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여자로서의 시간을 선물
담당자와 미팅을 거치면서 업무 범위를 정하고, 계약서 쓰고, 계산서 발행하고 본격적으로 일이 시작해야 했다.
모집 이벤트를 열기 위해서 메이크오버 예시가 필요했다.
머릿속에서 스친 두 명은 우리 그레이아이콘 이정우 님의 사모님 천정미 선생님. 그리고 우리 이모 안영숙 씨였다.
큰 이유가 있었다기보다는 해드리고 싶었고, 하면 잘 나올 것 같았다.
천정미 선생님은 더뉴그레이 메이크오버 서비스에 이어서 우리가 준비 중인 시니어 핵인싸 조직(?)
그레이 아이콘의 대표 모델 중 한 분인 이정우 선생님의 부인이시다. (인연의 계기는 다음에 다시 설명)
두 분이 이미 단역이긴 하지만 tvcf에도 참여하신 적이 있기도 했고, 부부 시니어 모델로서 아이덴티티를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또 부부에게 무엇이라도 좋은 경험과 기회를 드리고 싶었다.
소공동 우리 바버샵에서 지인에게 부탁해 메이크업을 하고, 명동 준오헤어로 이동해서 헤어를 했다.
수줍은 미소가 얼굴에 퍼지기 시작했다.
하고 나와 시간이 조금 남아 간단하게 식사를 하려고 했지만 우리.. 이정우 선생님께서 밥을 먹어야 한다며
입술 예쁘게 칠한 숙녀를 모시고 김치찌개 집을 갔다.(분위기상 갔지만.. 정우 선생님..ㅎㅎ 이러시고 집에 가서 혼나셨을 듯) 천정미 씨는 사진에 더 예쁘게 나오면 좋겠다면서 입술도 지워지면 안 되고, 배도 나오면 안 되니
안 드시겠다 하셨다. 쏘 프로페셔널..
도산공원을 시작으로 압구정 로데오 일대를 걸으며 모습을 하나하나 담았다.
처음엔 어색해하셨지만 재능이 있어 보였다. 중간중간 진짜 모델의 포즈가 나왔다.
사진을 찍다 보면 느끼는 데 억지로 포즈를 예쁘게 멋지게 잡는 다고 모델 느낌 나는 게 아니라,
그게 몸에서 터져 나오는 분들이 계신데 사모님이 그랬다.
광고주에게 제공할 만한 사진을 마무리하고 이어서 이정우 선생님과 같이 있는 모습을 담았다.
당일 압구정에서 이정우 선생님도 패션 콘텐츠 작업이 있어서 같은 날로 크로커다일 프로젝트도 잡았다. (언제나 효율을 최고 가치로 따지는.. 권 사장)
나에게는 비즈니스적으로 의미가 있는 콘텐츠가 될 것이고, 두 분에게는 예전의 청춘을 선물하는 시간, 새로운 추억을 쌓는 시간이 되었으면 했다.
강아지 많이 힘들지? 부담감과 책임감에 절어있는 하지만 담담한 척하는 조카를 한 번씩 감정적으로 무너뜨리는 , 울게 만드는 이모 안영숙 씨
사전 모델 두 번째로 이모를 골랐다. 선물하고 싶어서.
누나 찬스로 집에서 화장을 하고, 응암역 이마트 근처 헤어숍을 예약해서 스타일링을 했다.
"이뻐?" , "현아야 엄마 이쁘냐?", "범주 아줌마 나 이쁘지? 하며 이모는 내내 들떠있었다. 처음 보는 이모의 모습이었다. 소녀가 된 듯했다. 이때부터 난 속으로 울면서 사진을 찍었다.
요즘 웃는 날이 없었는 데 오랜만에 활짝 웃는다 했다. 세상 무뚝뚝한 이모부는 사진 찍으려면 얼굴 부으면 안 되니까 일찍 자라 하셨다 한다. 가족 모두가 같이 웃을 수 있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건이 됐다. 또 어제 그 사건으로 우리 이모는 응암동 아줌마들 사이에서 모델로 불리기 시작했다.
프로젝트 샘플로서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사전 모델 두 분을 촬영했지만 결과물보다는 나에게 있어서 이 두 사례는 공부를 하기 위함이었다. 남자 메이크오버와는 분명히 다를 것 이기 때문에 사전에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해보니 역시나 더 신경 쓰고 준비해야 될 것이 많았다.
1. 메시지
남자, 아저씨, 할아버지, 아빠, 아버지 등등 관련해서는 많은 글을 써왔다. 그리고 내가 남자이기도 하고..
실수로 나쁜 말들을 쓰지는 않을까, 공감이 안되지는 않을까 여자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게 많이 어려웠다.
감조차 잡질 못 했다.
여러 글을 참조해봤지만 딱히 방향성을 잡진 못 했다.
그때 하빈님의 60대 엄마들도 공유할 취향과 꿈이 있다. 글을 보게 됐다.
울면서 세 번 네 번 계속 읽었다. 고민인 지점들에 대한 답을 얻었고, 엄마 메이크오버 서비스를 준비하면서 참고해야 되는 거의 모든 것을 얻었다. 심지어 남자 서비스를 하면서도 우리가 늘 부족했던 부분까지도 이렇게 채워가야겠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
(하빈님의 글을 읽고 나서 유일한 단점(?)은 글쓰기에 권태기가 왔다... 뭐 이렇게 글을 잘 쓰시지.. 진짜 엄청나다 난 앞으로 어떤 글을 쓰도 이렇게 훌륭하게는 못 쓰겠다.라고.. )
2. 액세서리(잡화)
빽, 그리고 구두. 여성 패션에 어디 하나 안 중요한 게 있겠냐만 가방과 신발은 남자 패션보다 더더 중요했다.
반면 우리 메인 광고주는 어패럴이니 가방과 신발에만 집중이 되면 안 됐다.
너무 화려하지 않으면서 기본에 충실하고 그것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움과 멋짐을 보여줄 수 있는
가방과 신발이 필요했다.( 적고 보니 그냥 내 스타일..헬로우젠틀도 이런 스타일이라고 우겨본다.)
소비 요정 친누나 (롯데 MVG도 갔었지) 다년간 쌓인 쇼핑 안목으로 다양한 브랜드를 알게 되는데
누나도 가장 오랫동안 꾸준하게 지켜보는 곳이 피브레노와 쿠에른 이 두 브랜드이다.
난 둘을 원서동 대장들이라 부른다.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왜냐하면 우리 광고주긴 하지만 브랜드의 이미지가 시니어, 실버층에 가까웠고,
자칫 이미지가 잘 못 그려졌을 때 협찬해주신 브랜드의 이미지도 깎일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닌 그렇게 안 보일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감사하게도 제안을 들어주셨다. 언젠가 반드시 보은 해야겠다. 아니 10000% 할 거다.
쿠에른은 이미 몇 족 가지고 있고, 앞으로도 추가 매수할 예정이다. 피브레노도 남성라인을 만들어주신다면 감사하겠다.(합리적인 소비파에게는 정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브랜드이다. 강력 추천한다.)
3. 헤어
헤어의 경우에는 먼저 연락을 주셨다. 바버샵은 우리가 직접 하니 어느 정도 퀄리티나 헤어 디자인에 있어서 자신했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내 머릿속에 DB 가 없었다. 그냥 뽀글뽀글한 아주머니 머리를 고데기로 피면 끝인가? 했다. 헤어 역시 수동적으로 앞으로 만날 헤어 파트너에게 전적으로 기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DM으로 연락을 주신 태용 원장님.
소공동 사무실에서 남자 둘이 헤어를 시작으로 브랜드, 철학 등 등 얘기를 한 3시간 가까이한 것 같다.
"단순히 머리를 꾸미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을 디자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관점을 듣고 그냥 바로
같이 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비록 무료 협찬이어서 우리가 부탁을 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사실 유명 헤어숍 프랜차이즈나 공유 미용실 스타트업들과 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태용 님과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러고 싶었다. 공유 미용실 스타트업과 함께하면 비즈니스적으로 상승가치가 더 있었을 것이다. (상황상 앞으로 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뉴 그레이 레이디의 처음은 분명 철학을 정립해야 했다. 그리고 내가 배워야 했다. 다 고데기로 그냥 피면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배워야 했다.
태용 님의 헤어숍 브랜드 서보의 의미는 천천히 걷다는 뜻이라고 하셨다. 분명히 공장식으로 찍어내는 헤어숍, 하나라도 더 끼워 팔기 위해 멘트 치는 헤어 디자이너와는 달랐다. 인스타그램만 봐도 그런 분위기가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고객의 얼굴도 너무 행복해 보였다. 헤어모델 포트폴리오로 가득 찬 디자이너들의 인스타그램과는 차원이 다르다. 서보는 사람이 찾아와서 쉬고 싶은 공간, 나에 대해 천천히 돌아볼 수 있는 공간, 그런 공간이라도 감히 짐작한다.
헤어서보 인스타그램
엄마 버전을 처음 열다 보니 말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한편만 더 쓰도록 할게 요. [3] 편에서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