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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오늘 Feb 25. 2024

마음 청소








    금요일 저녁이면 다짐했다.

다가오는 주말에는 꼭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부지런히 생산적인 일을 해서 나를 가꾸어 나가야지! 그런데 막상 토요일 아침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유튜브를 켜고 이리저리 소비할 콘텐츠를 뒤적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몸은 피로에 찌들어 있는 채로 침대에 딱 붙어서 그렇게 멍하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서너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그러다 보면 배에서 말한다. '주인님, 이제 밥 먹을 시간이에요.' 나를 위해 이런저런 요리를 해 먹어야지, 건강한 식단을 먹어야지. 수많은 다짐들이 흩어지고 배달 어플을 켠다. 그리고 또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한 시간이 흐르고 만다. 겨우 메뉴를 선택하고 나서 음식이 올 때까지 또 멍하니 미디어 세상에 퐁당. 그러다 밥이 오면 무거운 몸을 일으켜 문 앞에 놓인 봉투를 들고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방에 돌아온다. 치킨, 밀가루, 튀김 같은 거 안 먹기로 했는데.... 잠깐의 죄책감은 맛있는 냄새 앞에서 희미하게 사라져 간다. 처음 몇 입 먹을 때는 좋았는데, 슬슬 배가 차기 시작하면서 속이 더부룩해지자 잠깐 사라졌던 죄책감이 다시 무겁게 고개를 든다. 그러게, 이런 거 먹지 말라고 했잖아. 왜 먹었어? 급격하게 기분은 다운된다. 운동도 해야 하는데. 몸과 마음이 더욱 무겁게 늘어지고 말아서 나는 눈앞의 현실까지 다 외면하고 싶어진다. 밖에 나가서 산책도 하고, 도서관에 가서 책도 읽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일요일 밤이 되면 다가올 월요일 생각에 잠을 뒤척인다. 결국 퀭한 눈으로 반복되는 일상으로 복귀. 그렇게 바쁘게 평일을 보내고 다시 금요일이 다가오면 놀랍게도 같은 다짐을 하고, 비슷한 주말을 보내게 된다. 이게 뭘까?


    이렇게 몇 번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던 내가 더 이상 이렇게는 안 되겠다고 다짐한 건 최근 힘든 일을 마주하고 나서였다. 겨우 바닥에서부터 올라와 여기까지 왔는데, 마이너스 상태에서 겨우 0까지 끌어올렸는데. 자꾸만 나를 마이너스의 늪으로 끌어당기는 상황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조금 과장돼서 표현하자면 생명의 위협까지도 느꼈다. 머릿속에서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렸다. 죽고 싶다.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아프게 했던 그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을 발견하면서 이대로 나를 방치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먼저 미디어 세상으로 도피하는 시간을 줄였다.

멍하니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고 있다 보면, 이것만 보고 그만둬야겠다는 다짐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애초에 의식적으로 영상에 빠져 있는 시간을 줄이기로 했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유도 어찌 보면 현실 도피의 일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으면 올라오는 죄책감과 불안, 강박감이 나를 쉴 새 없이 짓누르니 어쩔 수 없이 미디어 세상으로 빠져드는 것이라고, 그렇게 나를 부지런히 위로했다. 이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청소를 시작했다. 처음 혼자만의 공간을 가지게 된 후 거의 한 달 동안은 매일마다 청소를 깨끗이 하고, 이 공간을 소중하게 여겼었다. 그런데 점차 관리에 소홀해지기 시작하면서 방에는 먼지가 쌓이기 시작했다. 잘 정돈되어 있던 것들이 어지럽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눈앞에 걸리는 것들만 급급하게 치우는 상태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누군가는 말했다. 현재의 방 상태가 자신의 마음 상태와 같다고. 그 말에 정말 공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래, 내 마음이 적나라하게 이곳에 드러나 있었다. 더 이상 외면할 수도 없이. 억지로 억지로 몸을 움직여 바닥에 흩어진 머리카락부터 쓸기 시작했다. 이 머리카락들은 왜 쓸어도 쓸어도 계속 나오는 건지. 겨우 새카맣게 바닥을 점령하고 있던 머리카락을 치운 후에는 물걸레질을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가끔씩 머리카락이 못 봐 줄 정도로 쌓였을 때나 대충 쓸어 줬지 물걸레질은 몇 주 동안 하지 못했다. 그 탓인지 바닥에는 언제부터 흘렸는지 모를 빨간 양념 자국이 동그랗게 남아 있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 정도로 방치했었나, 내가. 


    공복 운동을 하겠다는 야심찬 다짐이 점심 준비를 시작하면서 보기 좋게 허물어졌다. 그래, 이것만 먹고 하자. 먹고 해야 운동할 힘이 나지. 그럴싸한 핑계 대기로는 일 등이다. 보글보글 잘 끓인 된장찌개를 먹으면서 행복해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예전의 습관이 남아 있는지 여전히 과식을 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지만 그간의 다이어트 경력으로 간신히 정신줄을 되찾은 나는 먹고 나서 바로 설거지를 시작한다. 지난 며칠 동안 나중에 하겠다는 생각으로 설거지거리를 내팽개쳐 두었던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는 오랜만에 침대 위를 청소했다. 돌돌이를 꺼내서 배게와 이불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내가 사랑하는 애착 인형들도 먼지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 이쯤 되면 소화가 됐겠지? 드디어 유튜브에서 홈트 영상을 검색한다. 야심차게 요가 매트를 펼쳐 그 위에 우뚝 선 채 손뼉을 짝짝 쳐 본다. 자, 시작해 보자! 하기 전에는 죽도록 피하고 싶은 운동인데 하고 나면 왜 이렇게 뿌듯한 걸까? 역시 운동을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으로 30분 정도가 흘렀다. 이제 다음 계획을 실행할 차례다. 땀으로 촉촉히 젖은 몸을 씻어 내고, 남은 수증기를 이용해서 뽀득뽀득 욕실 청소를 시작하는 것. 이 얼마나 생산적인 계획인가! 부지런한 나에게 괜히 취해 보기도 한다. 그렇게 반짝거리는 욕실까지 확인한 후에는 또다시 불안이 찾아왔다. 웃기는 일이었다. 충분히 부지런하고 생산적인 하루를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남은 하루마저 더 알차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감에 어느새 시달리고 있었던 거다. 나는 왜 이렇게 욕심이 많은 걸까? 게으른 나는 못 견뎌하면서 스스로를 자꾸만 채찍질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에게 조금의 휴식을 허용해 주어도 괜찮을 텐데.


    명상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사실 명상이 몸과 마음에 좋다는 걸 아는데도 막상 하고 있는 동안에는 마치 셀프 고문을 하는 것만 같았다. 호흡에 집중하다가도 잡생각이 밀려오고, 온갖 감정들이 밀려오고. 그게 참 괴로웠다. 그런데 최근에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사실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저 머리로만 알고 있었지, 가슴 깊이 깨닫지는 못하던 사실. 떠오르는 감정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 최근 엄청난 불안감에 새벽에 불현듯 깨고야 말았다. 깨자마자 무섭게 나를 덮쳐오는 여러 불안, 걱정, 슬픔, 초조, 강박. 그 속에서 나는 두려움에 떨면서 완전히 각성되고야 말았다. 이대로 다시 잠에 들 수 있을까? 그러다 우연히 불안을 잠재워 준다는 명상 영상을 찾았다. 그래, 이거라도 듣고 있다 보면 잠에 들 수 있지 않을까? 몽롱하고 피곤에 찌든 머리로 영상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그리고 나는 엄청난 위로를 받았다. 불안해해도 괜찮다는 그 뻔한 말에서. 불안이 불안을 낳고, 두려움이 두려움을 낳는다는 그 뻔한 말이 나에게 새롭게 다가오면서 나는 그동안 내 안에 머무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밀어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불안해하는 내가 못났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긍정적인 나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불안해하고 있으면 오히려 더 불안한 일들만 잔뜩 생겨날 거라는 걱정에 덜덜 떨고 있었다. 그래, 불안이 불안을 낳는다는 말. 그 말이 딱 맞았다. 하지만 불안해해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안심시켜 주는 안내자의 목소리에 나는 어느새 안정을 되찾고, 거짓말처럼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사람은 고통 속에서 성장한다는데, 죽을 만큼 아픈 순간이지만 나에게 정말 큰 깨달음을 주기는 하는구나. 아프고 싶지는 않은데, 그 속에서 이런 자잘한 깨달음을 얻는 걸 보면... 어쩌면 이 힘든 시기도 다 나에게 값진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위한 위로인지 인생의 교훈인지 모를 밤을 보냈다.


    방 청소를 하면서 깨달았다. 하루라도 신경쓰지 않으면 서서히 먼지가 쌓이고, 어지럽혀지는 공간처럼 마음도 똑같다고. 그래서 마음 청소 또한 매일 해야 한다고. 한 번 마음 먹고 대청소를 하고 나면 적어도 한 달은 반짝반짝하게 유지되어야 하는 거 아냐? 이렇게 가끔은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니, 왜 매일 청소를 해도 청소거리가 계속 나오는 거야? 짜증을 내어 보아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매일 하는 청소가 귀찮더라도 오랜 시간 동안 방치해 둔 상태에서 하는 청소보다는 훨씬 에너지 소모가 적을 거고, 하루하루 깨끗한 공간에서 생활하면 나에게도 나쁠 것이 없는 건 사실이다. 그런 것처럼 마음에도 매일마다 온갖 생각과 감정들이 어지럽게 쌓이곤 하는데, 그것을 방치해 두었다가는 곪아 터지기 쉽상이라 귀찮더라도 꾸준히 내면을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참, 인간으로 사는 건 귀찮은 일이다. 버거운 일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서 말이다. 그래도 인간으로 태어나서 아픈 감정만 느끼는 건 아니니까. 이런 아픈 순간들이 있기에 행복과 기쁨을 느낄 때 상대적으로 더 크게 느낄 수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 본다. 지금 나는 힘든 시기를 거치고 있지만 이따금씩 그렇게 생각해 본다. 다가올 미래가 얼마나 달콤하려고 지금 이렇게 아플까. 더 힘을 내 보자.


    내일도 부디 마음 청소를 깨끗이 하는 내가 있었으면. 아니, 당장에 오늘 잠들기 전에도 내 마음을 다정히 보살펴 주는 한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 그 한 사람은 당연히 나 자신일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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