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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록키 Sep 15. 2018

025. 내가 중국인으로 보이니?

손님: 젊은 여자 2명


인력거에 중국어를 쓰는 기자 두 명이 올라탔다. 보통 기자라 하면 커다란 카메라를 끼고 다니는 모습이 떠오르는데, 이 둘은 핸드폰을 셀카봉에 끼고 다녔다. 젊은 기자들이라 그런지 신문물을 많이 이용하는가 싶었다. 이들은 인력거에 앉자마자 즈보어(直播: 실시간 방송)를 진행했다. 생애 최초로 인터넷 방송을 하는 모습을 직관할 수 있었다. 

방송을 진행하는 여기자는 쉴 새 없이 말했다. 채팅을 치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실시간 방송을 진행했다. 
"인력거 위에서 풍경을 보면서 편하게 여행할 수 있어요."
"어퐈(오빠)가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인력거. 3만 원이면 이용할 수 있어요."
"어퐈도 쫑원(中文:중국어)으로 말할 줄 알아요. 궁금한 게 있으면 지금 물어보세요. 쫑원으로 대답해줄 거예요."
방송하는 내내 어설픈 한국어로 어퐈 어퐈 하면서, 계속 날 오빠라고 부르는 모습이 싫진 않았다. 한편으로는 2만 명이나 날 보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인력거를 끄는 풍경이 바다 건너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진다는 사실이 뿌듯하기도 했다. 
시청 인원을 부풀려 말한 건진 알 수 없었다. 아침 11시(중국은 아침 10시)부터 시청 인원이 2만 명이나 된다는 말이 믿기진 않았지만, 중국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인구는 5천만 뿐이지만 중국은 13억이 넘으니깐. 

중국 인터넷방송 또우위 시청자 수. 283만 명이 넘는 데도 있다. -2018-9-15 12:20pm 기준
한국 아프리카TV 시청자 수. 5315명이 최대 시청자수. -2018-9-15 12:20pm 기준


분위기는 투어 내내 좋았다. 나는 중국어로 성심성의껏 대답했고, 방송하는 친구들은 나를 오빠라 부르며 훈훈한 분위기가 계속됐다. 시청하는 사람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내가 딱 한마디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때는 방송을 종료하기 바로 전이었다. 기자는 나에게 마지막으로 딱 한 마디만 해달라고 했다. 그때 나는 천진난만하게 이렇게 말했다.
"저 중국에서 유학했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기자와 눈이 마주쳤다. 날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뭘 잘못했지?'라고 생각하는 찰나, 기자는 입모양으로 '타이완(대만)'이라 오물거렸다. 그걸 보자 나는 바로 말을 바꿨다.
"저 조만간 대만으로 여행 갈 거예요!"
덕분에 대만인 기자는 내 말을 얼버무리느라 방송을 더 길게 붙잡고 있어야 했다. 

그날 이후로 대만인 손님을 태우면서 똑같은 실수를 더이상 되풀이 하지 않았다. 손님들이 중국어로 말해도 함부로 중국인이라 판단하는 게 조심스러웠다. 사람들은 그게 뭐가 문제냐고 말할 수도 있다. 중국어 쓰는 나라끼리 똑같은 거 아니냐고. 원래는 한 나라였지 않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안일하게 생각하면 대만 사람들의 심기를 건들 수 있다. 대만 사람들은 이에 대해 굉장히 신경 쓴다. 오죽하면 대만 사람들을 열받게 하는 말이 차이나 넘버원. 중국 사람들을 열받게 하는 말이 타이완 넘버원이겠는가?

https://youtu.be/vv1Xj52Nr9A

인력거꾼 '권'이 대만인을 태운 동영상


위 영상 3분 42초를 보면, 인력거꾼이 Chinese(중국인) 얘기를 계속 꺼내자 대만 사람이 표정이 굳으며 타이완(대만)을 강조하는 걸 볼 수 있다. 대만 사람들이 얼마나 이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알 수 있다. 
한 예로, 트와이스의 멤버, 쯔위가 대만 국기를 들었다가 중국인들이 JYP 불매운동을 펼쳤을 정도로 대만과 중국 간의 문제는 심각하다. 내가 중국에 있을 때 중국인 택시기사와 대만인 손님이 말싸움을 하는 경우도 간간이 목격했다.


문제의 마리텔  사진


악의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다면 이 부분에 대해선 신경을 쓰는 게 좋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관계없이, 대만 사람들을 대할 때는 조금 다르게 대하는 게 좋다. 중국어를 쓰는 사람을 만나면 '중국인이냐?'라고 묻기보단 어디에서 왔냐를 먼저 물어보는 것이 좋다. 우리에겐 초등학교 때부터 배웠던 기본 회화가 있지 않은가?

웨얼 알유 프롬?


이렇게 물으면 대만 사람들은 "타이완"이라 대답할 것이다. 여기서 대만인들의 호감을 사고 싶다면 '오, taiwanese(대만 사람)?', '타이완런마?(대만인이야?)'라고 되물어주는 것도 좋다. 괜히 어쭙잖게 배운 중국어를 써보겠다고 '쭝궈런마?(중국인이야?)'라고 물었다간 대만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다. 

내가 2만 명의 대만인 시청자 앞에서 실수를 범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다. 사실은... 그 이유가 맞다. 더 이상 한국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실수를 범하질 않길 바란다.  그렇다고 중국인들에게 '알 유 타이와니스?(너 대만인이야?)' '니쓰 타이완런마?(너 대만인이냐?)'라고 하는 우를 범하지 말길 바란다. 13억 인구를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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