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바도기아
여행은 항상 설레임과 함께 시작된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인천공항 출국장을 지나 이스탄불로 향하는 터기항공 TK091편에 몸을 실었다. 이스탄불을 경유해 카이세리 공항까지는 14시간이 소요되었다. 밤새 비행기 안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해서 그런지 갑바도기아를 향해 가는 버스 안에서 자꾸 하품이 나온다. 1시간가량 이동해 도착한 곳은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땅, 아름다운 말들의 땅이라고 이름 붙은 갑바도기아였다.
갑바도기아는 사도행전 2장9절에 그리고 베드로 전서 1장1절에 언급되어 있다.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갑바도기아는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 동북쪽으로 약 32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소아시아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수 만 년 전 에르시예스산(3916m)에서 화산이 폭발해 용암과 화산재가 두껍게 쌓여 굳어져 갔다. 그 후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몇 차례의 지진과 큰 홍수 그리고 풍화작용을 거치면서 아름다운 기암괴석들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화산재가 굳어 만들어진 응회암은 큰 힘을 들이지 않고 굴을 팔 수 있다.
기원전 18세기에 히타이트인들이 이곳에 정착한 이후, 페르시아, 로마, 비잔틴,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차례로 이곳을 점령했고 로마와 비잔틴 시대에는 기독교인들의 망명지가 되었다. 이곳에는 핍박을 피해 숨어 살았던 기독교인들의 애환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특히 이곳에 있는 지하도시 데린쿠유는 터키어로 ‘깊은 우물이란 뜻이다.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발견되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은 1963년에 발견되었는데 지하 8층에 깊이는 55미터에 달하며 거주 인구는 약 2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내부에는 가축의 우리를 비롯해서 부엌, 곡식창고, 교회 등이 있다. 실제 규모는 지하 20층이나 지하 8층까지만 공개하고 있다. 데린쿠유에는 52개가 넘는 공기 환풍구가 있고 가장 밑 부분에는 우물이 있다. 또한 각층은 독립적으로 구별되어 있고 외부의 적들을 피해 달아날 수 있도록 긴 터널을 파서 다른 지하도시와 연결되어 있으며 길이가 7km나 된다고 한다. 이 지하도시는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하기 위해 건설하게 된 것이다.
핍박을 피해 찾아온 기독교인들이 늘어날수록 더 크고 넓은 공간이 필요하게 되자 옆으로 지하로 계속 파들어 가 복잡한 미로를 형성하고 있다. 지하도시 안에는 농사를 지은 곡식들을 보관하고, 포도주를 저장해 두었던 흔적들이 있다. 또한 주거지로 생활했던 방들과 학교 그리고 지하 공동묘지가지 갖추고 있었다. 이 지하도시에 없는 것이 딱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화장실이란다.
밤샘 비행에 하루 종일 버스로 갑바도기아 전역을 돌다 보니 머리도 띵하고 마치 하늘 위를 걷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