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동시대의 한 여성의 이야기
시대와 현실을 담은 소설이다. 정말 공감되는 부분은 왜 아무도 육아가 이렇게까지 힘든지 이야기해주지 않았냐는 것이다. 내 주변에 결혼한 사람이 없어서 이야기를 듣지 못한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소설에서 아이들은 정말 순하고 알아서 잘 크는 데 육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든 일이다. 82년생 김지영은 집안일도 잘하고 애도 잘 키우는 것 같다. 딸 지원은 어린이집에 잘 적응했고 별문제 없이 크는 것 같아 부러웠다. 사실 이 책에서의 육아는 별로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평화롭기까지 하다. 다들 그런지 모르겠다.
맘충이란 말은 아이가 공공장소에서 질서를 지키지 않아도 훈육하지 않고 싸고도는 엄마를 일컬어 만들어진 말인데 이 책에서는 공원에서 자고 있는 애 데리고 산책하며 1500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김지영을 보고 삼십 대 직장인들이 맘충이라 부른다. 여성 혐오에 대한 과장이 심한 것 같다. 자기네 어머님들이 자신을 어떻게 키웠는지 안다면 분명 그런 말은 입에 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공감되는 부분은 야근과 주말출근이 잦은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들어 김지영이 직장을 관두는 부분이다.
“자신의 몸의 변화가 어떤 것이고 어느 정도일지 잘 가늠이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육아와 직장 생활을 병행할 자신이 없었다. 부부가 모두 퇴근이 늦고 주말 출근이 많아 어린이집이나 베이비 시터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양가 부모님도 아이를 돌봐 주실 형편이 되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아직 생기지도 않은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길 방법부터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몰려왔다. 이렇게 미안하기만 할 아이를, 키우지도 못할 아이를, 왜 낳으려고 하고 있을까. 김지영 씨가 한숨만 푹푹 내쉬자 정대현 씨가 어깨를 토닥였다. “내가 많이 도와줄게. 기저귀도 갈고, 분유도 먹이고, 내복도 삶고 그럴게.””
나는 운 좋게 아들을 주중에 돌봐주신 친정 부모님 덕에 아이를 낳고도 2년 더 일했지만 때때로 후회한다. 아이를 낳자마자 전업맘이 되어 아이와 매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그리고 무척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주변에 워킹맘들이 시댁 친정 찬스를 쓰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부럽기도 하고 어느 순간 아이가 충분히 커서 어른 손길이 덜 가게 되면 느낄 허무함이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후회되지 않는다.
82년생 김지영은 사회의 불평등과 여성 혐오에 대해 입을 다문다. 싸우지 않는다. 그녀가 살아온 기억은 비합리적인 일들 투성이이지만 그녀는 순종하며 산다. 그러다가 그녀가 집어삼킨 말들이 폭발하여 정신과에 오기까지 그리고 그녀의 일생을 듣고 난 정신과 의사의 생각을 듣기까지 우리는 그녀와 공감하는 동시에 다시 현실과 타협하는 의사를 보며 쓴웃음을 짓게 된다.
나보다 네 살 많은 언니인 김지영은 충분히 보편적인 인물이고 공감을 많이 불러일으킨다. 난 여성인권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다 보니 분명히 나 또한 경험했을 불평등에 대해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 것 같다. 그리고 매사에 장점을 찾으면서 나는 참 세상을 평등하게 보며 살아왔다. 김지영 정도의 보통의 삶은 나는 그나마 좋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북유럽 국가에서 태어났다면 복지가 잘 갖춰진 시스템에서 일하는 여성이 그려졌겠지만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어찌하랴. 육아는 힘들고 아이 때문에 화도 나지만 정말 예뻐서 용서하게 된다. 난 내 삶에 그럭저럭 만족한다. 자타공인 힘든 아이를 키우지만 내 삶의 좋은 부분만 보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흔들흔들 이리저리 흔들리며 균형을 잡고 살고 있다.
오늘 하루 만에 다 읽었다. 내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흠뻑 빠져 읽은 책이었다. 백 프로는 아니지만 충분히 공감 가는 인물이었다, 82년생 김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