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뭉그러뜨리는 삶의 굴곡들
눈물로 뭉그러뜨리는 삶의 굴곡들
* 이 글은 이동규 작가가 시민기자 자격으로 언론사 '오마이뉴스'에 송고한 기사 글의 원본입니다.
한때 사진 찍기에 몰두한 적이 있었다. 사진의 세계도 알면 알수록 깊고 방대해서 몇 년도 못 가 제풀에 포기해버렸지만, 그래도 그때 배웠던 기술들을 요즘도 가끔 유용하게 취미 생활에나마 적용하는 중이다. 그 당시 어느 사진작가의 공개 특강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작가가 했던 얘기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다들 여행지에 가서 베스트 샷을 팡팡 터뜨리고 싶으시죠? 그런데 여행지에서 비가 오면 색감이 영 칙칙해서 속상합니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비가 내리면 다들 그 날은 시쳇말로 '망쳤다!'고 생각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말이죠, 그거 아시나요? 비 오는 날에는 카메라가 수채화를 그려낸다는 것을요. 정말입니다. 비가 오는 날, 가로등이든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이든, 빛이 있는 곳을 찾아보세요. 햇빛으로는 그려낼 수 없는 또 다른 차원의 예쁜 그림들이 만들어 질 거예요."
군데군데 내가 표현상 덧칠을 한 부분은 있지만 대체적으로 이와 같은 조언이었다. 그 강연을 듣고 난 뒤부터 나도 종종 비가 내리면 부러 카메라를 들고 외출하여 렌즈로 수채화를 그려내는 연습을 하고는 했다. 작가가 말한 '베스트 샷'에 버금갈 만큼 수작을 찍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가 말한 '그림'이 어떤 질감인지는 대충 알 듯했다.
비를 머금은 사진 속 풍경들은 햇살 맑은 날보다 색이 더 아른거리지만, 그 때문에 피사체들이 미묘하게 꿈틀대는 기분을 준다. 또 색과 형체의 경계들이 분명치 못하고 군데군데 제 멋대로 섞여있지만, 덕분에 사진 속의 사연들이 하나 된 듯 통일성이 강해진다.
햇살 담은 사진이 마치 계몽주의의 과학 사조를 반영한 서양의 정밀화 같다면, 비에 젖은 사진들은 흡사 미지의 자연 세계를 주 소재로 삼는 동양의 수묵화 느낌이다. 전자가 태양의 성역을 연상시킨다면, 후자는 안개의 성역을 떠올리게 만든다.
렌즈가 그려 낸 수채화는, 이렇듯 프레임 안에 담긴 모든 것들을 몽롱하게 하면서도 그를 바탕으로 나름 질박한 메시지를 만들어낸다. 비 오는 날의 수채화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잠시 생각을 멈추게 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관조해야 할 대상을 뭉그러뜨려 보다 감정적이고 감상적일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끈다.
카메라 렌즈가 일궈내는 마법을 알게 된 이후 나는 가끔 우리네 삶에서 '눈물'이라는 존재도, 우리가 슬픈 일을 겪을 때 그를 극복하기 위하여 우리 마음이 그려내는 한 폭의 수채화가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우리네 삶은 탄탄대로 직선 코스가 아니다. 굽이굽이를 따라 굴곡진 사연들을 만나고, 그때마다 유연하게 코스를 타지 못해 노선에서 이탈하거나 급정거를 하는 경우들이 허다하다. 그리고 더러는 속상함에, 더러는 서운함에 '운다'.
얼마 전 내가 즐겨 찾는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서 어느 회원이 쓴 사연 글을 읽었다. 7년간 사귀어왔던 상대와 결혼까지 약속했지만, 상대 측 집안사람들이 너무도 심하게 반대를 하고 본인도 그만 지쳐버리는 바람에 결국 결별했다는 얘기였다. 그러고는 벌써 일주일 째 하염없이 울고만 있다고 했다. 눈물을 멈추려 해도 그치지를 않는다며, 어떻게 해야 좋을지 다른 회원들에게 조언을 구한다는 말로 그 글은 끝을 맺었다.
그의 눈물만큼이나 수많은 댓글들이 주르륵 주르륵 매달리며 그에게 위안과 용기를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뒤 친구를 만나서 얘기를 나누던 중 이 사연을 언급했다. 너라면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지 내가 묻자, 친구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울 수 있을 만큼 울라고 말할 것 같아. 바닥 속에 남은 감정의 찌꺼기들을 남김없이 게워낼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울라고 말이야. 그래야 후회나 미련이 없거든."
내 생각도 비슷했다. 사연 속의 그는 지금 커브 길을 만나 휘청거리는 상태다. 7년 동안 자신이 달리던 길이 직선처럼 느껴졌을 테고, 연애하는 동안 그들만의 베스트 샷도 적지 않게 팡팡 터뜨렸을 테다. 자신의 사랑이 갑자기 이렇게 칙칙한 색감을 가질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고, 결국 끝나버린 사랑에 소중했던 관계를 '망쳤다!'고 자책할 테다. 그칠 줄 모르는 눈물 때문에 그의 일상은 현재 수증기로 가득하다. 그야말로 한치 앞이 안 보이는 안개의 성역 한복판에 방치된 기분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본다. 지금 그가 흘리는 눈물 덕에 그는 잠시 생각을 멈추고 한없이 자신의 감정과 감상에 몰입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에게 현재 필요한 것은 어쩌면 이성이나 논리, 또는 분석과 실증이 아닐지도 모른다. 파국의 과정을 낱낱이 도려내고 정밀하게 탐구해보았자 생채기만 배가될 뿐이다. 오히려 생각할 거리들을 줄이고 단순화시켜서 현재 자신의 상황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채 미묘하게 꿈틀대는 감정의 동요를 그대로 느끼는 것이, 마음의 생채기를 치유하는 데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슬픔에 빠진 사람이 카메라라면, 그 사람의 마음 상태는 카메라의 렌즈다. 그리고 그 사람이 흘리는 눈물은 렌즈 위에 뿌려진 빗방울이다. 빗방울이 얹어진 렌즈로 세상의 빛을 투영하면 빛이 산란하여 프레임 속 그림들은 세밀화가 아니라 수채화가 된다. 수채화는 아른아른하지만 그 화풍에는 질박한 아름다움도 있다. 그 아른아른함 속에서 우리는 우리를 아릿하게 하는 것들을 잠시 정지시키고 희석시킬 수 있다. 가슴 속 사연들을 '슬픔'이라는 하나의 통일된 메시지로 응축할 때 사람은 그를 더 쉽고 빠르게 극복할 힘도 얻는다.
살다보면 우리 눈에 비가 오는 날이 있다. 그럴 때는 우리 눈물이 마음껏 채색을 하도록 놔둬보는 것은 어떨까. 자욱한 안개 속에서 한동안 내 몸을 푹 담구고 있다 보면 이내 곧 아침 햇살이 의연하게 안개를 거둬 줄 날도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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