촬영이 진행됐다. 그림은 못 그려서 죄송합니다.
그 결과물 중 하나. -출처: L7 호텔 명동


모델은 사진이 찍히는 걸 즐겼다. 카메라에 찍히는 걸 의식하며 다양한 포즈를 취했다. 자신감 있게 렌즈를 바라보는 모습이 신기했다. 나처럼 카메라 렌즈만 보이면 똥 마려운 개 같은 표정 짓는 사람이랑 달랐다. 나랑 상반된 사람이었다.

사실 그보다 더 신기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내가 실었던 사진사였다. 내가 실은 사람이 사진사이다 보니, 모델보다는 사진사를 더 유심히 지켜봤다. 사진사는 나에게 다양한 걸 요구했다. "저 인력거에 가까이 붙어주세요. 좀 더 멀리. 이번엔 뒤로 가주세요. 다시 앞으로." 그리고 사진사는 인력거 위에서 몸을 요리조리 틀어가며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인력거에 비스듬히 매달려 아슬아슬하게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사진을 찍다 보면 쉬는 시간에 휴식을 취할 법도 한데 그러지 않았다. 카페에서 쉴 때도 인력거 홍보와 전혀 상관없는 사진을 계속 찍어댔다. 한옥이나 카페를 향해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렀다. 그걸 보면서 사진사가 얼마나 그 일을 즐기는지 알 수 있었다. 

사진사가 찍은 사진들. -출처: L7 호텔 명동


나는 그 모습이 재밌어서 사진사에게 자주 말을 걸었다. 사진사는 셔터만 잘 누를 줄 알았는데 말도 잘했다. 사진을 찍을 땐 일한단 생각이 안 들다느니, 놀면서 사진을 찍는 느낌이라느니, 사진에 찍힌 사람들이 잘 나오면 좋아하니 보람도 있다느니. 자신의 일을 좋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던 말은 이것이었다.

"굳이 이걸 본업으로 삼아야 하나요?"
본인은 사진 말고도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쪽 바닥엔 자기 말고도 사진사가 부업인 사람이 많다고 했다. 요리사, 회사원, 등등 사진만 하는 사람이 드물다고 했다.

사진사가 사진을 찍느라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다. 왜 좋아하는 일을 주업으로 삼지 않는지, 다른 일은 어떤 일을 하는지, 등등의 질문은 하지 못했다. 경제적인 이유인지 심적인 이유인지 그저 추측만 할 뿐이다. 아마 좋아하는 일로 충분히 돈을 번다면, 주업으로 삼지 못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사진사분도 돈이 넉넉하지 않으니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난 이거 아니면 안 돼. 이걸로만 먹고살아야 돼.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던 순간이 생각났다. 오로지 글만 쓰겠다고 다른 일을 그만두고 소설만 썼던 순간이 있었다. 에세이만 썼던 순간이 있었다. 경제적인 활동 없이 글만 쓰면서 골방과 카페를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 심적인 이유로 실패했다. 돈이 부족했고, 하나에만 매진하는 데서 느낀 부담감이 너무 컸다. 그 순간이 후회가 되는 건 아니다. 그 순간 내가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에 매진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대신 그 순간을 거치며 '하나만 해야지.' '한 우물만 파야지.'라는 생각이 많이 사라졌다. 하나에만 매진하면 그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실력이 좋다고 성공하는 건 아니다. 가수가 노래만 잘한다고 해서 뜨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리 노래를 잘 불러도 무명인 가수들이 허다하다. 
그런 경우 불안감이 가중된다. 자신이 몰두하는 일이 운이 따르지 않든, 자신의 실력 때문이든,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사람은 성취가 없이는 살 수 없는 법이다. 인정을 받지 못하거나, 자신이 땀을 흘린 보상을 얻지 못하면 거기서 오는 좌절감이 크다. 내가 글을 쓸 때도 그랬다. 글이 잘 안됐을 경우에 글 말고 성취를 느낄 방법이 없었다. 월급날에 자신이 흘린 땀방울을 보상받거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경험이 없으니 자신감이 떨어졌다. 그리고 빨리 성취를 얻고 싶으니 더 조급해졌다. 그러나 '급할수록 돌아가라.'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이 급하면 일을 그르치기 마련이다. 글 쓰는 시간이 부족하면 나에게 채찍질을 했고,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면 스스로를 열등한 피조물로 여겼다. 그렇게 '작업'은 점점 내가 행복하기 보다 내가 혐오하는 일로 변해갔다.
그렇기 때문에 한 우물만 우직하게 파는 것도 좋지만, 다른 일을 함께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글만 쓰고 있었다면 조급증에 아사했거나 성취를 느끼지 못해 우울감에 허덕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인력거를 몰면서 손님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거기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는다. 그리고 손님들과 나눴던 이야기를 글로 쓴다. 번 돈으로 좋아하는 걸 먹고, 사람들을 만나는 데 사용한다. 글만 썼다면 절대 경험하지 못할 것들을 하고 있다.


내가 계속 골방에 있으면서 글만 썼다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 운이 좋아 글만 쓰며 먹고사는 작가가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만 생각하면 계속 우울감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과연 한 문제와 씨름하면 문제가 잘 풀릴까? 아니면 그 상황에서 벗어나 바람을 쐬는 게 더 도움이 될까? 

다만 알 수 있는 건, 사진사는 사진을 찍는 순간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사진이 부업이란 것. 많은 사진사들이 사진을 부업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걸 보면서 나는 이 길에서 조금 더 힘을 빼기로 했다. 글을 쓰는 가운데 다른 경험할 거리가 생긴다면 기꺼이 그곳에 몸을 던지기로 했다. 돈을 더 벌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 열심히 일하기로 했다. 행복하기 위해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취감을 얻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단 걸 깨닫게 됐다. 

그리고 다른 일을 하면서 내 이야기가 조금 더 풍성해지는 걸 느꼈다. 예전에 내가 썼던 글을 훑어보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야기에 머물렀다. 내가 할 얘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겪은 이야기를 풀고 있다. 조금 더 현실적이 되고 조금 더 세상과 가까워졌다. 

여전히 글 쓰는 건 쉽지 않지만, 예전보다 무엇을 쓸지 고민하는 순간은 점점 짧아진다. 나는 나에게 일어난 긍정적인 변화를 믿기로 했다. 그리고 날 바꿔주는 긍정적인 변화가 도처에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023. 서비스는 손님하기 나름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