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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록키 Sep 29. 2018

026. 사진작가가 사진을 찍지 않는 이유는?

손님: 중년부부(특이사항: 한 명이 사진작가)


사진작가예요.


인력거에 올라탄 손님은 '대포 카메라(?)'를 든 손님이었다. 렌즈가 크고 카메라도 커서 타자마자 내 눈을 사로잡았다. 역시나 직업은 사진작가. 겉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카메라를, 사진과 관련 없는 사람이 들고 다닐 리 없었다. 맞춤 서비스를 좋아하는 나는 사진 찍기 좋은 공간으로만 손님을 모셨다. 

손님은 좋아했다. 사실 가을 풍경이 열일하고 있어서 내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인력거에서 풍경만 보여줘도 사람들은 좋아했다. 2017년 가을, 은행과 단풍이 흐드러지게 핀 경치였기 때문이다. 

청와대로 가는 길. -인력거꾼 '마린'이 찍은 사진
흔한 삼청동 풍경. -인력거꾼 '온'이 찍은 사진


근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출발할 때만 잠깐 셔터 소리가 들리더니 그 후론 카메라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폴더폰 카메라로 찍어도 예쁘게 나올만한 풍경이었는데, 대포 카메라는 휴업 중이었다. 신경 써서 사진 찍기 좋은 곳만 소개해드렸는데 셔터 소리 한 번 들리지 않았다. 그저 사진 기사는 귀를 기울여 내 설명을 듣고, 눈을 돌려 풍경을 즐겼다.
"사진은 많이 찍으셨나요?"
2시간짜리 인력거 투어가 끝나고 내가 사진작가에게 물었다. 그러자 사진작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뇨. 안 찍었어요."
"왜 안 찍으셨어요?"
"그냥 이 분위기를 즐기고 싶어서 안 찍었어요. 제가 사진작가긴 하지만 항상 셔터를 누르는 건 아니에요."
멋있었다. 고수가 자신의 실력을 숨기는 느낌이라고 할까?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 아무 데나 주먹을 내지 않는 것 같았다. 만약 잔망스럽게 사진을 찰칵찰칵 찍었더라면 그저 그런 사진가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사진을 아끼는 모습이 더 고급 져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도 멋있었지만 사진가가 풍경을 대하는 자세가 더 멋있었다. 그 풍경을 렌즈에 담기보다 눈에 담으려는 모습이. 사진가는 인력거 위 풍경을 온전히 즐기다 갔다.

나는 가끔 강박적으로 사진을 찍을 때가 있다. 예쁜 풍경을 보거나 콘서트에 갔을 때, 조금 특별한 경험을 할 때 그렇다. 그럴 땐 사진을 찍어 저장공간에 영원히 소장하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하지만 그렇게 사진을 찍고 나면 정작 그 사진을 살펴보는 일은 거의 없다. 단순히 핸드폰 공간을 잡아먹는 애물단지로 전락한다. 
얼마 전, 하늘이 예뻐서 사진을 찍고 싶었다. 평생 소장하고 싶은 욕구도 있었고, 남들에게 자랑도 하고 싶었고,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도 올리고 싶었다. 그래서 마음에 들 때까지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사진을 찍고, 잘 나온 사진을 골라 프로필 사진으로 바꾸고, 친구들에게 사진을 전송을 하고 나니, 하늘은 사진 찍을 때보다 볼품없는 색으로 변해있었다. 좋은 풍경은 이미 지나버린 후였다. 

하늘을 담겠다고 유난 떨던 날. 이때 뭘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사진을 꺼내본 적도 없다.


'여기에 어울리는 노래를 들어볼까.',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같이 이 풍경을 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감성적인 생각은 하지도 못했고, 휴대폰 스크린에 보이는 풍경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카메라를 들면서 그 순간이 흩어져 버린 것이다. 나의 감상평은 쏙 빠진 채 객관적인 사진만 남았다. 독후감도 감상평이 빠지면 속빈 강정인데, 이 사진에도 내 감상평이 빠져 있었다. 단지 내가 그날 느낀 점은, "하늘이 예뻤다!" 뿐이었다. 

만약 내가 그 순간을 온전히 즐겼다면 풍경에 어울리는 노래를 듣고, 여자친구가 없는 외로움을 온몸으로 느끼거나, 앞으로 올 미래를 생각하며 감상에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사진을 찍는 순간 그 기회는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내가 평생 소장할 사진을 얻었다는 안도감만 남았는데, 오히려 그 사실이  아름다운 하늘을 값싸게 만들었다. 풍경을 사진첩 폴더에 소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순간에 대한 소중함을 잃었다. 사진으로 나중에 확인할 수 있으니까 그 순간이 귀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풍경을 영영 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면 오감이 모두 발동했을 것이다. 그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인생도 오늘이 마지막이라 하면 마지막 날을 기억하려 애를 쓸 것처럼. 
카메라 기술은 점점 좋아지고 세상을 더 원본에 가깝게 남길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나는 가끔 영원을 소유한 것처럼 착각할 때가 많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사진을 찍고, 콘서트에서 동영상을 촬영한다. 순간을 영원히 소장하려 애쓴다. 하지만 그 순간을 잡으려고 애써도, 그때 느낄 수 있는 감정과 기억까지 핸드폰에 소장할 순 없었다. 기계는 객관적이고 감정은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력거에 탄 사진작가는 카메라를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 
아, 설마 내 인력거가 재미없어서 그랬던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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