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케 하는 힘
어제 밤부터 잠들었던 땅을 깨우는 봄비가 내렸다. 물을 머금은 나무들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라왔다. 봄이 오면 겨울을 견딘 나무들이 성장을 시작한다. 몸통이 굵어지고 가지들은 멈춤을 잊은 고장 난 자동차처럼 하늘을 향해 손을 쳐든다.
나무를 성장하게 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봄에 내리는 단비일 수도 있고 여름날 뜨거운 햇볕 일수도 있다. 그러나 더 근원적인 힘은 길고 긴 겨울날의 추위일 것이다. 나무는 겨울이 되면 모든 활동을 멈추고 뿌리를 가꾸고 돌보는 일을 시작한다. 온 몸에 가해지는 고통을 견디며 더 깊은 땅속으로 뿌리를 뻗친다.
며칠 전 아내가 1년 가까이 인도해 왔던 독서토론 모임이 해체되었다. 원인은 책을 읽는 것이 힘들고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어찌 핑계 없는 무덤이 있으랴! 많이 안타까웠다. 아내는 독서모임에 참여한 어떤 사람보다도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모임을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 가며 헌신한 것이었는데......
성장케 하는 것들은 언제나 고통을 동반할 때가 많다. 친구들을 만나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웃고 떠드는 일들은 당장에는 행복을 주고 기쁨을 주는 것 같지만 미래의 삶을 개선시킨다든지 더 큰 성장을 도와줄 수는 없다.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힘은 지금 당장 하기 싫고 힘든 일들이다. 책을 읽는 것이 힘들어도 분초를 아끼며 읽다보면 지식이 쌓이고 지혜가 자라게 된다. 당장은 표시가 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생각이 깊어지고 사용하는 언어가 고운 색을 띄게 된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더 큰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힘든 일들은 잘못된 힘을 빼도록 도와준다. 힘은 소중하고 귀하지만 잘못 사용하게 되면 자신을 파괴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미투(Me too)’ 운동이 불길처럼 번져가고 있다. 잘못된 힘을 휘둘렀던 많은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고위직에서 물러났다.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였던 분도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무슨 일이든지 잘못된 힘이 들어가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 운동선수들도 시합을 할 때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으면 기대했던 성적을 거둘 수 없다.
힘든 일들은 우리의 삶을 느리게 한다. 사람들은 빠른 것을 좋아하지만 인생의 모든 문제들은 느림에서 생긴 것이 아니고 빠른 것들로 인해서 생긴다. 느림은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생명을 살리고 생명이 왕성하게 활동하게 한다.
인도의 성자로 알려진 선다 싱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힌두교도였던 그가 기독교인이 된 것은 기독교 학교를 다니며 예수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어느 날 복음을 전하기 위해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가고 있었다. 눈보라가 어찌나 거세게 휘몰아치는지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이 동행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밤이 되기 전에 산맥을 넘기 위해 길을 서두르고 있었다. 산 중턱쯤에 다다랐을 쯤 한 행인이 눈 속에 파묻혀 있었다. 그 사람은 추위 속에 쓰러져 죽어 가고 있었다. 선다 싱이 함께 동행하던 사람에게 말했다. “이 사람을 여기에 두고 가면 얼어 죽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함께 업고 산을 내려갑시다.” 그러자 동행하던 사람이 말했다. “난 못하겠소, 이렇게 거센 눈보라 속에서 혼자 살아남기도 어려울 텐데 누구를 업고 갈 수 있겠소!” 그리고는 종종 걸음으로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선다 싱은 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등에 업고 천천히 산을 내려왔다. 영하 20도가 넘는 혹한의 추위가 그를 방해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따뜻해지더니 급기야 땀이 나기 시작했다. 추위로 죽어가던 사람도 온기를 회복했는지 의식이 돌아왔다. 그렇게 몇 시간을 가다보니 눈 더미 속에 또 다른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다가가 살펴보니 이미 동사한 상태였고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앞서 홀로 떠나버린 동행자였다. 혼자 살기위해 바쁘게 산을 내려갔던 그 사람은 추위 속에 얼어 죽고 만 것이다.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울 일이 서로를 살린 것이다. 나를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이나 일들이 나를 키우고 성장시킨다.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힘은 지금 당장 하기 싫고 힘든 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