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씨앗처럼
며칠째 계속된 한파로 몸도 마음도 꽁꽁 얼어붙었다. 지난주 15일 시계는 오후 2시를 향해 숨 가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정지된듯한 시간의 흐름이 숨을 쉬는 것조차도 힘들게 했다. 오후 2시가 막 지날 즈음 전화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딸아, 어떻게 됐니?”
아무 대답이 없다.
수화기를 통해 들리는 건, 가녀린 흐느낌, 흑흑흑......
“어떻게 됐어? 안됐어도 괜찮아......”
다음 말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머리가 하얗게 포맷된 느낌이다.
그때 떨리는 목소리가 들여왔다.
“나 합격했어요!”
지난 일 년 동안 힘겹게 준비해왔던 로스쿨 시험에 최종 합격 한 것이다.
딸의 어린 시절 꿈은 변호사가 되는 것이었다. 대학 4학년이 된 지금까지 그 꿈이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아이들의 꿈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변한다. 그런데 큰애의 꿈은 변하지 않았다. 거북이처럼 천천히 꿈을 향해 나아갔다. 리트시험에서 만족할 만한 점수를 얻지 못했지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마지막 면접까지 완주했었다. 힘들고 외로운 길이었지만 꿋꿋하게 견디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꿈은 작은 씨앗과 같다. 씨앗 속에는 미래가 담겨 있다. 아직 어두운 껍질 속에 감추고 드러나 있지 않지만 그 안에는 새로운 미래가 담겨 있는 것이다. 씨앗은 작지만 땅에 떨어져 싹이 나면 거침없이 커지고 확장된다.
씨앗은 싹이 움트기까지 기다림이 필요하다. 기다리면 자라고 커진다. 마치 여인이 아이를 잉태한 것과 같다. 기다리는 동안 산모는 입덧도 하고 점점 몸이 무거워져 움직이는 것도 힘들고 불편해진다. 그럼에도 출산을 위해서는 10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태아는 산모의 몸에서 탯줄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으며 서서히 자라고 커진다. 기다리면서 온전하게 준비되는 것이다.
나무도 그렇다. 겨울이 되면 나무들은 잎사귀를 다 떨구고 뿌리를 돌보며 봄을 기다린다. 뿌리는 차가운 겨울에 더 힘 있게 땅속으로 뻗어들어간다. 그리고 봄이 되었을 때 겨우내 비축했던 힘을 가지에 보내 싹이 돋게 하고 꽃을 피우게 한다. 기다릴 때 필요한 것이 힘이다. 힘이 있는 사람만이 기다리며 꿈을 키우고 싹이 움틀 수 있도록 뿌리를 내린다. 기다릴 때 경계해야 할 것은 조급증이다. 씨앗을 심고 기다리지 못하고 흙을 파헤친다면 씨앗은 죽고 말 것이다.
영국의 뉴캐슬 지방의 가난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난 조지 스티븐슨이라는 사람이 있다. 스티븐슨은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8세 때부터 탄광에 나가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 워터로 탄광에 화부로 취직되었고 얼마 가지 않아 기관사가 되었다. 그의 나이 19세가 되었을 때 비로소 글을 깨치게 되었고 그때부터 기관과 동력장치에 대해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동료들이 일을 마치고 술집으로 몰려가는 시간에도 혼자 집으로 가서 기관차 연구에 몰두했다. 그의 마음속에 새로운 기관을 만들고픈 꿈이 생겼기 때문이다.
스티븐슨이 기관차를 만들기 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기관차를 연구하고 제작했지만 실용화에 이르지는 못했다. 제임스 와트 역시 증기 기관을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췄기에 더 이상 발전된 기관을 만들지는 못했다.
그런데 스티븐슨은 이전 기관들보다 훨씬 탁월한 새로운 기관을 만들기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그리고 스퍼 기어(톱과 톱니가 나란히 절삭되어 있는 톱니바퀴)를 통해 동력을 바퀴에 직접 전달하는 전혀 새로운 방식의 기관차를 만들었다. 기관차의 이름을 ‘블러처’라 명명하고 성능 실험에 돌입했다. 30톤의 화물을 실은 8량의 화물차를 시속 6.5km로 끄는 데 성공했다. 스티븐슨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연구를 거듭해서 1829년에는 최대 속도 47킬로미터 평균 시속 24킬로미터의 로켓호를 만들어 냈다. 당시로서는 꿈의 기관차였다.
우리 사회의 최고 문제는 조급증이다.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기다리지 못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기다림은 새싹을 움트게 하고 길을 열어준다. 기다리는 동안 일상의 삶을 살면서 꽃을 피우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 기다리는 동안 실력을 키워야 꿈이 현실이 되고 새로운 미래가 열리게 된다.
겨울이 되면 나무들은 잎사귀를 다 떨구고 뿌리를 돌보며 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