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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록키 Oct 02. 2018

028. 말 좀 씹지 마세요

손님: 중년 여자 2명


난 인력거를 끌 때 손님을 좀 귀찮게 하는 스타일이다. 내 이야기를 잘 듣고 있나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손님이 이야기를 하게끔 유도하기도 한다. 일방적으로 내 얘길 하는 것보단 서로 대화하는 게 더 재밌어서다. 대부분 사람들은 잘 대답해준다. 인력거에 타면 여행을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손님들은 속 깊은 얘기까지도 선뜻 나누는 편이다. 그런데 하루는 마음의 문이 꼭 닫힌 손님을 태웠다. 이 이야기는 인력거에 탄 내내 내 말을 무시하던 손님 이야기다. 
중년 여자 두 분이 인력거에 올라탔다. 한 여자분은 서글서글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그런데 문제는 동행했던 다른 여자분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록키예요."
내 인사에 그 여자분은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인증샷을 찍느라 바빴다. 인사를 했는데 상대방이 못 봤을 때 느껴지는 뻘쭘함은 다들 알 것이다. 나는 머쓱해져서 각설하고 페달을 밟았다. 내 인사를 못 들었겠거니 싶어서 그땐 그냥 웃어넘겼다. 그런데 투어를 진행하다 보니 여자분이 고의로 내 인사를 무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사를 무시한 건 시작에 불과했다. 인력거로 투어하는 내내, 내 이야기를 무시했다. 내가 북촌에 얽혀 있는 이야기를 간단히 설명하곤 
"이제 북촌이 뭔지 조금 아시겠죠?"
라고 그 여자분에게 물어보자 여자분은 눈을 피하면서 입을 꼭 다물었다. 그러자 난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어라? 내 말을 씹어?', '내 말이 말 같지 않나?'



그 후로도 몇 번을 물어봤지만 그 여자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아니! 모르면 모른다고, 맞으면 맞다고 대답이라도 하지. 말하기 싫으면 말을 걸지 말라고 할 것이지. 마치 내가 마차를 끄는 말이 된 것 같았다. 이 사람은 날 수레를 끄는 말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대화는 필요 없고 내 다리 힘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는 데 모욕감을 느꼈다.
덕분에 다른 여자분은 계속 피해를 봤다. 왜냐면 내가 화가 나서 묵언수행을 했고, 좋은 경치는 쏙 빼고 재미없는 풍경만 보여줬기 때문이다. 북촌의 매력을 100%라 친다면 그중에 20%도 보여주지 않았다. 


두 여성분이 놓친 풍경 1. -인력거꾼 빠이의 작품
두 여성분이 놓친 풍경 2. -인력거꾼 빠이의 작품
두 여성분이 놓친 풍경 3. -인력거꾼 빠이의 작품


'내가 못생겼나? 내가 맘에 안 들었나? 내가 뭘 잘못했나? 인력거 타기 싫은데 강제로 끌려왔나? ' 

머릿속에 풀리지 않는 의문을 풀다 보니 1시간이 지났다. 좋은 손님을 태우면 예정 시간보다 10분에서 20분을 더 태워주기도 하는데, 이번 투어는 정확하게 1시간 만에 끝났다. 곤욕스럽던 투어가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그런데 손님들이 인력거에서 내리고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여태 입을 다물고 있던 여자가 날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리곤 만 원짜리 팁을 건네는 것이었다.
'이건 무슨 상황이야?'
예상치도 못했던 사람에게 팁을 받으니 어안이 벙벙했다. 팁은 대게 쿵짝이 잘 맞았던 손님들이 많이 주기 때문이다. 그때 다른 여자분이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근처에 만두가 맛있는 집이 있나요?"
그래서 내가 자주 가는 만둣집 하나를 추천했다.
"감사합니다."
여자분은 고맙다는 말 뒤에 '이렇게' 덧붙였다.
"이 분이 중국에서 오신 분이라 만두를 좋아하실 거 같아서 지금 모셔가 보려고요."

워 쓰 쭝궈런.(나는 중국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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